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에세이] 난무하는 사이비 과학기술 [2008. 12. 15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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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g
등록일
2009-03-25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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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에세이/12월 15일] 난무하는 사이비 과학기술

최성우 한국과학기술인연합 운영위원


세상살이가 어려워지다 보면 사기꾼이나 사이비들의 그럴싸한 주장에도 관심이 가게 마련이다. 국내외 경제상황이 좋지 않은 탓인지, 사이비 과학기술들이 난무하는 듯하다.

얼마 전 서울 지하철의 환풍구에 풍력발전기를 설치해서 발전을 하겠다는 계획이 발표된 바 있다. 그러나 환풍기 바람을 이용하여 발전을 하려면, 그 전체 과정에서 도리어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식의 발상에 대부분의 과학기술인들은 너무도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이 사업이 서울시의 무슨 고객감동 창의경영 사례로까지 소개되었다니 더욱 어처구니가 없다. 설비 공급을 맡은 업체 측에서야 "물리학 법칙은 생각할 필요도 없고, 들어가는 것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를 뽑아낼 수 있다"는 식의 과감한(?) 주장을 할 수도 있다지만, 사업에 관련된 서울 메트로 간부와 서울시 공무원 중에 열역학 제1, 2법칙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는지 참 답답한 노릇이다.

외부에서 에너지를 공급하지 않아도 스스로 영원히 움직이는 '영구기관(永久機關)을 만들었다고 사람들을 속이는 사례가 옛날부터 세계적으로 종종 있었음을 필자가 몇 달 전의 이 칼럼 란에서 지적한 바 있다(7월 14일자 '고유가 시대의 반복되는 해프닝'). 그 동안 국제 유가도 많이 떨어지긴 했지만, 획기적인 에너지 창출 등을 빙자한 비슷한 사건들이 여전히 되풀이되니 허탈한 느낌마저 든다.

최근에는 물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가정용 보일러와 가스레인지 등을 개발한 회사가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 역시 영구기관이나 마찬가지로 자연의 기본 법칙을 거스르는 발상이지만, 그 업체는 정부와 산하 단체 등이 수여하는 각종 상까지 휩쓸어왔다니 참으로 놀랍고도 부끄러운 일이다.

사이비 종교가 인간 심리의 취약한 부분 등을 교묘히 이용하듯이, 사이비 과학기술 역시 우리 사회의 취약한 고리 등을 파고들며 그럴싸한 주장을 펴기 마련인데,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나라의 에너지 독립국 구현', '서양 과학기술을 단박에 능가…' 등의 주장이 그런 예이다.


특히 상당수의 사이비 과학기술 주창자들이 민족과학과 동양철학의 우수성 운운하는 경우도 꽤 많다. 동양철학의 기본 정신과 심오한 사상이 '무슨 술수를 써서라도 단번에 서양 과학을 뛰어 넘어라'는 것에 있는 것은 전혀 아닐 텐데, 동양철학 제대로 하는 분들이 들으면 통탄할 일일 것이다.

그런데 일반 대중이 속아 넘어가는 데 그치지 않고, 일부 언론과 사회지도층 인사들마저 이들의 혹세무민(惑世誣民)에 덩달아 춤을 추는 한심한 일들도 반복되고 있다. 최근의 사건에도 전직 국회의원이나 저명인사 등이 연루되어 있는 모양인데, 사이비 과학기술은 아니지만 그보다 더한 물의를 빚었던 몇 년 전의 조작사건에서도 유명 변호사, 철학교수 등 이름 깨나 날리던 이 나라 지식인들이 매우 민망한 행태를 보인 적이 있다.

이른바 21세기 과학기술의 시대에, 선진국으로 진입하려는 나라로서 너무도 창피한 일이 아닌가?

< ⓒ 인터넷 한국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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