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적인 입체영상 - 홀로그래피

글쓴이
최성우
등록일
2006-01-12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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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서 영화와 과학기술에 대해 조명하는 교양과학 서적과 대중지의 칼럼 등을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물론 영화 자체가 최신 과학기술의 결정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갈수록 특수 효과, 컴퓨터 그래픽 등 온갖 첨단기술들을 채용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영화에 나오는 미래 과학기술들을 눈여겨보면서 구체적 내용이나 실현 가능성 및 예상 시기, 혹은 잘못 그려진 부분 등을 꼼꼼히 살펴보는 것이 더 큰 의미가 있을 듯하다.
특히 SF영화들을 이런 측면에서 더욱 볼만한 부문들이 많은데, 물론 SF영화라 불릴만한 작품이라 해서 다 수준이 높은 것은 아니고, 제대로 된 과학기술의 조명보다는 할리우드식 오락과 액션 등의 외형적 볼거리에만 머무르고 있는 것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저명 SF작가의 원작 소설을 공들여 영화화한 작품 등, SF영화들 중에는 화려한 첨단기술의 경연 뿐 아니라 미래의 사회상에 대한 진지한 성찰, 과학과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문제에 관한 해답의 추구 등이 잘 나타난 훌륭하고 의미 깊은 작품들도 많다.
이들 영화 속에 나타난 미래 과학기술의 여러 측면들을 차례로 조명해 보는 것은 과학기술에 관심과 호기심을 갖는 일반 대중뿐 아니라, 해당 분야 혹은 다른 분야들에 종사하는 과학기술인들에게도 나름대로 도움이 될 듯하다.

그 동안 저명 SF영화나 첨단과학기술이 등장하는 여러 영화들에서 빠지지 않고 무척 자주 등장하는 소재 중의 하나로 바로 3차원 입체영상 기술, 좀 더 좁은 범주로 말하자면 레이저를 이용한 홀로그래피(Holography) 기술이다.
현대 SF의 거장 중의 한사람인 필립 K 딕(Philip K. Dick; 1982~1982)의 작품은 여러 차례 영화화된 바 있다. 비교적 최근의 영화로서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한 마이너리티 리포트(Minority Report)는 이른바 ‘프리크라임(Pre-crime)’이라 불리는 첨단 사전 범죄 방지시스템의 철학적, 존재론적 의미를 주제로 한 영화이지만, 연료전지 자동차, 홍채인식 기술, 각종 오토메이션 시스템 등 미래 과학기술의 이모저모를 잘 보여준다. 특히 프리크라임 형사반장 격으로 나오는 주인공 톰 크루즈가 허공에 입체상으로 표시되는 ‘홀로그래피 터치스크린’ 상에서 현란하게 손을 움직이며 범인과 관련 정보 등을 검색하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같은 작가의 원작 소설인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We Can Remember It For You Wholesale)’를 폴 버호벤 감독이 스크린으로 옮긴 ‘토탈 리콜(Total Recall)'에서는 홀로그래피를 이용한 기술이 더 자주 등장한다. 폴 버호벤 감독은 물리학자 출신 감독답게 이를 더욱 현실감 있게 그리고 있는데, 초반에 여주인공 샤론 스톤이 홀로그래피 입체 텔레비전을 보면서 에어로빅을 배우는 장면이 나온다.
에어로빅 강사의 동작 하나하나가 입체 동영상으로 표시되므로, 바로 곁에서 이를 따라하면 훨씬 쉽고 실감나게 배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입체 텔레비전은 홀로그래피를 포함한 여러 방식이 차세대 텔레비전의 하나로서 국내외에서 활발히 연구되고 있는데, 과거 흑백에서 컬러텔레비전으로, 그리고 이제는 더욱 선명한 고화질을 즐길 수 있는 디지털 텔레비전으로 바뀌고 있으므로 아무래도 다음 차례는 입체영상 텔레비전을 실용화하는 것이라고 자연스럽게 예상할 수 있을 듯하다.
토탈 리콜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더욱 인상적인 홀로그래피 관련 장면이 나온다. 단신으로 적진 깊숙이 침투한 남자주인공 아놀드 슈왈츠제네거가 자신의 홀로그래피 입체영상을 비춰서 적군의 병사들을 감쪽같이 속여서 집중 사격을 받고 쓰러진 척 하다가, 느닷없이 뒤에서 나타나 적병들을 통쾌하게 무찌르는 대목이 그것이다. 그들은 뒤늦게야 ‘홀로그래피 영상에 속았다’고 외치지만, ‘진짜’ 아놀드 슈왈츠제너거로부터 기관총 세례를 받고 전멸을 당하게 된다.

