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의 여성 과학자들2

글쓴이
최성우
등록일
2004-10-29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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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 과학기술계 안팎에서 여성과학자들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고, 사회 전반적으로 성차별과 편견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에서 여성과학기술인들도 제 능력을 발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서구 선진국들에서도 여성과학자들이 차별과 홀대를 받거나 업적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사례가 상당히 많았다. ‘역사 속의 여성 과학자들’의 삶을 살펴보는 것도 상당한 의미가 있을 듯하다.

흔히 ‘퀴리 부인’이라 불리는 ‘마리 퀴리’(Marie Curie; 1867-1934)는 성공한 여성과학자의 대명사처럼 알려져 있는데, 노벨상을 두 차례나 받은 그녀조차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파리 과학아카데미에서 회원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또한 퀴리 부인의 큰딸인 이렌 퀴리(Irene Curie; 1897-1956) 역시 1935년도 노벨화학상을 받는 등 크게 성공한 여성과학자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이들 퀴리 모녀에게 피에르 퀴리(Pierre Curie; 1859-1906)와 프레더릭 졸리오(Frederic Joliot; 1900-1958)라는 훌륭한 ‘과학자 남편’의 도움과 후원 없이도 과연 제대로 인정을 받았을지는 의문이다.
왜냐하면 리제 마이트너(Lise Meitner; 1878-1968)와 로절린드 프랭클린(Rosalind Elste Franklin; 1920-1958)처럼 퀴리 모녀에 못지않은 비범한 능력과 열정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홀로서 고군분투하다가 번번이 좌절했거나, 남편 과학자가 이해나 배려를 제대로 해주지 않은 탓에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버린 안타까운 경우도 매우 많기 때문이다.

리제 마이트너는 독일의 오토 한(Otto Hahn) 등과 함께 우라늄 원자핵이 두 쪽으로 쪼개지는 핵분열의 원리를 명확히 밝혀내는 커다란 업적을 남겼다. 그러나 원자폭탄과 원자력 발전의 원리를 제공한 중요한 발견을 하고도 그녀는 노벨상을 받지 못했다. 그녀의 공동 연구자였던 오토 한은 1944년도 노벨화학상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노벨상 심사위원회가 ‘학문 분야간 연구(Interdisciplinary study)’의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여러 차례 수상자 후보로 오른 그녀를 번번이 탈락시킨 것은, 여성과학자에 대한 차별과 편견 때문이었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또한 로절린드 프랭클린(Rosalind Elste Franklin; 1920-1958)만큼 엇갈린 평가와 숱한 논란이 뒤따르는 여성과학자도 드물다. 많은 과학사학자들의 견해로는, 그녀가 DNA의 이중나선구조를 밝히는데 결정적 공헌을 했음에도 업적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고, 심지어 그녀가 노벨상을 도둑맞았다고 까지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왓슨(James Watson; 1928-)과 크릭(Francis Crick; 1916-2004)이 경쟁자였던 윌킨스(Maurice Wilkins)와 함께 1962년도 노벨 생리의학상까지 받게 된 불후의 업적인 DNA의 이중나선구조 발견은 프랭클린이 찍은 DNA의 X선 회절사진이 결정적 단서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들은 프랭클린의 허락 없이 사진을 빼돌린 것으로 알려져서 오랫동안 구설수에 오르기도 하였다.
이들이 노벨상을 수상하기 4년 전인 1958년 4월, 프랭클린은 암으로 37세의 아까운 나이로 삶을 마감했기 하였지만, 설령 그녀가 그때까지 살아 있었다고 해도 3명까지만 공동수상을 허용하는 규정과 여성을 차별하는 풍토 때문에 노벨상 수상자 대열에 들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은 두말할 것도 없이 20세기 최고의 과학자로 꼽힌다. 그러나 무명의 특허청 하급 관리로 일하던 그가, 광량자 가설, 상대성 이론 등으로 일약 물리학계의 세계적인 슈퍼스타로 떠오른 데에는, 그의 첫 번째 부인이었던 밀레바 마리치(Mileva Maric; 1875-1948)의 수학적인 뒷받침과 도움이 상당한 힘이 되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주요 논문들을 퀴리 부부의 경우와는 달리 부부공동 명의로 발표하지 않았기 때문에, 밀레바는 자신의 능력과 업적을 인정받지 못하였다.
더구나 심신이 병약한 둘째 아들이 태어난 이후로 남편의 연구에 별로 힘이 되지 못했던 그녀는 아인슈타인과 잦은 불화 끝에 이혼하였고, 차츰 세인의 기억으로부터 잊혀진 채 1948년에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이로 인하여 여성계에서는 아인슈타인이 과학자로는 위대한지 몰라도, 가정에서는 매우 ‘나쁜 남편’이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탁월한 능력에도 불구하고 ‘과학자의 아내’ 지위에 머물러야 했던 또 하나의 여성과학자로는 독일의 천문학자 마리아 빙켈만(Maria Winkelmann, 1670-1720)이 있다. 17세기 무렵 독일에서는 여성 천문학자들이 공식적인 학교 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어릴 적부터 지녀왔던 꿈을 성취하기 위하여, 무려 30년 연상인 천문학자 고트프리트 키르히(Gottfried Kirch)와 결혼하여 그의 조수가 되는 길을 택하였다.
남편을 도와 천체관측에 몰두하던 그녀는 1702년 새로운 혜성을 발견하였으나, 발견자는 그녀가 아닌 남편의 이름으로 보고 되었다. 그리고 1710년 남편이 죽은 후 여성 천문학자에 대한 노골적인 적대감과 냉대로 인하여 결국 천문대를 떠나는 등, 빙켈만 역시 많은 다른 여성과학자들과 마찬가지로 능력을 제대로 꽃피워보지 못한 채 두터운 시대적 장벽에 막혀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갔다.
(글 : 최성우 : 한국과학기술인연합 운영위원)


* 사진 : 아인슈타인의 첫번째 부인이었던 밀레바 마리치

  • Simon ()

      E=mC^2에도 나왔던 걸로 기억합니다만, 암튼 아인슈타인 첫번째 부인이 그렇게 수학을 잘 했다고 들었습니다. 근데 조강지처는 왜 버렸는지..?

  • 최성우 ()

      아인슈타인이 (사생활에 있어서는) 바람기가 상당히 심했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서 두번째 부인이었던 엘자도 마음 고생을 많이 하는 등... 
    그리고 첫 부인인 밀레바 마리치와의 결별은 둘째 아들로 인한 불화도 상당한 원인이 되었던 듯합니다. (서로 네탓?) 노벨 물리학상 수상으로 받은 상금도 이혼 위자료로 다 주었다고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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