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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과학도가 방황한다 - 외국 학생에 의존하는 실험실-1 [04.06.20/과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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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g 작성일2004-06-22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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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빈 실험실 동남아계가 메워
 
지방대 중국, 동남아에 러브콜
기술3국 유출 등도 걱정돼야

경기도 수원에 위치한 성균관대 약학과 지상철 교수와 박현주 교수 실험실. 동남아 출신임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외국 학생 8명이 신제품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해 실험에 열중하고 있다.
연령대는 다양하다. 25~45세. 모두 베트남 호치민 대학 약대 출신으로 대부분 석·박사 과정을 밟는 학생이고 두 사람만 포스트닥터 과정이다. 이들 중에는 호치민 대학 교수로 재직하다 타국의 실험실에 학생을 자처하고 온 이도 있다.
의약분업 이후 대학원에 진학하려는 약학과 학생들이 급격히 줄어들자 지상철 교수가 베트남 현지로 달려가 ‘긴급 수혈’한 외국 연구인력들이다.
대학 이공계 진학 기피 현상이 심각해지면서 각 대학 실험실에 동남아 학생들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중국과 동남아 유학생 유치에 앞장서고 있는 것은 대학 당국과 이공계 교수들. 지난해 국제교육진흥원이 외국인 유학생을 유치하기 위해 인도 뉴델리에서 개최한 유학박람회에 한양대 인하대 아주대 등 11개 대학이 참여했다.
앞으로도 말레이시아, 카자흐스탄, 중국, 베트남 등지에서 계속해서 유학박람회가 열릴 예정이며 다수의 대학들이 참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중 한양대학교는 동남아 학생 유치에 성공한 대표적인 케이스다. 현재 이 학교에는 중국·필리핀·말레이시아 등 22개국 출신 학생 210명이 학사·석사·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이공계 유학생을 선별해서 유치한 것은 아니지만 유학생 절반이 기계공학과·화학공학과 등 공대 석박사 학생들이다.
하지만 이공계 학생 유치로 골머리를 앓는 것은 아직까지 학부생 수급에 큰 어려움이 없는 서울의 4년제 대학보다 지방대학 쪽이다. 지방대학들은 교수진까지 나서서 장학금과 생활비 등 각종 혜택을 제시하며 동남아와 중국 유학생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2001년부터 ‘우수 외국인 대학원생 유치’ 프로그램을 운영, 이공계 인력확보에 나선 경북대학교. “이공계 대학원에 진학하겠다는 학생들이 없어 해외로 눈을 돌렸는데, 유학생 유치를 위해서 많은 혜택을 제시한다”는 게 이 학교 대외협력팀 관계자의 말이다.
등록금 면제와 무료 한국어수업은 기본. 건강보험료 지원에 담당 교수들이 유학생 생활비 보조까지 분담하고 있다. 그 결과 이 학교에서는 현재 71명의 중국, 베트남, 파키스탄, 우즈베키스탄, 몽고 학생 등이 석사과정에서 공부하고 있다. 이들 중 70%가 이공계다.
조선대학교 역시 250명의 외국인 유학생 중 많은 수가 이공계 대학원에 집중돼 있다. 학부의 경우 전 학과에 유학생이 고루 분포돼 있지만, 대학원은 이공계 유학생이 단연 많다. 대학원 유학생의 80%는 중국인, 나머지는 네팔, 베트남 등 동남아 학생들이다.
이 학교 역시 수업료 면제 혹은 인하 혜택과 함께, 교수들이 연구비에서 보조금을 갹출해 학생들에게 30~50만원씩 생활비를 지원해준다.
이같이 이공계 인력을 필요로 하는 대학들의 수요와, 장학금과 생활비 혜택까지 받으며 공부하려는 유학생들의 공급이 맞아떨어져 국내 체류하는 중국, 동남아 유학생 수는 눈에 띄게 급증했다.
법무부 체류심사과에 따르면 학생비자를 발급 받고 한국에 체류 중인 외국인 수는 2000년 4천15명에서 2003년 7천929명으로 2배 가까이 늘었다. 중국인은 1천794명에서 4천218명, 베트남인은 92명에서 301명, 말레이시아인은 28명에서 94명으로 증가하는 등 동남아시아 학생은 현재 5천여명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이들 중 많은 수는 의학, 치학, 컴퓨터 관련학과 등 창업, 취업에 직접적 도움이 되는 학과에 편중돼 있는 편. ‘연구 인력’을 구하기 위해서는 대학과 교수 개인의 상당한 투자가 뒤따라야 한다. 한양대 국제협력센터 관계자는 “동남아와 중국 학생들도 실질적으로 취업과 직결된 학과로는 자비 유학을 많이 오지만 순수 과학은 선호도가 떨어져 아무래도 장학금 등 혜택을 많이 원하는 편”이라고 말한다.
실제 성균관대 약학과에서도 베트남 학생들을 유치하기 위해 교수 연구비조로 50~60만원의 생활비를 지원하고 1년에 한 번씩 해외 연수를 다녀올 수 있는 비행기표까지 학생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국내 학생들의 이공계 진학 기피로 텅 비어가는 실험실을 외국 유학생들이 메꾸고 있는 현실에 대해 “안타깝지만 우선 연구가 계속되려면 달리 도리가 없다”는 의견과 함께 “적극적으로 인력수입에 나서야 한다”는 견해도 제기되고 있다. 제3국에서 우수 학생을 유치해 자국의 연구개발 인력으로 활용하는 것은 대부분 선진국들에 공통적인 현상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문제는 이렇게 유치한 연구인력들이 학업을 마친 뒤에도 한국에 체류하며 국내 과학기술력으로 활동하는가의 여부다. 유학생들이 몇 년 배우고 익히는 과정을 거친 뒤 자국으로 돌아가 버린다면 국내 기술력 축적의 순기능보다 지식과 기술의 제3국 이전 및 유출이라는 결과가 커질 수도 있다. 이들 유학생이 한국에서 쌓은 연구업적을 우리 과학계에 환원, 축적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이들로 하여금 한국에 대해 장기적인 전망을 갖고 이 땅에 거주하며 활동할 수 있게끔 제도적으로 지원하고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한국과학기술인연합 김정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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