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의 타락'에 대하여. (숨겨진 타락의 주체) - 배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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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sop2
등록일
2002-07-14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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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한겨레나 우리 사이트에 '지식인의 타락'을 요지로 하는 글이 자주 올라오고 있다. 보기에 그 주요대상은 교수다.

나는 대학을 박사학위로 국내에서 마쳤기에 누구보다 많은 교수들을 접하고 살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학부에서 강의를 하였던 교수, 숙제 풀려고 찾아갔던 타과 교수, 학회가서 질문했던 교수, 답했던 교수, 그리고 내 논문을 지도했던 교수들. 그 수많은 교수들.

그 수많은 교수들이 모두 타락한 지식인 이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는 적어도 학문적으로는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던 이분들에게 감사하고 있다.

나는 상당히 비판적이고 나자신도 스스로 '좌익'이라고 생각한다. 기득이라는 두 글자를 증오'하는 편이다.
한 마디로 참 못됐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내 시각으로도 주변에 '타락'이라는 꼬리표를 붙일 정도로 한심하고 저질인 교수는 없었다. 상대적으로 깨끗한 학교를 나온 탓인지 모르지만. 타락을 떠나 진짜 연구밖에 모르는 답답한 교수는 차라리 더 많이 접하고 살았다.
지금까지 내 글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짐작할 것이다. 나는 지극히 현실적이어서 교과서류의 '오로지 학문'과는 거리가 있는 편이다. 그래서 인지도 모르겠다. 요즘 '타락한 지식인'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교수들은 이 사회의 희생양으로 느껴진다. 물론 비난받아 마땅한 진짜 '타락한' 지식인이 있다. 분명히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내 주변 교수들은 그들보다 더 답답한 한국의 연구지원 풍토와 사회적 냉대속에서 고군분투, 열심히 연구하고 제자를 길러내는 진짜 지식인들이었다.

과제 제안을 하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한 체제를 만들어 놓고, 과제 제안을 하자는 것을 비리로 몰아 붙이는 것은 폭력이다. 그 과정에서 술을 마신다고? 한국토종인 내가 양키들 하듯이 일상생활을 해야 할 필요를 전혀 느끼지 않는다. 유럽에 가보라. 퇴근후 한잔은 우리보다 더하다.
대학원생 봉급을 착복한다고? 실제로 그렇다면 진짜 그 교수는 타락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한번도 그런 교수를 본 적이 없다. 단지 대학의 규정이나 기관의 규정상 한계에 부딫혔거나 또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문제는 갖가지 규제로 골머리를 썩게하고 제약을 가하는 체제이지 교수에 있지 않다. 대학원생 봉급의 지급 여부와 상한선은 대학이 정한다. 단과별 학과별 형평도 고려한다. 과제를 10개를 해도 하나도 안하는 학생과 동등하게 봉급(내지 장학금)이 동등하도록 학칙이 정해졌다면 할 수 없다. 그 책임이 교수에게 있다고? 총장에게 있을지언정 교수에게 있지는 않다. 총장은 교수아니냐는 질문은 하지 말자. 입 아프다. 그 사람도 국민이고 우리도 국민이다.
만약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데 그런 타락한 교수와 같이 일한다면 그 사람은 정말 인생의 큰 악재를 만난 것이다. 그러나 옆 실험실의 대학원도 같이 못 받는다면 학칙과 관련된 제재는 없는지 우선 먼저 알아보라. 과제비의 집행은 집행기관의 원칙이 의뢰기관에 우선한다. 학칙에 월급을 못주게 돼 있다고 연구비도 그만큼 작게 받아야 한다는 '오로지 원칙' 이야기는 하지 말자.

내 직장인 정부출연 연구소에서도 그런면을 느낀다. 기업체에 몸담고 있다가 이곳으로 옮긴 나에겐 너무 '오로지 연구'다. 사석에서 잠깐씩 소망어린 목소리로 '우리 연구소도 이러이러 하면 좋겠다' 하는데, 여간 조심스럽지 않고 그런 말조차 호사스런 것으로 생각하고 오로지 자신의 능력을 탓하고 더 개발하려고 한다. (기업체? 안 그렇다. 대놓고 상사와 사장과 회사를 욕한다. 안 들을때만.)

우리도 지식인이다. 이 사회에서 바보취급 받고 있지만 그렇더라도 지식인이다. 그럼 나도 같이 지식인의 의무, 소위 말하는 로블리스 오블리제를 말하는 부류라도 되는 것인가? 아니다. 결단코 아니다. 이 사회는 한번도 지식인에게 책무를 말할 만큼 권리도 준 적이 없다. 단지 부자에게만 특권이 있었을 뿐, 지식인에게는 오히려 혹독한 시련만 주어져 왔다고 생각한다.

이글을 읽는 여러분도 한번 생각해 보라. '내가 아는 10명의 지식인중 비판받아 마땅한 이가 몇명일까? ' - 그들을 비판하면서 한편으로 이 사회의 총체적 부조리를 잊지 말아야 한다.

혹자는 이야기 할 것이다. 하루벌어 하루먹는 사람의 부패와 타락보다 사회 지도층과 지식인의 타락이 더 큰 병패를 부른다고. 맞다. 그러나 그 말은 영향력이 있는 지도층이나 영향력이 있는 지식인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우리사회에서 진짜 영향력이 있다고 해야할 사람들이 누구인가? 나도 어렸을 때에는 정치가나 교수일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그 답을 요즘에 깨달았다. 오늘날 대한 님국 사회의 틀을 만들고 이 지경으로 소위 '깽판'을 친 것은 지식인이 아니었다.

언론과 정부와 정치였다.
그들은 지식인이 아니냐고? 모르겠다. 지식인인지.....

 06/15/2002 자유게시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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