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수당 확대 '없던 일로'·결식아동 급식비 '0원'

정유미· 최명애 기자 2010. 12. 12.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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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치기 당한 서민·복지예산

2011년도 예산안 통과 과정에서 이른바 '실세'들은 수백억원, 수천억원씩 지역 예산을 챙기고 서민·복지예산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여야가 합의한 예산, 심지어 한나라당이 주도해 책정한 예산마저 줄줄이 삭감됐다. 국민들은 지금 이 나라가 도대체 누구를 위한 나라인지 묻고 있다.

(1) 영유아 필수 예방접종 추가 예산 전액 삭감338억원 '싹둑'… 여·야 합의도 무시

영·유아 국가필수 예방접종은 이번 '날치기 파동'의 최대 희생양이 됐다. 국회 보건복지위에서 여야 합의로 마련한 국가지원 예방접종 추가 예산 338억원은 예결위에서 전액 삭감됐고, 삭감된 안은 국회 본회의를 그대로 통과했다.

영·유아 국가필수 예방접종은 홍역·수두·소아마비·일본뇌염 등 11개 전염병에 8개 백신을 맞도록 돼 있다. 보건소는 영·유아에게 무료 접종을 해주지만 동네 병·의원은 일정 금액을 받는다. 백신비(8000원)는 정부가 지원하지만 의사 접종비(1만5000원)는 개인이 따로 부담해야 한다. 병·의원에서 12세 이하 어린이가 필수 예방백신(8종·총 22회)을 접종하려면 총 33만~49만원을 부담해야 한다. 그러나 서울 강남구·경기 광명시 등 5개 지방자치단체는 무상지원을 하고 있다. 지자체 재정수준에 따라 예방접종 혜택의 차이가 생겨나면서 중앙정부 차원의 전액 무상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고 여야도 합의했다.

국회 보건복지위는 일단 국가필수 예방접종의 본인 부담액을 5000원으로 줄이는 선에서 예산을 책정키로 했다. 1회당 접종비용이 1만5000원인 점을 감안할 때 3분의 1 수준으로 줄이는 안이었다. 정부가 제출한 2011년 예산안은 320억5600만원이었으나 여야는 심의 과정에서 659억4000만원으로 늘리기로 했다. 하지만 복지위 증액분(338억원)은 본회의 통과 과정에서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A형간염 필수 예방접종도 무산됐다. 국회 보건복지위는 최근 영·유아와 청장년층 사이에 A형간염 환자가 급증하자 국가필수 예방접종 예산에 A형간염을 넣기로 하고 2011년 1~2세 43만6900여명의 접종비로 62억6500만원을 책정했다. 그러나 역시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예방접종 예산은 여야 합의 이전에 한나라당 공약이기도 했는데 날치기로 무산됐다"면서 "어린아이들의 밥숟가락과 예방주사를 빼앗아 4대강 사업 예산에 쏟아붓는 정부가 과연 친서민 정부인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2) 양육수당 지원 확대 2700억원 전액 삭감여당 공약 뒤집어… '보육 돌봄'도 말뿐

정부·여당이 친서민 중도실용 정책의 '대표선수'로 내세웠던 '양육수당 지원 확대'도 예산안 통과 과정에서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이 정책은 한나라당이 지난 9월 저출산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차상위계층뿐 아니라 중산층에도 지원을 확대하자는 취지에서 내놓았다. 보육시설을 이용하지 않는 0~2세 영아에 대한 양육수당(월 10만~20만원) 수혜자를 소득 하위 70%까지 확대키로 한 것이다. 정부는 897억원을 예산으로 책정했는데, 국회 보건복지위는 이를 3641억원으로 늘렸다. 그것도 한나라당이 앞장을 섰지만 결국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진 못했다.

보육 돌봄서비스 예산도 사라졌다. 정부가 책정한 3950억2200만원의 예산을 국회 복지위는 578억8700만원 늘어난 4529억1000만원으로 증액했다. 맞벌이 부부의 출산을 돕기 위해서는 자녀를 믿고 맡길 수 있는 보육시설 지원이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여야는 평가인증을 받은 보육시설 보육교사에게 담임수당을 주고 대체교사 인건비도 추가 지원키로 합의했지만 무산됐다.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대표(제주대 의대 교수)는 "여야가 합의한 예산조차 '없었던 일'로 만드는 것은 민주주의에 어긋나는 반칙"이라고 말했다.

(3) 방학 중 결식아동 급식 지원비 전액 삭감수십만명 굶는 방학… 공부방 지원도 '0'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개최하고 세계 15대 경제대국에 드는 나라에서 당장 이번 겨울방학부터 굶는 아이들이 나오게 됐다. 중앙정부가 지원하는 결식아동 무상급식 예산이 '0원'이 됐기 때문이다.

