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없는 지능’이 어떻게 가능할까? > 과학기술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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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없는 지능’이 어떻게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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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우 작성일2020-12-18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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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식물에도 지능이 있다고 생각한 생물학자 중에 진화론으로 유명한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이 있다. 그는 식물의 뿌리 끝이 동물의 뇌와 유사한 기능을 지녀서, 주변을 탐색하고 장애물 등을 피하면서 식물의 성장에 최적의 환경을 찾아 뻗어 나아간다고 생각하였다. 그의 주장은 당시에 별로 관심을 끌지 못했지만 이후에도 식물의 지능 보유 여부에 대해 관심을 가진 학자들이 있었고, 오늘날에는 이를 본격적으로 연구하는 국제연구소까지 있다.
지능과 관련해서 논의되는 대표적인 식물로서 미모사(학명 Mimosa pudica L.)가 있다. 장미목 콩과의 쌍떡잎식물인 미모사는 브라질이 원산인 관상식물로서, 사람이 잎을 건드리면 밑으로 처지면서 시드는 것과 같은 행태를 보인다. 이는 팽압, 즉 식물세포에서 원형질막을 세포벽 쪽으로 밀어내면서 발생하는 압력에 의한 현상으로 해석되지만, 미모사는 위험한 자극과 위험하지 않은 자극을 정확하게 구분할 수 있으며 자극에 따라 다르게 반응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설령 식물에 지능이 있다고 해도 고등동물의 지능과 동일한 개념으로 보기는 어렵겠지만, 일반 식물의 뿌리 끝이든 미모사이든 이들은 대단히 많은 수의 세포가 모여서 조직을 형성하고 상호작용을 한다. 그런데 다핵의 단세포 생물인 블롭(Blob) 즉 황색망사점균이 미로의 최단경로를 찾아내고 기억과 학습을 하며 문제 해결 능력을 지닌 것처럼 보이는 것은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뇌 없는 지능’이라는 용어가 무척 낯설거나 모순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지능이 꼭 사람이 지니는 고도의 지적인 능력이나 고등동물의 뇌의 작용에 의한 것에만 한정되지 않는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즉 식물이든 단세포 생물이든 환경에 적응하여 생존하는 능력 등을 광의의 지능이라 여길 수도 있다.
개미는 뇌가 없는 동물은 아니지만, 100억개 정도의 뇌신경세포를 지닌 인간과 비교하자면 개미 한 마리의 뇌신경세포는 수백 개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른바 ‘집단두뇌’를 통하여 고도의 지능과 사회성을 지닌 것처럼 행동하는 개미는 동물행동학 등의 주요한 연구대상이다. 특히 흰개미가 짓는 거대하면서도 공조 기능까지 갖춘 정교한 집이나 개미가 집단지능을 통하여 찾아내는 최단의 이동 경로 등은 인간이 생체모방공학을 통하여 배우고 응용하려고도 한다.
황색망사점균에 대해 연구한 학자들에 의하면 이들의 행태가 개미와 유사한 점이 있다고 한다. 즉 개미가 일종의 화학물질인 페로몬을 분비해서 먹이의 위치를 표시하고 최단의 이동 경로를 찾아내듯이, 황색망사점균 역시 점액질 비슷한 것을 분비해서 한번 갔던 곳을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황색망사점균은 동물의 신경계와 같은 잘 발달된 조직체계는 없지만, 역시 유사한 네트워크를 통하여 학습을 하고 개체 간에 정보를 교환하기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적절한 이름을 붙이기도 어렵지만, 황색망사점균은 동물의 정맥 혈관계나 식물의 관다발계와 유사해 보이는 내부 조직망을 갖춘 것으로 관찰되었다. 즉 전자현미경으로 살펴본 결과 관다발처럼 생긴 조직망 내부를 원형질이 흐르며, 미세한 섬유 같은 것이 내부를 감싸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러한 미세섬유가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고 원형질이 앞뒤로 움직이면서 조직망이 형성되거나 개체가 이동한다. 그리고 황색망사점균은 세포벽이 없기 때문에 이러한 조직망은 가변적인 형태를 지니며, 환경에 가장 적합한 것을 택할 수 있게 된다.
또한 황색망사점균의 개체들 간에 관다발계와 유사한 조직망이 서로 연결되거나 융합될 경우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를 통하여 혐오물질에 견디는 법 등의 정보를 다른 개체에 전달하여 학습시킬 수 있다.
그동안 컴퓨터과학이나 인공지능의 분야에서는 인간 뇌의 구조를 이해하고 이를 닮은 시스템을 구현하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해왔다. 인간의 뇌는 수많은 신경세포, 즉 뉴런이 모여서 네트워크를 구축한 복잡계 중의 복잡계로서, 뇌의 구조 및 신호처리 방법과 유사한 신경망(Neural network) 모델 등을 통하여 기억과 학습, 문제 해결 능력 등을 재현하여 다양한 분야에 활용해왔다.
그런데 황색망사점균과 같이 한 세포 내의 정보처리는 사람이나 고등동물의 뇌와는 다른 메커니즘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억과 학습을 하고 문제 해결 능력을 지니는 황색망사점균이 여러 정보를 저장하고 처리하는 등의 과정을 명확히 밝혀낼 수 있다면, 인공지능 및 컴퓨터과학의 연구와 응용에도 새로운 지평이 열릴지도 모른다.

                                                      By 최성우

이미지1: 두 개체 간에 조직망을 연결하여 정보를 교환하는 황색망사점균 (ⓒ Richard Mayne)
이미지2: 외부의 자극을 기억하는 미모사 (ⓒ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댓글 1

묵공님의 댓글

묵공

인간의 뇌나 개미의 뇌나 황색망사점균이나 미모사나 모두 하나의 세포가 신호를 증폭하고 전달하여 연쇄작용을 일으킨다는 점에서는 똑같습니다. 기억은 이러한 세포 2개 이상이 신호 피드백에 의해 회로를 구성할 때 일어나는 현상으로 논리회로에서 플립플롭(F/F)과 동일한 원리로 볼 수 있습니다. 즉, 신호의 전달과 기억이 모두 같은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그게 한 개체이든(인간, 미모사), 다른 개체이든(황색망사점균, 개미) 집단지성이 발휘되는 점에 있어서는 동일합니다. 이러한 무작위하고도 단순 기계론적인 하드웨어에 의해 고도로 지능적인 학습과 추론이 발생한다는 것은 신비로와 보이는 일이긴 하나, 이는 우리가 지능을 고도로 추상적으로 정의했고 뭔가 주체(영혼, 정신, 자아)가 있을 것처럼 가정한데서 오는 착시현상에 불과합니다. 

뭐 이런 생각을 해볼 수 있지 않나해서 끄적거려 봅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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