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과학도가 방황한다 -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운 교수되기 [04.05.17/과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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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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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5-17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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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외엔 마땅한 일자리 없어
 
임용 기다리며 임시 교수 전전
대학내 연구원제도 마련 시급

모 정부출연연구소의 선임연구원 S박사(40). 8년 전 미국 명문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박사 후 연수과정(post-doc)을 거친 뒤 국내 여러 대학의 교수채용에 응모했지만 번번히 실패했다. “전생에 죄가 많아 아직 속죄의 삶을 더 살아야 하는가 보다”라는 말로 애써 자위하지만, 교수채용 철이 될 때 마다 속이 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교수가 되기를 희망하는 단 하나의 이유는 연구하고 공부하는 일이 가장 재미있어서. 그가 근무하고있는 정부출연연구소의 주된 일은 연구와는 거리가 먼 행정업무. 당연히 현재 하는 일이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다.

박사학위를 받고 벌써 7년째 해외를 떠도는 또 다른 S박사(42)는 아직 이렇다 할 직업 없이 미국 대학에서 연구원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국내 기업체에서 3년간 근무한 적이 있지만 연구여건이 만족스럽지 않아 그만두고 미국으로 간 경우다. 그는 임용심사를 통과하고 임용대기 상태에서 대학당국이 애매한 조건을 내거는 바람에 임용되지 못한 유쾌하지 않은 경험이 있다.
“처음에는 대학에서 당연히 조교수로 임용한다고 얘기했어요. 그런데 개강날짜가 다 되도록 임용장은 주지 않고 다니는 직장에 사표를 냈느냐고만 물어보는 거예요. 교무처 담당자에게 이유를 다그쳐 물으니 마지못해 학교 규정상 조교수는 안되고 전임강사로 우선 왔다가 1년 후 심사를 거쳐 조교수로 발령을 낸다고 하더라고요. 심사기준이 뭐냐고 물었더니 논문과 강의평가 그리고 동료 교수들의 평가라고 하더군요. 제 분야에서는 SCI 논문 한편이 투고에서 게재까지 최소 1년 반이 걸리는데, 도저히 불가능한 조건이라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박사들에겐 대학 외에 갈 곳이 마땅치 않다. 공부를 계속하고 싶은데다 달리 갈 만한 곳도 없는 박사들이 대학으로 몰리고 있다. 현재 박사 학위자들의 76%가 대학에 적을 두고 있다. 그러나 대학으로의 진입은 결코 쉽지 않다. 위의 두 S박사들처럼 대개는 실패를 거듭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임용심사를 통과하고도 임용장을 받지 못한다. 지난 학기 모 사립대 공대에서 과별로 평균 교수 1명을 뽑는데 외국의 최고 명문대 출신만 10명 넘게 지원했고 최종 경쟁률은 20:1이 넘었다. 교수 되기는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다.

임용과정의 불공정성도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1996년 8월 ‘교수공정임용을위한모임’이 전국 교수를 대상으로 교수임용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설문에 답한 교수 중 65% 이상이 ‘매우 불공정하다’는 견해를 보였다. 98년 2월에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국립 서울대의 치대 교수 임용비리는 교수임용 과정에서 빚어지는 불공정 행위가 일부 중소규모 대학에만 국한되지 않음을 확인시켜 준 일례다. 교수 불공정 임용은 금품수수, 파벌주의, 청탁 등 여러 가지 유형으로 일어나고 있다. 특정 학교의 본교 출신 선호 역시 타교 출신의 교수임용을 어렵게 만드는 장애요소다. 서울대 출신의 한 강사는 “원로교수가 어느 제자를 택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며, 눈 밖에 나면 교수임용은 포기해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에 학교측의 채용기피까지 더해져 박사들의 진로를 막고 있다. 국공립 사립 할 것없이 대부분 대학이 재정상의 문제, 혹은 신입생이 줄어드는 비인기 학과라는 이유를 들어 교수 신규 충원을 꺼리고 있다. 사립 S대의 한 교수는 “지방대에서 정원 자율화와 함께 교수채용도 자율화되자 기초학문분야에서는 교수를 신규로 채용하는 곳이 거의 없다. 입학생이 줄어들고 교수도 제대로 안 뽑으면 10~20년 안에 기초학문은 사라질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 결과 현재 대학 평균 전공과목의 시간강사 의존률은 34.5% (전체 교원중 시간강사가 차지하는 비율은 47.6%) 교수 1명당 학생수가 평균 39.7명이라는 열악한 교육환경에 처하게 됐다. 2001년부터 2004년까지 3년간 2천여명의 교수 충원으로 국립대 교수 확보율을 75%선까지 높이겠다던 한완상 전 교육부총리의 약속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 게다가 선진국과는 달리 한번 임용되면 거의 정년이 보장되는 관행도 신진인력의 교수직 진출을 어렵게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많은 박사학위자들이 위촉연구원이나 시간강사, BK21계약교수 같은 비정규직으로 떠돌기도 하고 S모 박사처럼 다시 외국으로 나가 기업에 취업하거나 기약없는 연구원생활을 한다. 학위 취득까지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한 고급인력이 실업 또는 불안정한 비정규직 상태로 있거나 국내에 자리를 찾지 못하고 외국으로 나가는 것은 국부의 유출이나 다름없으니만큼 박사인력이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주는 일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한국과학기술인연합 객원기자  이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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