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쥐 - '욕망'과 '질서'의 싸움에서 방황하는 인간의 숙명적 번뇌

글쓴이
DreamComposer
등록일
2009-06-01 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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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2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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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 남겨봐요.(스크롤 압박 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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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과 '질서'의 싸움에서 방황하는 인간의 숙명적 번뇌
 

 

현학적 표현의 세련미
 
  나는 악평으로 가득한 영화를 거부하지 않는다. 그것이 칸 영화제의 작품상을 수상했던 이력의 감독이 만든 작품이라면 더욱 더 환영한다. 악평으로 가득할 수록 사람들은 감독이 영화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에 난독증세를 보인 것이고, 그래야만 영화가 좀 더 촌스럽지 않고 세련된 영화로 다가올것이기 때문이다.
 
  어려운 말을 즐겨쓰고, 어려운 표현을 즐겨 사용하는 글을 현학적이라한다. 글만 현학적으로 쓰는가. 영화도 현학적으로 만들 수 있다. 친절하지 않고 단순하지 않고 철학적으로 깊이있는 주제를 다룬 (혹은 깊이 있지 않은 주제라도 그것을 꽁꽁 숨겨둔) 영화가 바로 현학적인 영화라고 나는 정의하고 싶다.
 
  정교하고 세밀한 아그리파 묘사보다 르네 마그리뜨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가 더욱 예술적 감동을 줄 수 있는 이유, 그리고 구구 절절한 산문보다 단 몇 행의 시구가 더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의미의 조작과 형상화'때문이다. 그렇다. 예술은 '의미의 형상화'이다. 즉, 작자의 생각을 어떤 방법으로든 (미학적이든, 철학적이든) 형상화해서 그 예술을 받아들이는 사람으로하여금 '의미' 자체가 갖고있는 몇 배의 감동을 전해주는 것이다. 좋은 글은 '쉽게' 읽을 수 있는 글이라고 한다. 하지만 영화는 정보 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기사나 리포트가 아니다. 영화는 어떤 감독에게 있어서는 하나의 훌륭한 예술장르이다. 미술가의 붓은 영화인의 카메라이고, 미술가의 화폭은 영화인의 눈에 보이는 세상 자체이다.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단순하게만 전달한다면 얼마나 시시할까. 예술적인 감동을 위해서 감독은 다소 이해하기 힘든 자신만의 정신세계를 작품에 반영한 것이다. 감독의 정신세계에 투과된 세상은 그렇게 우리들에게 더럽고, 불쾌하고 지저분한 영화로 다가올 수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렇게 다가오는 것은 감독의 정신세계와 교감하기에는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것이다. 즉, 너무 일반적인 것이다. 감독이 너무 '일반적'인 대중성을 과감하게 포기했기에 내가 느끼는 작품의 세련미는 더욱 큰 것이다. 그리고 현학적인 포장지를 좋아하는 유수의 영화제의 심사위원들은 그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다.
 
 
 
 
자유에 구속된 욕망
 


 
  '행복한집'은 행복 고전의상실이지만 '전혀 행복하지 않은 행복한 집'이라는 현실세계의 지독한 부조리와 아이러니를 잘 형상화해주고 있다. 그 행복한집에서 태주는 전혀 행복하지 않은 지옥과도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 욕망이 갇혀 있음으로 인해서 나타나는 왜곡은 태주가 온몸으로 잘 표현해주고 있다. 항상 먼산을 바라보는 듣한 멍한 눈빛, 자해를 하는 모습, 밤만되면 맨발로 뛰쳐나가는 모습 등으로 드러난다.
 
  너무나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듯 보이는 상현은 신부라는 직업에, 종교라는 신념에 갇혀있다. 그것은 행복한집에 갇혀있는 태주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맹인 신부님의 만류에도 기어코 EVE 바이러스 백신 실험을 위해 길을 나서는 신부의 고집은 모든 욕망을 버리고 고결한 순교를 향하는 모습으로 보이지만 그것은 고결하게 보이는 또 하나의 욕망의 단편일 뿐이다. 인간의 본능적 욕망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다. 그것을 얼마나 참고 버티느냐에 따라 좀 더 어른스러운 모습으로 비춰지는 것일 뿐이다. 아니, 고결함 자체도 인간 욕망의 한 단편으로 바라볼 수 있다.
  이 부분은 다소 난해할 수 있기 때문에 감독은 약간의 친절함(?)을 보여준다. 자살은 가장 극악한 죄라고 전제하면서, 거룩해보이는 '순교'도 비틀어보면 자기애를 동기로하는 일종의 자살행위라고 설명한다.
 
  색대비가 심한 가장 다른 환경 다른 동기에서 두 사람은 '자유'를 갈망하고 결국 그 '자유'를 얻게 된다. 상현은 순교라는 이름으로, 태주는 행복한집과 그의 남편으로부터의 탈출이라는 모습으로. 결국 뱀파이어라는 하나의 형상으로 수렴한다. 세상 모든 곳의 소리가 귀 밑에서 들리고, 하늘을 훨훨 날아다니고, 사이보그와 같은 힘을 가졌다. 하지만 그 치명적인 자유대신에 낯을 잃어버렸고, 피에 대한 갈증에 구속되었다. 자신의 모든 욕망을 해갈해줄 수 있을 것 같았던 '자유'는 도리어 '구속'으로 다가왔다. 이것이 욕망의 아이러니다. 박쥐는 이렇듯 '자유로움'과 '욕망에의 구속'을 동시에 내재하는 메타포이자 그 구도 속에서 방황하는 인간의 모순을 잘 보여준다.
 
