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없이 견디는 동식물과 레퓨지아

글쓴이
최성우
등록일
2022-03-30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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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인간을 포함한 거의 모든 동식물은 물 없이는 생존을 유지하기가 매우 힘들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지구상에 존재하는 매우 다양한 식물 중에는 상당히 오랫동안 물 없이도 버틸 수 있는 종들도 있다.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지대인 치와와사막 등을 비롯한 건조한 지역에서 서식하는 이른바 부활초(Resurrection moss)가 대표적인 예이다.
 말라 죽었다가 부활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희귀한 식물의 학명은 ‘Selaginella lepidophylla’이며, 종자식물이 아닌 양치식물에 속한다. 그러나 이름처럼 완전히 죽었다가 되살아나는 것은 아니고, 물이 없는 건조한 환경에서는 어두운 갈색으로 변하고 줄기가 모여지면서 마치 공처럼 둥글게 뭉친 형태로 된다. 그러다가 물을 붓거나 습한 환경에 노출되면 수분을 빠르게 흡수하면서 마치 되살아난 것처럼 원래의 모양과 색상을 회복한다.   
 부활초는 매우 건조한 환경에서는 일종의 휴면 상태를 유지하는 것처럼 신진대사를 최소화하여 버티는 것인데, 물 없이도 몇 년간 생존할 수 있고 원래 무게의 3%밖에 안 될 정도로 말라버린 상태에서도 죽지 않는다고 한다. 건조한 휴면 상태에 돌입하면 식물의 체내에서 특수한 물질을 합성하여 조직과 세포의 손상을 방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부활초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이 식물이 물 없이도 버틸 수 있는 메커니즘을 완전히 밝혀내서 응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려 애쓰고 있다. 만약 부활초의 원리를 다른 농작물 등에 적용할 수 있다면, 가뭄에 매우 강한 품종을 개량해내거나 수분을 거의 상실해서 말라버려도 비가 오면 다시 살아날 수 있는 작물을 만들어서 인류의 식량난 해소에 도움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부활초와 같은 경우는 상당히 특별하겠지만, 사실 대부분의 식물은 물이 없는 환경에도 대비할 수 있는 나름의 대책을 이미 지니고 있다. 즉 종자식물들이 만들어내는 씨앗이 바로 그것인데, 환경이 좋지 않을 때에는 씨앗 상태로 버티다가 식물이 성장하기 좋은 환경이 되면 발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백 년 이상 된 씨앗이 놀랍게도 발아했다는 외신 기사 등이 간혹 보도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식물에 비해 동물, 특히 척추동물과 같은 고등동물은 물 없이는 살아가기가 더욱 어렵다고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여기에도 예외가 있다. 더구나 평소 물속에서 사는 물고기 종류가 물 없이도 몇 개월 이상 버틸 수 있다면 더욱 신기할 것이다. 
 물이 없는 환경에서 휴면 상태를 유지하여 견딜 수 있는 물고기는 바로 폐어(肺魚; Lung fish)인데, 장어 비슷하게 생긴 가늘고 긴 몸을 지니고 있다. 흔히 ‘살아 있는 화석’의 하나로 불리는데, 약 4억년 전인 고생대 데본기에 나타나서 현재까지도 생존을 이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널리 번성했던 먼 과거에 비해 종의 다양성은 크게 줄어들어서, 오늘날에는 세 가지의 속(Genus)에 여섯 종의 폐어가 서식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물고기들은 물속에서는 아가미를 통해 호흡하지만, 폐어는 이름에 걸맞게 부레를 통하여 공기 호흡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폐어의 더욱 놀라운 점은 공기 호흡뿐 아니라, 물이 없는 메마른 상태에서도 유도 동면 상태에 들어가서 몇 개월 이상 생존할 수 있다는 점이다. 모든 폐어 종류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상당수의 폐어 종들은 강이나 호수의 물이 마르면, 진흙 속으로 파고 들어가 몸에서 점액질을 분비하여 일종의 고치 비슷한 것을 만들고 그 안에서 버티곤 한다. 그 후 비가 와서 물이 풍부해지면 진흙더미를 뚫고 나와서 다시 물속으로 돌아간다.
 동면하는 동물이 신진대사를 최소화하여 겨울잠을 자는 것과 얼핏 비슷해 보일 수도 있지만, 폐어는 물 없이도 최소 수개월 심지어 몇 년 이상을 견뎌 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만약 폐어가 유도 동면으로 진흙 속에서 버텨낼 수 있는 원리를 밝혀서 응용할 수 있다면, SF영화 등에서 자주 나오듯이 향후 장거리 우주여행을 하는 사람이 에너지와 식량을 아끼고 수명을 연장하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람은 물에 대한 의존도가 다른 대부분의 동식물보다 더 높은 편이어서, 물을 마시지 않으면 불과 며칠도 버티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인류가 식량으로 삼고 있는 다양한 곡물과 육류 또한 많은 물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큰 가뭄이 들면 농산물 가격이 폭등하고 가난한 나라 사람들은 굶주려 죽기도 한다.   
 지구온난화와 기후 변화로 인하여 거의 전 세계적으로 가뭄과 산불 등이 예전보다 잦아지고 피해 규모도 커지고 있다, 더구나 그동안 요긴하게 이용해왔던 지하수마저 곳곳에서 고갈의 조짐을 보이면서, 향후 인류의 물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어떤 보고서에 의하면 앞으로 10년 후에는 전 세계의 물 수요가 공급량보다 40%나 초과할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한다.
 또한 갈수록 심각해지는 가뭄과 산불은 최근 열대우림의 파괴 등에 의해 ‘물의 흐름’이 바뀌었기 때문으로 추정되는데, 최악의 상황에서도 물을 지켜줄 마지막 피난처, 즉 레퓨지아(Refugia)를 잘 찾아서 보존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도 있다.
 원래 레퓨지아란 과거 지구 대부분의 지역에 추위가 덮친 빙하기 때에, 기후 변화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아서 동식물이 멸종하지 않고 생존을 유지한 곳을 의미한다. 가뭄을 이겨내고 물을 지켜줄 현대판 레퓨지아는 여전히 지구 곳곳에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몇 년 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가뭄이 극에 달했을 때에도, 토양의 수분이 충분했던 레퓨지아 지역에서는 미국삼나무(Redwood)들이 가뭄을 버텨내고 계속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한다.
 물을 보존하는 것은 지속가능한 발전 뿐 아니라 인류의 생존을 위해서도 대단히 중요한 일일 것이다. 열대우림과 레퓨지아 등의 보존과 아울러, 물은 함부로 낭비해도 되는 무한정의 자원이 아니라 온 인류가 아껴서 써야 하는 귀중한 ‘공공재’임을 자각하고 물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태도를 지녀야 할 것이다.
 
