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비에 새겨진 수학적 업적들(2)

글쓴이
최성우
등록일
2020-06-05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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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선의 일종인 나선(螺線; spiral)은 수학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으며, 나선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나선을 ‘공간에서 일정한 축 주위를 회전하는 곡선’으로 한정할 경우에는, 나선(helix)과 와선(渦旋; spiral)을 구분하기도 한다. 즉 평면상에서는 한 점 둘레로 회전하면서 점점 멀어지는 곡선을 와선이라 하는데, 둘을 구분하지 않고 나선으로 통칭하는 경우도 많다.
나선에 대해서 최초로 연구한 수학자는 바로 고대 그리스의 아르키메데스(Archimedes)인데, 그는 바로 수차(水車), 이른바 ‘아르키메데스의 펌프’라 불리는 물을 퍼내는 기구를 발명한 인물이기도 하다. 물론 정말 아르키메데스가 최초로 발명한 것인지, 예전부터 있었던 것을 그가 연구하여 개선하였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나선형으로 감긴 원형 스크루 관 형태의 이 기구는 오늘날까지도 물을 퍼내는 용도로 사용되곤 한다.
이 스크루 펌프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감겨있는 나선을 아르키메데스의 나선이라 부르는데, 평면상에서는 한 바퀴씩 돌 때마다 원점으로부터의 거리가 일정하게 증가하는 곡선이 된다.

이와는 달리 나선 중에는 한 번씩 회전할 때마다 일정한 비율이 곱해져서 생기는 곡선도 있는데, 바로 로그 나선(logarithmic spiral)이다. 로그 나선은 원점을 지나는 직선과 나선의 각 점에서의 접선에 항상 일정한 각을 이루고 있어서 등각(等角) 나선이라고도 하는데, 근대의 대표적 철학자이자 수학자였던 데카르트(Descartes)가 이에 대해 처음으로 연구하였다.
로그 나선은 앵무조개의 껍질이나 산양의 뿔, 솔방울 등 자연에서도 자주 찾아볼 수 있는데, 이른바 피보나치 수열과도 큰 관련이 있다. 피보나치 수열(Fibonacci sequence)은 처음 두 항을 1과 1로 한 후, 그 다음의 항부터는 바로 앞의 두 개의 항을 더해서 만들어지는 수열이다.
로그 나선의 성질에 대해 가장 많은 연구를 한 수학자는 자코브 베르누이(Jakob Bernoulli; 1654-1705)이므로, 로그 나선을 베르누이의 나선이라 부르기도 한다. 여러 뛰어난 수학자를 배출한 베르누이 가문에서도 가장 연장자로서, 동생이 요한 베르누이(Johann Bernoulli)이고 유체역학에서 베르누이의 정리로 유명한 다니엘 베르누이(Daniel Bernoulli)가 바로 그의 조카이다.
자코브 베르누이는 스위스 바젤 태생으로, 바젤대학에서 물리학과 수학을 강의하였고 해석학, 확률론 등에서 여러 업적을 남겼다. 그는 수학사상 처음으로 극좌표(polar coordinates; 極座標)를 사용하였기 때문에, 이를 통하여 로그 나선의 특성을 제대로 밝혀낼 수 있었다. 그는 로그 나선을 기적의 나선(Spira mirabilis)이라 불렀고, 원기둥에 내접하는 구를 묘비에 새긴 아르키메데스의 경우처럼, 자신이 죽은 후에 묘비에 로그 나선을 새겨 넣어주기를 원하였다. 그러나 석공이 로그 나선의 의미를 정확히 알 만큼 수학적 지식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바젤 성당에 있는 그의 묘비에는 일반 나선, 즉 아르키메데스의 나선이 그려져 있다고 한다.

자신의 업적을 묘비에 남기기 바랐던 또 다른 수학자로는 바로 가우스(Karl Friedrich Gauss; 1777-1855)를 들 수 있다. 어릴 적부터 수학 신동으로 알려져 있었던 그는 대학생 시절에 남긴 업적인 ‘정17각형의 작도법’을 자신이 죽은 후 묘비에 새겨달라고 당부하였다. 그러나 정17각형은 원과 구분하기 어려울 것이므로, 그 대신 17개의 점으로 이루어진 별 모양의 도형이 가우스의 동상 밑부분에 그려 넣어져 있다.
가우스가 자신의 숱한 업적 중에서도 굳이 이것을 택한 것은, 물론 19살의 어린 나이에 기존의 통념을 깨고 ‘정17각형은 눈금 없는 자와 컴퍼스만으로도 작도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밝혀 수학계를 경악시킨 것도 이유의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또한 이 문제가 단순한 기하학적 작도법의 문제가 아니라, 수학의 여러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즉 그는 자와 컴퍼스로 작도할 수 있는 선분은, 사칙연산과 제곱근 연산을 조합시켜서 대수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것뿐임을 밝혔다. 이를 고대 그리스 시대 이래의 중요한 문제였던 정다각형의 작도법에 적용시키면, 어떤 정다각형이 작도 가능하고 어떤 것은 작도가 불가능한 지 판별할 수 있게 된다.  특히 홀수 개의 변을 지니는 정다각형 중에서는, 이미 작도법이 알려져 있었던 정3각형, 정5각형을 제외한 나머지 정다각형들은 어떨까?

가우스는 작도 가능한 정n각형은 n이 서로 다른 페르마 소수들과 2의 거듭제곱들의 곱인 경우뿐임을 밝혔다. 즉 변의 수가 홀수 소수인 경우는, 페르마 소수일 경우에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페르마 소수란 일찍이 페르마가 발견한 소수의 일종으로서, 2^(2^m) + 1 의 형태를 지니는 소수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페르마 소수는 모두 다섯 개로서, m의 값이 각각 0, 1, 2, 3, 4인 경우인 소수 3, 5, 17, 257, 65537이다. m이 5 이상인 경우는 현재로서는 모두 합성수임이 밝혀졌다.
따라서 변의 개수가 홀수의 소수인 정다각형 중에서, 정7, 11, 13각형은 작도가 불가능한 반면에, 정17각형은 작도가 가능한 것이다. 또한 합성수인 홀수의 경우, 정15각형은 3과 5의 곱으로 표시되므로 작도가 가능한 반면, 정9각형은 ‘서로 다른’ 페르마 소수의 곱이 아니므로 작도가 불가능하다.
가우스는 이처럼 작도 문제를 기하학에만 국한하지 않고 대수학, 정수론 등까지 ‘넘나들면서’ 연구하여 놀라운 업적을 남겼고, 이처럼 과거에 보기 힘들었던 새로운 방법을 접한 다른 수학자들은 넋을 잃고 지켜볼 정도였다. 가우스가 지금도 ‘수학의 왕’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것은, 이와 같은 독창적인 방법론 등을 통하여 숱하게 많은 업적을 남겼기 때문이다.

                                                                                  By 최성우

이미지1: 로그나선 형상을 보여주는 앵무조개 (ⓒ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이미지2: 정17각형의 작도법을 상징하여 가우스의 동상 바닥에 그려진 별모양(ⓒ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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