정부는 2009년 결식아동을 위한 방학 중 급식비로 542억원을 지원했고 2010년에도 전액 삭감했다가 비판 여론이 일자 절반 수준인 285억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하지만 2011년 예산에는 단 한 푼도 반영하지 않았다. '날치기' 이전부터 전혀 성의를 보이지 않은 것이다.

정부와 한나라당은 "방학 중 아동 급식지원사업은 2005년 지방자치단체로 이양된 만큼 관여할 바가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현행 '보조금의 예산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국고 보조금 지급이 금지돼 있어 정부 예산안에 편성할 수 없다는 것이다. 2009년과 2010년에는 경기침체로 국회 상임위 결정에 따라 한시적으로 국비지원을 했을 뿐이라는 얘기다.

복지부에 따르면 아동급식 예산은 2010년 총 3146억4700만원 중 지자체가 2943억3000만원을 부담했고 정부는 203억1700만원을 냈다. 그러나 2011년도에는 3104억5200만원을 지자체가 전액 부담해야 한다. 각 지자체는 정부에 휴일 및 방학 중 결식아동 급식지원 예산을 늘려줄 것을 건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결식아동 급식지원을 받는 아동은 저소득층이거나 소년소녀 가장, 한부모·조손가정의 자녀들이다. 2008년 기준으로 68만6000여명이 학기 중 급식지원을 받았고 방학이나 휴일에는 25만8000여명이 급식지원을 받았다. 나머지 40만명 정도는 방학이나 휴일에 굶고 있는 셈이다.

청소년 공부방에 대한 국가 지원도 완전히 끊겼다. 청소년 공부방은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 방과후 숙제와 예·복습 등의 도움을 받는 곳으로 전국에 385곳이 있다. 올해 28억9900만원의 예산을 지원받았으나 내년 예산은 '0'원이다. 청소년 공부방은 당초 보건복지부에서 담당했지만 지난 3월 여성가족부로 업무가 옮겨갔고 2011년 지자체로 이관되면서 예산을 책정받지 못했다.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2009년 청소년 공부방을 지역아동센터로 전환하기로 했다. 1년 이상 경과돼야 지역아동센터에서 인정할 수 있기 때문에 내년에는 지원이 어렵다"고 말했다.

(4) 대학 장학금·등록금 지원 예산 대폭 삭감학자금 금리 뛸 듯… '반값 등록금' 헛말

대학 장학금 및 등록금 지원을 위한 예산도 이번 국회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대폭 삭감되거나 누락됐다.

먼저 한국장학재단 출연금 1300억원이 전액 삭감돼 내년 신학기 등록금 대출금리 상승이 우려된다. 교육과학기술부는 한국장학재단에 매년 726억~4040억원을 신용보증 기본재산 지원용으로 출연해 왔다. 한국장학재단이 대학생들의 정부보증학자금 대출 보증을 서면서 재단의 '운용 배수'를 적정 수준으로 유지해 보증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운용 배수는 보증 잔액을 기본 재산으로 나눈 값으로 12.5배 이하를 적정값으로 여긴다.

교과부는 당초 예산안에서 내년 출연금 1300억원을 투입해 현재 12.7배인 운용 배수를 10.9배로 낮춘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국회 예결위가 "추가적 예산지원은 불필요하다"며 전액 삭감함에 따라 2011년 운용 배수는 14.6배로 상승하게 된다.

운용 배수가 오르면 보증기관인 한국장학재단의 신뢰성이 떨어져 채권 발행 금리가 오르고, 학자금대출 금리 인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정부가 3대 친서민정책의 하나로 내세운 취업후상환제(ICL)의 2011년도 이자 대납 예산도 올해의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ICL 이자 대납'은 장학금을 받은 사람들이 취업후 대출한 원금과 이자를 상환할 수 있을 때까지 정부가 대신 이자를 내주는 제도다. 교과부는 "ICL의 실제 이용자 수가 22만여명에 그치고 있다"며 올해 87만여명분 3015억원이던 예산을 내년도엔 22만5000여명분인 1116억8300만원으로 삭감했다. 차상위계층 대학생 장학금도 내년 2학기부터 폐지키로 하고 64.3% 삭감된 287억5000만원으로 확정했다.

안진걸 참여연대 민생희망팀장은"정부는 '반값 등록금'을 약속했지만 실제 등록금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는 전혀 없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교과부는 학자금 대출 금리 상승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한국장학재단이 기업어음증권을 발행할 수 있도록 관련 법령을 개정했다고 12일 밝혔다. 교과부 측은 기업어음증권을 발행하면 시중보다 낮은 금리로 재원을 조달해 대출 금리를 낮출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기업어음증권은 단기자금 조달에 주로 활용되기 때문에 학자금 대출 금리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 정유미· 최명애 기자 youme@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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