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과학기술정책’ 논란 확산 [2008. 1. 24 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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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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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24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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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도 친기업형 서비스 체제로”vs
“기초-응용연구 분리땐 과학기술 후퇴”
새 정부 ‘과학기술정책’ 논란 확산
 
 
  오철우 기자 
 
 
 
과학계 “성과 매달려 공공성 띤 연구 위축” 조직개편 반대
산자부 “원스톱으로 한곳서 지원…과기부 그동안 뭐했나”

새 정부 조직개편을 둘러싼 논란이 깊어지면서, 대통령 후보 정책공약에선 잘 보이지 않던 새 정부 과학기술 정책의 윤곽이 ‘기초연구과 응용연구의 분리’ ‘친기업형 과학기술 서비스’라는 모습으로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조직개편안의 의회 상정을 앞두고 조직개편안에 반대하는 과학자와 과학단체들의 목소리도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조직개편안을 보면, 새 정부는 기초과학과 응용연구(원천기술, 생산기술 등)를 나눠 인력양성과 기초과학은 교육과학부에, 나머지 연구개발(R&D) 정책은 지식경제부에 넘기기로 했다. 또 참여정부의 과학기술 정책을 상징하는 과학기술 부총리제와 과학기술혁신본부 체제는 사라지거나 크게 축소될 것으로 보인다.

논란의 두 축은 과학기술부와 산업자원부다. 과기부의 한 간부는 ‘과학과 기술은 융합한 한 몸’이라는 논리를 내세워 “기초과학과 응용연구, 산업기술을 총괄하는 기능을 살려 과기부가 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가 총괄 관리’를 강조하는 체제다. 반면에 산자부의 한 간부는 “조직개편의 방향은 기업이 ‘원스톱’으로 한 곳에서 모든 지원을 받게 하는 ‘친기업형 서비스’를 하자는 것”이라며 “과학기술도 수요자인 기업이 쉽게 선택할 수 있게 산업화 이전의 원천기술까지 한 곳에서 다뤄야 한다”고 주장한다. ‘산업혁신’을 강조하는 체제다.

조직개편 논의가 계속되면서 지난 40년간 ‘과학기술 입국’의 주무부처를 자임했던 과기부는 요즘 ‘황망한’ 분위기를 감출 수 없다. 과기부의 주요 업무가 산자부 쪽으로 넘어간 데 이어, 다른 정책 업무들도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표류하는 처지에 빠졌기 때문이다.


참여정부 정책의 본산이던 혁신본부조차 갈 곳이 마땅치 않다. 애초 대통령 직속 국가과학기술위원회나 지식경제부가 혁신본부 기능을 넘겨받을 것이라는 예측도 있었으나, 최근엔 실무 기능만 남기고 기획예산처에 흡수하는 방안까지 논의되고 있다. 혁신본부가 맡던 범부처 기획·조정 기능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 과기부 간부는 “혁신본부 체제는 이번 정부가 어렵게 구축한 성과인데 새 정부에서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 거냐”며 우려했다.

핵융합과 원자력 안전연구 분야도, 과기부와 동거할 교육부 쪽이 꺼리면서 지식경제부로 이관하는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새 통합부처에서 과학재단이 몸집이 훨씬 더 큰 학술진흥재단에 흡수될지, 과학기술 연구관리의 전문성을 특화해 동거할지도 불투명한 상태다.

조직개편안에 대한 우려는 과학계 안에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지난 22일 한국물리학회, 대한화학회 등 학술단체 8곳이 마련한 긴급토론회에서, 뇌 연구자인 신희섭 박사는 “기초연구의 성과가 자연스럽게 신약 개발을 위한 응용연구로도 이어지는데 앞으론 두 분야를 인위적으로 나눠야 하나”라고 반문하며 “혼란을 겪을 몇 년 동안 국내 과학기술이 후퇴할 게 자명하다”고 말했다. 김정구 한국물리학회장은 “생산기술 위주의 연구개발 정책으로 출연연구소들이 당장의 성과에 매달리고 공공성을 띤 연구들이 위축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들은 조직개편안에 반대하는 결의문을 냈다.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은 이날 조직개편에 반대하는 ‘500만 과학기술인 서명운동’에 들어갔다.

‘친기업형’ 체제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소장 과학기술인들의 모임인 한국과학기술인연합은 ‘산업기술유출방지법’ 제정을 추진했던 부처가 산자부였음에 주목한다. 이 단체는 이 법이 ‘과학기술계의 국가보안법’이라며 강력히 반대해왔다. 최성우 운영위원은 “산자부가 친기업형 서비스의 일환으로 추진했던 이 법은 기업엔 도움이 되겠지만 연구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악법”이라며 “연구자보다 기업을 우선하는 산자부의 친기업 체제에 대해 우려하는 시각이 많다”고 전했다.

여러 단체들의 잇단 의견 표명에 대해 산자부는 냉담하다. 산자부 간부는 “과기부와 혁신본부가 그동안 국가 경제발전을 위해 한 게 뭐가 있는지부터 진지하게 자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조직개편 반대 목소리는 대부분 과기부 쪽 단체들이 내는 관제 성명”이라며 “(새 부처가 출범하면) 이 단체들의 태도도 지금과 달라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글·사진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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