[논평] 연구원 이직 금지 결정에 유감

글쓴이
sysop
등록일
2003-05-20 07:57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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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울지법의 판결에 따르면, 엘지전자 출신 연구원 다섯 명이 팬텍으로 전직하는 것에 대해, 법원이 이직 금지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먼저, 일방적으로 사(社)측의 손을 들어준 판결에 대해 유감임을 숨길 수 없다. 한국과학기술인연합은 고급 연구개발 두뇌들에 대한 불평등한 근로 계약에 대해 예전부터 관심을 갖고 개선을 위한 노력을 해 왔다.

사측은 경쟁사로의 기술 유출 등의 이유를 들어 연구원들의 전직제한이 타당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설계도면, 기술자료, 특허 등 지적 재산권에 의해 보호되고 있는 무형의 자산은 회사의 소유가 될 수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최근의 추세는 직무발명에 대한 보상제 확대 적용이 논의되고있는 바와 같이 연구개발 당사자와 회사 모두가 만족할 수 있도록 지적 재산권에 대한 권리를 노사가 공유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전향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더욱이 연구개발자의 두뇌 속에 있는 지식과 경험은 연구개발자 개개인의 노력의 산물로 이들 개인의 자산으로 봄이 타당할 것이다. 연구개발의 결과물로서의 특정 상품에 대한 정보에 대해 회사가 소유권을 주장함은 타당하고 또 회사의 소유권을 보장해줌이 마땅하나 이번의 전직제한 소송건은 이러한 사측의 정당한 권리를 넘어서 연구개발자의 두뇌 자체에 대해 사측이 배타적인 독점권을 행사하려는 시도라 할 것이다. 따라서 연구개발 전문인력에 대한 전직 제한 조항은 비단 이공계인들에 대한 불합리한 처우 중 하나의 예일 뿐 아니라, 기본적인 인권과 자유시장경제하의 개인의 경제권을 침해함은 물론 헌법상 보장된 직업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려는 악덕 조항이다.

그러한 전직 제한 조항이 연구자 개인과 회사측과의 사적 계약에 의해 합의, 성립되는 바 적법하다고 주장 할 수 있으나, 현실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있는 상황에서 최초 채용시의 근로계약이 근본적으로 사측이 강자에 그리고 연구개발자가 약자의 입장에 서서 성립된다고 볼 수 밖에 없으며 비록 사적 계약이라 할지라도 이직 제한 조항의 역에 해당하는, 즉, 고용 계약상의 약자를 보호할 수 있는 내용(예를 들어 회사측의 요구에 의해 퇴사할 경우 1년 전에 통보하고 위로금을 지급한다던가, 협의에 따라 이직을 허용한다던가 하는)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면 그 계약은 불평등 계약으로서 정당성과 법적 효력을 상실한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번 판결이 엘지전자측의 터무니없는 배상 요구와 이직 금지 기간 확대 요구를 기각하는 등 환영받을 만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직한 연구원들이 새로 일하고 있는 회사에서 구체적이며 실증적으로 엘지전자의 지적 재산권을 침해하거나 영업상의 비밀을 유출한 적이 없는 상황에서 단지 이직만을 문제 삼아 불평등 계약에 의거, 이직을 금지토록 판정했음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이는 연구개발직에 종사하는 인력이 퇴사할 경우 1년간 실직상태로 지내라는 강요와 다름없으며 현실적으로 이직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21세기형 노비문서를 정당화하는 판결이다.

한국과학기술인연합은 이직 연구원들이 항소하여 전직 제한 계약의 불평등성을 입증, 승소하길 기원하며,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일 것임을 밝힌다. 현장의 과학기술인들은 그들이 창조하는 부가가치에 상응치 못한 처우와 힘든 근무 여건에서도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으며, 그들 덕에 만들어지는 경쟁력 있는 상품들을 수출해 온 나라가 먹고 살고 있다는 것을 결코 잊어선 안된다. 전직 제한 조항의 개폐 여부는 이 사회가 과학기술인들을 가치 창출의 역군으로 여기고 있는지, 아니면 단지 성장의 도구, 희생양, 또는 사용자의 사적 소유물, 즉 노비 정도로 여기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는 하나의 척도가 될 것이다.
  • 푸푸 ()

      야근 금지법이나 공휴일 출근금지법이나 만들지..........

  • kimmk ()

      최근 연구개발부문에서는 기술 융합화 및 규모화에 따른  공동연구, 전략적 제휴가 활발해지고 있다.  연구분야에도 적과의 동침이 통용되고 있다.  기업은 소위 NIH 신드롬에서 탈피하려고 한다. 더군다나 국가적 차원에서 본다면 인력 유동성이 활성화된다는 것은 지식의 확산이 빨리 일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긍정적인 차원이다. 지적재산권제도 또는 영업기밀 제도 등으로 기업의 무형재산은 보존될 수 있다. 비단 연구분야 뿐 아니라 모든 사회활동을 통해 얻어지는 노 하우에 대해서는 제재를 할 수 없을 것이다. 개개인의 능력에 따라 많은 것을 얻는 사람이 있을 것이요,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개인의 노력에 의한 산물, 즉 개인의 지적재산에 대해  법적인 제재는 불가능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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