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턴의 1666년, 아인슈타인의 1905년 > 과학기술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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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턴의 1666년, 아인슈타인의 19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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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우 작성일2015-11-26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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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계 분야에서 연구개발 활동을 해본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남다른 탁월한 업적을 이룩하고 우수한 논문을 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특히 해당 분야의 패러다임을 바꿀 정도로 획기적인 논문을 평생 한번이라도 낸다면 그는 크게 성공한 과학기술자일 것이다.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 중에서도 크게 주목받는 단 한 번의 업적으로 노벨상을 거머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데 이처럼 과학의 방향을 좌지우지할만큼 획기적인 연구나 논문을 일생에 한두번도 아니고 한 해에 몇차례씩 쏟아낸다면? 그는 과학에서만큼은 초인(超人)이라 불려도 어색하지 않을 것이고 그 해는 ‘기적의 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과학의 역사에서 이러한 기적의 해(Annus mirabilis)는 두 차례가 있었다. 이를 만들어낸 첫 번째 주인공은 뉴턴(Isaac Newton; 1642-1727)이고 두 번째 주인공은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이다. 두 사람은 물리학의 역사상, 아니 과학사 전체를 놓고 보더라도 쌍벽을 이루는 가장 위대한 과학자로 꼽힐 만한데, 기적의 해 역시 묘하게도 닮아있다.

 첫번째 기적의 해는 1666년이었다. 근대 과학을 완성시킨 뉴턴의 가장 큰 업적을 3가지로 요약하자면 만유인력의 법칙 확립, 미적분법의 발견, 광학의 체계화인데, 이 모두가 1666년에 이루어진 것이다. 이 세 가지 중에서 한 가지 업적만 이룩했어도 뉴턴은 역시 한 시대를 풍미한 위대한 과학자로 길이 이름을 남겼을 것이다.
 만유인력과 운동법칙의 발견으로 고전적인 역학체계가 확립되었을 뿐 아니라, 이전부터 시작된 과학혁명 자체가 완성되었다고 과학사학자들은 평가한다. 뉴턴의 고전역학, 즉 뉴턴과학은 이후 수백년 동안 서양 과학의 굳건한 패러다임으로 자리를 잡아왔다. 심지어 21세기인 오늘날에도 우리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수준의’ 거의 모든 역학적 현상은 뉴턴역학을 적용하여 풀이할 수 있다. 
 미적분법은 오늘날 수학, 물리학뿐 아니라, 전기전자공학, 기계공학 등 대부분의 공학 분야에서도 필수적인 요소이다. 가끔씩 언론지상에서 ‘미적분도 모르는 이공계대학 신입생’이라는 식의 질타 기사가 나오듯이, 미적분법 없이 물리학, 공학을 연구한다는 것은 총을 들지 않고 전쟁터에 나가는 것에 비유되곤 한다. 물론 미적분법의 최초 발견자를 놓고 동시대의 수학자 라이프니츠(Gottflied Wilhelm Liebniz; 1646-1716)와 오랜 우선권 논쟁을 벌인 것은 유명한데, 누가 더 먼저이든 뉴턴이 독자적으로 미적분법을 발견한 것은 명확한 사실이다.       
 광학의 체계화 역시 앞의 두 가지 못지않게 중요한 업적이다. 올해인 2015년이 ‘세계 빛의 해(International Year of Light and Light-based Technologies)'인데, 이슬람의 과학자 이븐 알 하이삼(Abu Ali al'Hasan Ibn al'Haitham; 965-1040?)의  ‘광학의 서’가 나온지 약1000년, 빛의 파동이론이 나온 지 200년 등을 기념하는 해이다. 뉴턴 이전까지 광학 분야는 중세에 이룩된 알 하이삼의 업적에서 그다지 진전이 없는 상태였으나, 뉴턴은 여러 실험과 이론을 통해서 빛의 성질을 밝혀내고 광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물론 뉴턴이 1666년 한해에 위의 모든 이론들을 완성하여 발표한 것은 아니고, 공식적으로 저서 등을 통하여 발표한 것은 그보다 훨씬 이후의 일이다. 그러나 영국에서 페스트가 크게 유행하면서 대학이 일시 폐쇄되어 고향으로 돌아와 대부분의 시간을 사색과 실험으로 보냈던 1665년에서 1666년 사이가 자신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시절이었다고 뉴턴 스스로 밝힌 바 있다. 후세의 과학사가들도 그의 위대한 업적들이 싹트고 체계화되었을 이 시기를 ‘황금의 18개월’이라 부르기도 한다. 

 두 번째 기적의 해인 1905년은 아인슈타인이 특수상대성 이론, 광량자 가설, 브라운 운동의 해석 등의 중요한 업적들을 이룩한 해이다. 아인슈타인은 현대 물리학의 발전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이 세 가지 논문을 정확히 이 한해에 모두 쏟아내었다. 더구나 당시 아인슈타인은 연구 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대학교수나 연구원의 신분이 아니라, 스위스 베른의 특허청에서 특허 심사를 하는 일이 본업이었다. 낮에는 특허청 심사관으로 일하고 퇴근 후에야 연구 논문을 작성하여 불후의 업적을 내었으니, 아인슈타인의 1905년은 더욱 기적적인 해라 하겠다.
 특수상대성 이론은 광속 불변의 원리를 바탕으로 뉴턴 고전역학의 절대적인 시공간 개념을 깨뜨리고, 기존에 모순된 것처럼 보였던 역학과 전자기학을 통일된 체계로 설명할 수 있게 한 업적이다. 여기서 파생된 유명한 공식인 E=mc2,, 즉 질량-에너지 등가 원리는 훗날 원자폭탄과 원자력 발전의 기본 원리를 제공하게 되었다.
 특수 상대성 이론보다 앞서 나온 광량자 가설에 관한 논문은 빛이 연속적인 파동의 형태로서 퍼져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광자(photon)라는 에너지의 덩어리로서 불연속적인 입자처럼 운동한다고 밝힌 것이다. 이것은 플랑크(Max Planck; 1858-1947)의 양자화 가설을 빛의 본질에 적용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으며, 또한 기존의 이론으로는 제대로 해석하기 어려웠던 광전 효과 현상도 잘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업적으로 그는 1921년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였고, 2009년도 노벨 물리학상을 낳은 CCD 역시 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브라운 운동에 관한 논문은 원자의 존재 및 본질과 관련이 있다. 아인슈타인은 원자나 입자의 충돌 효과라는 통계역학적 방법론을 적용하여 브라운 운동을 수학적으로 매끈하게 풀이함으로써, 원자의 실재에 대한 해묵은 논쟁을 끝낼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하였다.
 1905년에 나온 아인슈타인의 세 논문은 기존의 19세기 물리학이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들을 일거에 명쾌히 풀어내면서 20세기 현대 물리학의 지평을 열었다는 점에서 상당히 공통적인 측면이 있다. 이로부터 100주년이 되었던 지난 2005년은 ‘세계 물리의 해(World Year of Physics)’로서, 국내외에서 여러 기념행사와 이벤트가 진행된 바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1666이나 1905년과 같은 기적의 해가 또 다시 나올 수 있을까? 현대 과학기술의 특성 상 한두 명의 천재적인 과학자에 의해 과학의 패러다임 자체가 뒤바뀌는  ‘과학계에서 영웅시대‘는 이제 종언을 고했다고 보는 견해가 많은데, ‘기적의 해’는커녕 뉴턴이나 아인슈타인과 같은 슈퍼스타도 이제는 나오기 힘들지 않을까 하는 것이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By 최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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