 

인간의 숙명, '욕망'과 '질서'와의 싸움.
 



  혹자는 선과 악의 싸움으로 보지만 사실 이는 너무 나이브하고 동화적 해석에 불과하다. 내가 해석하는 이 영화의 핵심 구도는 욕망과 질서와의 싸움이다. 인간의 역사는 '욕망과 질서의 싸움'으로 이어져온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초적인 본능에서 부터 고결한 본능까지 아우르는 인간 본능에 기초한 '욕망'과,  인간다움, 사회성이라고 하는 '질서'가 서로 상충하며 변증법적 진화를 거듭해왔다.
 
  연인의 죽음 앞에서 느끼는 처절한 슬픔, 하지만 동시에 솟구치는 죽어가는 연인이 흘리는 피에 대한 더러운 욕망. 욕망과 슬픔, 즉 욕망과 질서의 싸움이이다. 패닉상태에 이르는 상현의 자아상실적 혼돈(송강호의 연기는 그 쯤에서 절정에 다다른다.)이 바로 이 싸움의 백미인 것이다. 
 
  나는 울어버렸다. 나라는 존재는 얼마나 가벼운 존재인가. 상현의 그 혼돈의 눈빛에 내 모습이 투영된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부끄러움과 존재의 무력함이 느껴지고, 그것은 보이지 않는 눈물을 자아낸다. 좀 더 나은 존재, 좀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서 무던히도 애를 쓰지만 언제나 욕망과 본능 앞에서 나약해진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면 또 다시 무릎을 꿇고 손을 모아 기도한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진 숙명적 무력감이다. 알 수 없는 슬픔은 그 무력함에서 비롯되어 마음안에 끊임없이 흐르는 눈물을 만들어낸다.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는 바로 이것이 아니었을까. '욕망'과 '질서'가 무수히 충돌하면서 생기는 인간 본연의 번뇌와 비애, 인간의 숙명이기에 그렇게 외롭고 힘들게 싸워가야 한다는 자조를 관객과 나누고 싶었을 것이다.
 
 
고결한 욕망 vs 천박한 욕망
 

 
  상현과 태주의 구도는 고결한 욕망과 천박한 욕망의 대비이다. 고결한 욕망이란 세상이 바라보기에 좀 더 고결해보이는 가치를 향한 욕망이다. 상현이 뱀파이어가 된 동기 자체가 고결하다. 종교적인 신념에서 출발하였고, 인간을 EVE로 부터 구원하기 위한 메시아적 동기이다. 뱀파이어가 되고 나서도 '살해'만은 용납하지 못한다며 끊임없이 자신과의 싸움을 건다.
  하지만 고결한 욕망도 욕망의 한 가지 종류일 뿐이다. 인간이 고결한 욕망을 일면 갖고 있다고 해서 그 인간 자체가 고결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어차피 인간은 다채로운 욕망의 포로일 수 밖에 없다. 그 본성은 식물인간 옆에서 섹스를 탐닉하는 짐승(제 3자의 곁에서 섹스하는 모든 사람은 짐승이라 단언한다.)의 모습으로, 마작을 하러 놀러온 사람들의 피를 마시지 않겠다며 태주를 말렸던 모습 뒤로 필리핀 여자의 목덜미를 물고 있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으로 잘 나타나고 있다.
 
  반대로, 태주는 천박함 자체이다. 하늘을 나는 것을 마냥 즐기고, 냉장고의 피보다 싱싱한 인간의 피를 즐겨마시며 그것을 자랑스럽게 얘기한다. 닥치는 대로 살인하고 그 피를 자신의 욕망의 도구로 사용한다. 태주를 통해서는 욕망의 광기를 발견할 수 있다. 김옥빈을 새롭게 발견하게 된 계기이기도 한 그 광기의 표현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그 가운데서 질서와의 싸움에서 패배하고 '욕망'에 정복되어버린 순도 백퍼센트의 '욕망', 그 실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욕망의 연소, 혹은 승화
 
  고결한 욕망의 승화, 그것은 바로 육신의 연소이다. 감독이 박쥐를 욕망의 메타포로 차용한 이유는 무엇일까. 피를 끊임없이 갈구하는 '욕망'에서도 잘 드러나지만, 해가 뜨는 세상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아니, 감춰질 수 밖에 없는 '욕망'이라는 의미로도 잘 드러난다. 태양이 찬란하게 빛나는 세상에서는 세상의 기준, 즉 '질서'라는 것이 지배하게 된다. 그리고 욕망은 지구의 뒤편 언저리(밤)로 사라지고 모습을 감추게 된다. 천박한 욕망(태주)이 그 해를 피하려고 갖은 애를 쓰지만 고결한 욕망이 승리하고 결국 육신의 연소로서 욕망을 승화시키게 된다.

  다소 진부한 맺음이다. 하지만 이는 감독 자신이 가지고 있는 그 참을 수 없는 '욕망'에 대한 거부, 혹은 그것과의 싸움에서 이기고싶은 다소간의 의지의 표현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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