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깡'에 교수 자녀 과외, 숙제까지... 도제식 상명하복 문화로 연구는 '뒷전' [02.10.15/오마이뉴스] > 언론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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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깡'에 교수 자녀 과외, 숙제까지... 도제식 상명하복 문화로 연구는 '뒷전' [02.10.15/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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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g 작성일2004-02-20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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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과학자의 꿈을 가지고 대학원에 진학한 이공계 대학원생들이 연구외적인 일로 금쪽같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으며,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한탄속에 빠져 있다는 지적이 터져 나오고 있다. 이들의 한탄은 바로 우리의 '과학기술 대국'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오마이뉴스>는 3회에 걸쳐 이공계 대학원생들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그 해결책을 모색해 보기로 한다...<편집자 주>

"교수들의 비리를 고발한다. 프로젝트 인건비 횡령, 학생들에게 가라(가짜) 영수증 작성 강요로 수많은 연구비 포탈과 세금횡령, 거의 기여를 하지 않고도 논문이나 프로젝트에 이름 끼워넣기, 회의 및 행사 관련 교수 개인의 일을 학생에게 떠넘기기, 또 교수의 자제나 아버지 등 친인척 일까지 학생들의 인력 동원… 학생들 암만 열심히 공부하고 일해 봐야 비리교수의 배만 불려줄 뿐이다..."

국내 소장파 이공계 연구자들의 모임인 '한국과학기술연합'(대표 여인철)이 지난 10월초 이공계 대학원생들의 고민을 담아낸 흥미로운 설문조사 결과보고서를 하나 내놓았다. 밤 세워 불을 밝히고 연구에 몰두해야 할 젊은 연구자들이 실제로는 '연구 외적인' 일들로 금쪽같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것.

대학원생들이 연구보고서보다 연구비 정산에 쓰이는 영수증 챙기기에 더 몰두하고, 때로는 가짜영수증을 만들거나 '카드깡' 등 불법행위를 저지르면서도 자신에게 정당히 지급되는 인건비조치 '연구실 운영' 등의 이유로 고스란히 뺏기고 있다는 것이 설문조사의 주된 요지다.


기업과 공모해 '가짜 영수증' 마련... 일정 커미션을 업체에 제공

한국과학기술인연합이 지난 9월 14일부터 열흘간 홈페이지(www.scieng.net)를 통해 회원 418명을 대상으로 '국내 이공계 대학원의 실태 조사'를 벌인 결과 국내 이공계 대학원생들 중 78%가 연구외 업무, 즉 행정.관리 업무로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이 맡고 있는 그 연구외 업무가 대부분 '불법'이라는 것이다. 대학원생들이 현재 가장 많은 고충을 겪고 있는 문제는 부족한 연구비 등을 메꾸기 위한 '가짜 영수증' 만들기다. 이들은 대체로 턱없이 부족한 연구비 때문에 평소 잘 알던 기업과 서로 짜고 '가짜영수증'을 받아 연구비를 타낸 뒤 도움을 준 기업에 일정한 커미션을 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카드깡' 등의 불법행위도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이뤄진다.

감사 등에 대비한 장부정리 등의 문제도 대학원생들에게 큰 부담을 주고 있다. 원칙대로라면 연구자들이 아니라 행정직원이 담당해야 할 연구비 정산 등의 업무를 대학원생이 떠맡음으로써 정작 연구에 필요한 시간의 대부분을 '뺏기고' 있는 것이다. 연구자들의 힘을 빼는 것은 이 같은 연구외 업무뿐만이 아니다. 관행적으로 이뤄지는 '인건비 횡령과 유용'도 젊은 대학원생들에겐 암담한 현실이 된다. 한국과학기술인연합이 설문 조사 결과를 내놓으면서 사례 분석한 아래의 예를 보자.

"과제계획서 상에 100만원, 50만원, 50만원으로 잡혀 있는 세 학생의 인건비가 우선 각자의 이름으로 된 통장에 입금된다. 연구실에서는 이 금액을 공용으로 사용하는 하나의 계좌에 모두 입금한 뒤(200만원) 이 중에서 120만원 정도를 공용계좌에 남기고 남은 80만원을 박사과정 학생 40만원, 석사과정 학생 2명에게 각각 20만원씩 나눈다."


