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저는 지금도 황우석 박사가 엄청 잘못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물론 잘못을 했지만 한국 과학계의 연구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가 또 있거든요. 그런 점을 고치지 않으면 제 2의 '황우석 사건'은 100% 다시 일어날 겁니다."

한국 과학계에서는 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는 걸까. <88만원 세대> 저자인 우석훈 박사는 보편적으로 자리잡은 '연구과제중심운영제'를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우 박사는 지난 15일 '과학기술의 경제학'을 주제로 <오마이뉴스> 강의실에서 열린 '응용경제학' 특강에서 "과학기술의 특징은 10년이나 20년을 꾸준히 투자했을 때 딱 한번 쓸 만한 기술이 나오는 것"이라며 "현재 20대 과학자들 대부분을 비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한국의 과학발전은 어렵다"고 지적했다.

"한국 과학계, 학생들에게 전공 권유 못 할 수준"

우석훈 박사가 <오마이뉴스> 강의실에서 '응용경제학' 강의를 하고 있다.
 우석훈 박사가 <오마이뉴스> 강의실에서 '응용경제학' 강의를 하고 있다.
ⓒ 김동환

관련사진보기

우 박사가 한국 과학계의 가장 큰 병폐로 지목한 것은 1996년에 정부가 도입한 연구과제중심운영제(PBS). 연구과제중심운영제는 말 그대로 연구과제별로 과학자들의 월급을 주는 개념이다. 우 박사는 "이 제도가 도입되기 전에는 과학자들이 일정수준 이상의 월급을 받았다"며 "PBS를 도입하면서 월급의 절반을 기본급으로 하고 프로젝트 성과에 따라서 지급하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연구 집단에는 연구자가 있고 '프로젝트 매니저(PM)'라는 사람이 있어요. 연구의 속도나 방향을 총괄하는 사람인데, 서울대 줄기세포팀의 황우석 박사 같은 사람들이 프로젝트 매니저라고 보시면 됩니다. 연구과제중심운영제가 도입되면서 이 프로젝트 매니저들의 역할과 권한이 커졌습니다. 인건비가 안정적이지 않고 성과를 내야 돈이 나오니까 자연스럽게 프로젝트 매니저들이 연구의 중심이 됐고 황우석 박사를 비롯한 '스타 PM'들이 등장하게 됐지요."

이러한 현상은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과 맞물리면서 문제를 자아내기 시작했다. 당시 정부에서는 IT분야와 BT(생명과학)분야에 정부 지원을 집중했는데, 기술발전을 위한 로드맵을 짜는 대부분의 과정에 각 분야의 '스타 PM'들이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

"예를 들어 BT 사업을 하나 한다고 가정하면 정부에서는 거기에 적당한 연구자를 찾아서 선정하고 지원합니다. 이 과정에서 유명한 '스타 PM'에게 자문을 구합니다. 쉽게 말하면 그 연구자를 정하는 사람이 황우석 박사라는 얘기예요. 그런데 황 박사 자신이 연구자잖아요. BT분야 국가 계획도 황 박사가 짜고, 그거에 맞춰서 자기 연구팀 연구 계획도 짜고 하는 식이지요. 프로젝트 매니저를 제어하고 검증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니 '황우석 사태'가 벌어졌던 겁니다. 몇몇 '스타 PM'들이 각각의 '소왕국'을 구축하고 있는 지금 구조라면 제 2의 황우석 사건은 100% 일어날 것이라고 봅니다."

'스타 PM'들이 연구실의 중심이 되다보니 실제 연구를 진행하는 연구진들의 중요도는 뒷전으로 밀리기 마련. 특히 전문성이 떨어지는 젊은 연구원일수록 홀대받는 경향이 강하다. 우 박사는 "지금 20대 연구자는 대부분 비정규직"이라며 "대학생들에게 과학기술 전공을 하라는 얘기를 할 수 없을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공대 실험실을 랩(LAB)이라고 부르는데요. 대학에서 가장 민주화와 인권이 필요한 곳이 이곳이에요. 비정규직 연구원 자리라도 얻기 위해서는 거기서 선생한테 잘 보여야 하거든요. 이런 구조는 연구자가 돼서도 마찬가집니다. 쉽게 말하자면 프로젝트 하나 끝나고 뒤풀이 하는데 비정규직 연구자가 2차 안 가고 그냥 집에 가겠다고 하면 그 사람은 다음 프로젝트에서는 별다른 이유 없이도 얼마든지 제외될 수 있는 그런 분위기인 겁니다. 과학기술의 특징은 10년이나 20년을 투입하면 딱 한번 뭐가 나오는 거예요. 항상 해고의 위협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연구자는 '기술자'가 될 뿐입니다."

과학기술 발전 정책 방향 세워야

그렇다면 한국의 과학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조치들이 필요할까. 우 박사는 '스타 PM'들이 연구를 장악하는 '소왕국 현상'을 줄이는 것과 더불어 과학기술 발전에 대한 정책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른 건 몰라도 연구과제중심운영제는 반드시 없애야 합니다. 그리고 큰 사업을 하는 것보다는 작은 사업을 여러 개 만들어서 다양한 연구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지요. 또 효율적인 과학발전을 위해서는 정책방향을 설정하는 것이 필요한데 이명박 정부는 아예 과학기술부를 없애 버렸지요. 생태계로 따지면 과학기술을 발전시키는 천재가 갑자기 나올 수는 없습니다. 어떤 '유별나게 좋은 과학자' 한 명이 나오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전에 '많은 과학자들'이 만들어져야 하죠."

우 박사는 "한국에서는 큰 규모의 사업을 벌이면 커다란 효용을 가지는 기술이 나올 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농부들이 겨울에 농사를 쉬며 만드는 스위스 시계가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듯 작은 규모에서 성공적인 기술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하며 강의를 마쳤다. 

수강생들이 <오마이뉴스> 강의실에서 우석훈 박사의 '응용경제학' 수업을 수강하고 있다.
 수강생들이 <오마이뉴스> 강의실에서 우석훈 박사의 '응용경제학' 수업을 수강하고 있다.
ⓒ 김동환

관련사진보기



태그:#우석훈, #응용경제학, #과학기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