지금까지 모두 6부작이 나온 ‘스타워즈(Star Wars)' 시리즈는 탁월한 SF영화라기보다는 기존 할리우드식 서부활극의 무대를 우주로 옮겨놓은 것에 불과하다는 평을 듣지만, 엄청난 흥행 수익을 기록할 만큼 대중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는 누렸다. 또한 과학기술적 측면에서 꼼꼼히 따지자면 광선검(Right saver), 우주비행 등 여러 가지 오류와 무리하고 황당한 부분들도 많다는 비판을 듣지만, 아무튼 화려한 볼거리와 함께 로봇, 고출력 레이저 포 등 나름대로 여러 미래기술을 차용하고 있다.
1977년에 나온 첫 작품, 즉 지금은 ‘스타워즈 에피소드 4 - 새로운 희망’이라 불리는 영화의 첫 대목에서는 은하제국 군에 쫓기던 레이아 공주가 자신을 구해달라는 메시지를 홀로그램 영상으로 저장하여 R2D2 로봇에게 전달하는 장면이 나온다. 나중에 이 로봇을 구매한 루크는 케노비에게 구원을 청하는 공주의 동영상을 보게 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전개된다.
또한 루카스 감독이 최근에 다시 재개하여 만든 이 시리즈의 프리퀼 3부작에서도 홀로그래피 장면은 무척 자주 등장한다. 즉 우주 공간에서 서로 멀리 떨어진 제다이 기사들 간의 통신 수단이 바로 홀로그래피 동영상으로 전송되는 송수신 장치이다. 이를 통하여 제다이 기사들은 바로 앞에서 생생하게 대화하듯이 의사소통을 할 뿐만 아니라, 제다이 원로회의에도 멀리서 참석할 수 있다. 즉 ‘홀로그래피 원격 입체화상회의 시스템’인 셈이다.

가장 최근에 개봉된 바 있는 ‘스타워즈 에피소드 3 - 시스의 복수’에서도 악의 군주의 유혹에 빠져 제다이를 배신한 아나킨 스카이워커가 제다이 사원에서 어린 기사들을 무차별 학살했다는 사실을, 캐노비와 요다가 홀로그램 동영상 기록을 통하여 알게 되는 장면이 나온다.
또한 여러 영화에서 홀로그래피는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을 구현하는 하나의 수단이거나, 이와 결합된 기술로도 자주 소개된다. 즉 가상현실을 다룬 여러 영화들에서 홀로그램 영상을 이용한 사이버 섹스(Cyber Sex) 장면 등이 가끔씩 등장한다. 그밖에도 홀로그래피 기술이 잠깐이라도 나오는 영화는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로 많다.

그렇다면 이들 영화에서 소개된 홀로그래피 기술은 어떠한 원리를 바탕으로 한 것이며, 실제로 미래에 구현될 가능성은 어느 정도나 될까?
홀로그래피(Holography)라는 단어는, 그리스어로 '완전하다'는 의미의 'Holo'와 그림이라는 뜻의 'Graphy'의 합성어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그러니까 완벽한 그림, 즉 3차원 입체영상을 찍고 재현할 수 있는 사진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가 필름 카메라 혹은 디지털 카메라를 통해서 촬영하는 일반 사진이 2차원 평면으로 되어있다. 즉 대상 물체를 빛의 명암과 색상에 의한 2차원 정보만을 기록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반면에 홀로그래피를 이용한 입체영상은 빛의 파동성을 이용하여 파면의 간섭을 통하여 3차원 정보를 기록하고 재생할 수 있다.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지면, 빠진 지점을 중심으로 물결파들이 동심원을 그리면서 바깥으로 전달되어 나가는 것을 볼 수 있듯이, 모든 파동은 고유의 진폭과 진동수, 위상을 지닌다. 빛의 본질이 전자기파의 일종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며, 빛은 다른 파동과 마찬가지로 간섭을 통하여 더 밝아지거나 더 어두워지거나 하는 간섭무늬를 만들기도 한다.
홀로그래피는 기준파(Reference wave)와 물체파(Object wave)라는 두 가지 빛(광파)의 간섭에 의해 물체의 위상정보를 기록할 수 있게 되는데, 이런 방식으로 기록되어 사진의 필름에 해당하는 것을 홀로그램(Hologram)이라고 부른다. 여기에 다시 빛을 비추면 3차원 입체영상이 재현되는데, 일반 사진과 달리 대상 물체의 위상정보가 함께 재생되기 때문이다.