                                        By 최성우

이미지1: 물이 없으면 공처럼 말렸다가 물을 받으면 펴지는 부활식물 ( ⓒ Rose of Jericho )
이미지2: 물이 없는 곳에서도 점액질로 고치를 만들어 몇개월씩 버틸 수 있는 폐어 ( ⓒ Eden Janine and Jim )

  • 묵공 ()

    1. 가뭄에 잘 견디는 식물만이 아니라 동물도 있다는 사실에서 느껴지는 것이 있습니다. 겉모습과 행태는 매우 달라 보이지만 동물과 식물이 10억년 전에는 같은 조상이었다는 것이 가뭄에서 생존하는 방법에 있어서도 유사하게 관찰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2. 근본적으로, 물이라는 것이 생물 내에서 화학반응을 해서 열이나 운동에너지로 변환할 때 필요한 것이라서 식물이든 동물이든 생명 활동을 할 때만 물과 호흡이 필요하고, 그렇지 않을 때는 바이러스처럼 무생물 상태로 있어도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즉,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위해서 동면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가사상태(동면)에 빠져서 물과 호흡이 거의 필요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다행히 이 때는 매우 건조한 상태라서 세균이나 바이러스, 혹은 포식자나 경쟁자들도 활동을 못하기 때문에 생체반응을 해야 할 일도 없습니다. 단지 생체조직만 파손되지 않고 유지하면 되는 것입니다.

    3. 고등 생물이 바이러스화하는 현상이 이른바 동면 혹은 가사상태에 있는 동식물이 아닐까 합니다. 이 원리를 인간을 포함한 다른 생명체에게도 확장하여 적용해볼 수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생명=바이러스=비생명'을 전제로 합니다. 즉, 생명현상이 발현되는 상태만 생명인 것으로 간주하고, 생명현상이 발휘되지 않는 가사상태의 물질로 오랜 시간 변했다가, 물과 공기 등 생명현상이 발현될 조건을 다시 조성해주면 원래 상태로 되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이는 작은 물고기를 액화질소에 넣어 급냉을 시켰다가 물속에 넣어 해동시키면 되살아나는 것에서도 확인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작은 물고기는 냉동상태가 되어도 조직이 파손되지 않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강제 동면'을 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이론상 이 기간을 수백 년 혹은 수억 년으로 길게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사실상 생명이 비생명상태로 갔다가 생명으로 부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4. 냉동상태가 생명작용을 멈추고 조직이 보전되는 조건이며 타 생명체로부터 조직훼손을 초래할 공격을 받지 않아서 위 3번과 같이 부활이 될 수 있는 것이지만, 냉동상태가 유일무이한 조건은 아닙니다. 앞의 2번과 같이 극단적인 건조상태도 피부나 생체 내부가 파손되지만 않게 하면 비생명화 할 수 있는 조건이 됩니다. 그 외에 알코올이나 무균 액체 속에 담겨져 있는 상태에서 생체조직이 파손되지만 않는다면 모든 생명활동을 멈추면 오랜 기간 비생명인 상태를 유지하게 됩니다. 그 상태에서 다시 생명활동이 시작될 수 있는 조건을 맞춰주면 부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컨대, 산소와 물을 다시 공급하고 심장을 다시 뛰게 만드는 것일 수 있습니다. 생명은 영혼이나 신비한 힘에 의해 발현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이와같은 가사상태와 부활은 모든 생명에게서 가능하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단지, 그 구체적인 방법을 우리가 아직 모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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