교수 인건비 전용, 연구생들은 생활비 '허덕'

원칙대로라면 자신의 명의로 입금된 인건비를 모두 수령해야 하지만, '연구실 운영비' 명목의 돈을 따로 떼놓고 일부만을 받게 되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이 정도는 소위 '양반'이다. 한국과학기술인연합 홈페이지에 올린 한 대학원생의 푸념은 대학원 내부에 얼마나 많은 불법이 이뤄지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정말 웃기지 않습니까. 우리 학교 연구실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연구비를 받으면 거의 교수의 카드값 결제하는데 날려버리고. 우리들은 생활고에 허덕이고… 우리 교수는 카드도 많이 쓰데요. 월 천만원이 넘는 카드값…."(ID 배고픈 공도리)

"...석사 과정부터 플젝이다 뭐다 해서 실험 뒤로 하고 학교 연구지원센터 들락날락... 가짜 영수증 카드깡... 안 해본 것이 없습니다. 국내에서 '연구'라는 개념의 대학원생활은 포기했고.... 내가 하는 일만큼의 보수만 책정해 주면 좋겠네요. 죽어라 '따까리' 하면서 생활비를 걱정해야 한다는 게 더 짜증나고 힘든 일인 것 같습니다."(ID 나도 역시)

이와 같은 '인건비 횡령과 유용' 덕분에 많은 대학원생들은 가족에 기대어 힘겨운 대학원 생활을 하고 있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내 이공계 대학원생 중 52%가 가족들의 도움으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제식, 상명하복식 문화... 자녀 과외, 숙제는 '기본'

또 단지 제자라는 이유로 교수 자녀의 과외 교습을 해 주는 사례도 있다. 팩스로 집에서 숙제를 보내오거나, 직접 교수 자녀를 가르쳐야 하는 대학원생이 있는가 하면, 대학원생이 해 준 숙제로 자식이 상을 받았다고 기뻐하는 '몰염치한' 교수도 있다는 내용이 게시판에 올랐다.

"정말로 논문이나 프로젝트에 교수 아들 이름도 넣어줍니까? 정말로 심하군요. 학부생 딸의 C프로그래밍 숙제를 집에서 팩스로 연구실에 보내어 박사 형들에게 시켜서 그날 다시 팩스로 집으로 보내라고 하는 거나, 학회갈 때 딸애를 데려와서 C과외를 시키는 것은 정말로 양반이군요."(ID KILLER)

이 외에도 군대식 상명하복 문화에 시달리는 일, 인원 부족 등의 이유로 학위 수여를 일부러 미루는 일, 폭력과 모욕, 성폭력에 일상적으로 노출되어 있는 일은 대학원 사회에서 이미 '상식'이다. 설문조사에 참여한 한 대학원생이 다음과 같이 비꼰 말은 현재 한국 사회에서 대학원이 얼마나 불법과 비리의 온상이 돼 가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동일한 데이터로 과제 이중지원 받기, 온갖 눈 가리고 아웅하기와 연구비수주... 교수들 비위맞추기, 가라 영수증 만들기, 아무튼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쓰레기 같은 짓거리는 전부 대학원에서 배웠답니다. 이것도 장사밑천일 수 있겠죠…"

김영균 기자

< 박스기사 >
"연구외 업무가 연구 방해" 78%  한국과학기술인연합 설문조사 결과 분석 
 
'한국과학기술인연합'이 지난 9월 14일부터 열흘간 인터넷 홈페이지(www.scieng.net)를 통해 국내 이공계 대학원의 문제점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참여 인원 418명 중 326명(78%)이 연구비 정산 등의 관리 업무가 연구를 방해한다고 답변했다.

이 결과에 따르면 전체의 81%인 347명이 "학내 연구개발 지원조직의 역할이 미미하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행정, 기술조직이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고 답변한 사람은 36명(8%)에 불과했다.

조사 결과 중 특별한 것은 대학원생의 생활비 문제. 전체의 98%인 406명이 '인건비를 받고 있지 않다'거나 '책정된 것만큼 받고 있지만 생활비 부족' 또는 '인건비를 다 받지 못한다' 등에 답변한 것으로 드러났다. '생활하기에 충분하게, 프로젝트에 책정된 만큼 받는다'고 답한 사람은 12명(2%) 밖에 되지 않았다. 또 국내 학위자가 외국 학위자에 비해 차별 받는다고 인식하고 있는 연구자들이 전체의 92%인 388명으로 나타났으며 대학원 내부의 비리 중 가장 많은 일이 '인건비 전용'(202명, 48%)로 밝혀졌다.

'대학원 연구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 가장 도움이 되는 내용'을 묻는 질문에서는 전체의 38%인 161명이 '대학원생의 학비와 생활비를 지원해야 한다"고 답변한 것으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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