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이 인간의 뇌를 조종할 수 있을까?

글쓴이
최성우
등록일
2019-08-23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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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의 기생충 감염이라는 독특한 소재의 재난 영화 ‘연가시(Deranged; 2012)’가 몇 년 전 국내에서도 개봉되어, 수백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면서 상당히 화제가 적이 있다. 연가시란 곤충의 몸에 기생하는 가늘고 긴 철사 모양의 기생충으로서, 물을 통하여 숙주의 몸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산란할 즈음이 되면 숙주의 행동을 조종하여, 숙주인 곤충이 물속에 뛰어들어 자살하게 만드는 끔찍한 기생충이다.
 이 영화의 간략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한강을 비롯한 전국의 하천에서 참혹한 변사체들이 속속 발견되는데, 바로 인간의 뇌를 조종하여 스스로 물에 뛰어들어 익사하게 만드는 변종 연가시 때문임이 밝혀진다. 짧은 잠복 기간과 치사율 100%의 가공할 신종 기생충이 급속히 번지면서 나라 전체가 큰 혼란에 빠지는데, 제약회사 직원이었던 주인공이 연가시에 감염된 아내와 아이들을 살리기 위하여 고군분투한다는 이야기이다.
 이 영화의 영향으로 인하여 한때 적지 않은 사람들이 기생충 감염을 우려해 계곡 등으로 물놀이 가기를 두려워하고, 영화에도 등장하는 구충제가 꽤 많이 팔려나갔다고 한다. 또한 과연 곤충이 아닌 사람의 뇌를 조종하여 자살하게 만드는 기생충이 실제로 나타날 수 있을지 등에 대해 대중적인 관심이 높아지기도 하였다. 신종 바이러스와 새로운 인수공통 전염병들이 속속 등장하는 오늘날, 기생충 역시 진화한 변종 기생충이 출현하여 영화와 같은 공포와 우려가 현실화할 가능성은 정말 있을까?

 연가시가 어떻게 숙주인 곤충을 물가로 유인하여 자살을 이끄는지에 대한 정확한 원인과 메커니즘은 아직 온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연가시는 물에서만 짝짓기를 하고, 물이 없는 곳에서 밖으로 나오면 오래 살지 못하기 때문에, 연가시는 생존과 번식을 위하여 반드시 숙주를 물가로 몰아가야만 한다. 유력한 가설의 하나로서 연가시가 숙주인 곤충의 신경계에 작용하는 특정 물질을 분비하여, 곤충이 갈증을 느끼게 만드는 이론이 있다. 연가시가 분비하는 단백질이 곤충이 원래 지닌 신경전달물질과 비슷한 구조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숙주의 행동을 조종하는 기생충은 연가시 이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소나 양 등의 초식동물의 담도에 최종 기생하는 창형흡충(Dicrocoelium dendriticum)이라는 기생충이 있는데, 생김새나 크기 등은 간흡충과 비슷하다. 이 기생충 역시 곤충을 중간숙주로 삼는데, ‘케르카리아(cercaria)’라고도 불리는 이것의 유충은 연가시와 비슷하게 숙주인 곤충을 좀비처럼 만들어서 조종한다. 즉 소나 양의 배설물에 섞여나온 창형흡충의 알은 달팽이와 같은 땅 위에 사는 패류에 의해 먹혀서 부화한 후, 유충 상태가 되어 다시 땅 위로 나온다.
 이 유충은 다시 개미의 먹이가 되는데, 개미의 몸속으로 들어간 유충은 중간숙주인 개미에게 이상행동을 일으키게 만든다. 즉 개미가 무리를 이탈하여 풀의 맨 윗부분에 가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 풀과 개미를 먹은 초식동물의 몸 안으로 창형흡충의 유충도 함께 들어가서 성충이 될 때까지 최종 숙주로 삼는다.   
 
 영화의 변종 연가시처럼 인간의 뇌를 조종하여 자살로까지 이끌지는 않지만, 인간을 물가로 가도록 유도하는 기생충은 실제로 있다. 수천 년부터 아프리카, 아시아 등지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감염시켜온 ‘메디나충(Dracunculus medinensis, Guinea worm)’이다. 고대 이집트의 여성 미라에서도 발견되었을 정도로 오래된 기생충인데, 구약성서에서 ‘불뱀(Fiery serpent)’이라고 비유적으로 묘사된 것도 바로 이 기생충을 의미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메디나충 역시 연가시처럼 길이가 1m쯤에 이를 정도로 가늘고 긴 기생충인데, 처음에 물을 통하여 감염되는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우물이나 호수의 물을 마시는 사람들이 모르는 사이에 흡입한 작은 물벼룩은 이 기생충의 유충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결국 사람의 몸속으로 들어간 메디나충은 거기서 성장하여 짝짓기도 한다. 
 산란기가 된 메디나충의 암컷은 사람의 피부 표면으로 기어나가려 하면서 수포를 만드는데, 특히 발 부분에 수포를 형성하여 뜨겁고 극심한 통증을 느끼게 만든다. 발을 물에 담그면 통증이 가라앉게 되는데, 이때 수많은 메디나충의 유충 역시 물로 들어가서 번식을 지속하는 것이다.

 곤충이 아닌 포유류의 뇌를 조종하는 섬뜩한 기생충은 이미 확인되었다. ‘톡소포자충(Toxoplasma gondii)’이라 불리는 기생충은 1908년 북아프리카산 설치류에서 처음 발견되었는데, 포유동물뿐 아니라 사람에게도 감염되는 인수공통 기생충이다. 
 이 기생충에 감염된 쥐는 고양이도 두려워하지 않는 이상행동을 보인다. 그 이유는 톡소포자충의 최종 숙주가 고양이로서, 이 기생충은 고양이의 몸 안에서 유성생식으로 번식을 하고 고양이의 배설물을 통해서 알이 밖으로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즉 톡소포자충이 쥐에게 침투하면 뇌 부위 등에 유충이 든 주머니를 만드는데, 고양이의 몸속으로 다시 들어가려는 톡소포자충이 쥐의 뇌를 조종하여 고양이를 그다지 무서워하지 않게 만들고, 도리어 고양이의 소변 등에 강한 유혹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톡소포자충에 감염된 쥐의 이상행동은 기생충이 포유류와 같은 고등동물 숙주도 조종할 수 있다는 사실이 증명된 사례이다. 그렇다면 사람도 톡소포자충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조종당할 수 있을까? 사람 역시 톡소포자충의 중간숙주 중 하나로서, 고양이와의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서보다는 이 기생충 알에 오염된 고기나 채소 등을 섭취함으로써 주로 감염된다.   
 톡소포자충에 감염된 사람들은 별다른 증상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감염자들이 그렇지않은 사람들과 비교할 때 여러 이상행동을 일으키는 비율이 더 높다는 연구 결과들이 발표된 바 있다. 즉 톡소포자충 감염자들은 일반인에 비해 교통사고를 2.6배나 더 일으키고, 자살이나 조현병과 같은 정신 병리적 현상과도 높은 연관성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고기를 덜 익혀 먹는 습관 등으로 감염률이 높은 나라 사람들의 정서불안이 더 심하다는 통계도 있다.
 이러한 연구 결과만으로 톡소포자충이 사람의 뇌를 ’조종‘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겠지만, 아무튼 사람의 행동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은 상당히 큰 셈이다. 이를 명확히 밝혀내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By 최성우

이미지1: 숙주동물인 쥐에게 이상행동을 일으키는 기생충인 톡소포자충 (저작권자 : AJ Cann)
이미지2: 사람의 피부에서 나오는 메디나충(Dracunculus medinen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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