홀로그래피는 헝가리 태생의 영국 물리학자 게이버(Dennis Gabor; 1900-1979))에 의해 1948년에 처음으로 제시되었다. 그러나 당시로서는 그것을 제대로 구현할만한 광원이 마땅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다지 발전하지는 못하였다.
그런데 1960년대에 들어와서 레이저(Laser)가 발명된 뒤로 홀로그래피 기술 역시 급속히 발전하게 되었다. 영어로 “유도 방출에 의한 빛의 증폭 (Light Amplification by Stimulated Emission of Radiation)"이라는 의미의 머리글자 합성어인 레이저는 일반 빛과는 다른 여러 가지 특성이 있다. 즉 여러 진동수(색) 성분이 섞여있는 보통의 빛과 달리 단색성(Monochrome)을 지니고, 매우 휘도가 강하며 빔(Beam)이 퍼지지 않고 직진하는 성질이 있다.
그러나 홀로그래피 입체 사진을 촬영할 수 있는 레이저의 가장 중요한 특성은 따로 있다. 즉 광파의 위상이 고르게 일치하는 ‘결 맞는(Coherent) 성질’이 있어서 간섭성이 매우 좋다는 것인데, 따라서 레이저는 간섭무늬에 위상정보를 기록하는 홀로그래피를 실제로 구현할 수 있는 최적의 광원이 되는 것이다. 게이버는 홀로그래피 발견의 공로로 뒤늦게 1971년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바 있다.

입체영상을 구현하는 수단이 꼭 홀로그래피 방식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홀로그래피는 다른 방법들에 비해 눈의 피로감이 없고 입체감 등에서 가장 뛰어난 특성을 지니고 있어서 현재도 박물관이나 미술 전시장 등에서 일부 이용되고 있다. 그러나 텔레비전으로 전송되어 우리 안방에 등장하거나, SF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수준으로 이용되리라 기대하기에는 아직 그다지 쉽지 않을 것으로 여겨진다.
즉 홀로그래피 입체영상 텔레비전 등이 상용화되려면 이를 촬영하고 재생하는 광학기술, 홀로그램을 기록하고 저장할 매체 관련 기술, 3차원 동영상 정보를 압축, 송신하는 신호처리 기술 및 TV 전송 기술 등 온갖 수준 높은 과학기술들이 요구되는데, 현재의 기술 수준으로는 이를 실제로 구현하거나 실용화할 단계에 크게 미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특히 3차원 입체영상을 구현하려면 2차원 영상과는 비교가 안 되는 엄청난 정보량이 필요한데, 이것을 실시간으로 내보내거나 수신하여 재현하기란 현재의 정보처리 기술, 전송기술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
물론 최근에는 고전적 의미의 홀로그래피 기술 뿐 아니라 컴퓨터 제작 홀로그래피(CGH; Computer Generated Holography) 등 다른 것을 융합한 기술들도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필자의 견해로는 홀로그래피를 만족할만한 수준으로 실용화하기 위해서, 기본이 되는 광학기술뿐 아니라 컴퓨터, 정보처리, 소자 재료기술 등 관련 분야에서 기술적 병목(Bottle Neck)들을 얼마나 제대로 해소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관건으로 보인다.


글 : 최 성우 (한국과학기술인연합 운영위원)

<기술과 미래> 2006. 1-2월호 '영화 속의 미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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