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인력 ‘동종업계 취업금지 서약’ 논란 [04.12.01/주간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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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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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02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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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인력 ‘동종업계 취업금지 서약’ 논란
 
[주간조선 2004-12-01 17:41] 

회사 망해도 직장 못 옮겨… 산자부 “첨단기술 유출 막아야” vs 연구원들 “우리가 노예냐?”

지난 9월까지 중견 휴대폰제조사인 ‘T전자’ 연구실에 근무했던 이모(32)씨. 이씨는 퇴사와 동시에 T전자와 동종업체인 A사로 회사를 옮겼다. 이씨는 퇴사 당시 2년 동안 동종업계로 취업을 하지 않겠다는 계약서를 썼기 때문에 명백한 계약위반이다. T전자는 지난 7월 1차 부도를 내고 법원의 화의 인가를 기다리고 있다.

“회사가 부도가 난 뒤 직원들이 월급을 몇 개월 동안 받지 못하는 바람에 500여명의 연구인력이 대부분 다른 회사로 갔습니다. 하지만 전직금지 계약서에 따라 회사가 소송을 걸면 모두 걸리는 거죠. 도대체 이런 상황에서 동종업체 취업금지라는 게 말이 됩니까.”

T전자는 회사의 부도사태가 알려진 뒤 연구원들을 모아 놓고 매각을 추진하던 중국 기업으로 연구원들이 회사를 옮길 경우 무조건 소송을 걸겠다고 협박성 경고를 보내기도 했다. 이씨는 “회사를 매각할 때 제값을 받기 위해서는 연구인력을 제대로 보유하고 있어야 하는데 연구원들이 회사를 떠나고 나면 값이 떨어지기 때문”이라며 “회사가 기술력 전체를 패키지로 몽땅 팔아 먹는 것은 괜찮고 연구원이 개별적으로 직장을 옮기는 것이 불법인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국내 기업과 연구기관의 기술인력 전직제한규정을 두고 국내 이공계 연구인력, 정부, 기업들 간에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이공계 연구인력들은 “전직금지가 그렇지 않아도 이공계 푸대접이 심각한 마당에 직업선택의 자유까지 박탈하려는 터무니없는 발상”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반면 기업들은 “인력 이동을 통한 기업들간의 기술 빼내기가 심각하고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 국가들이 한국의 기술 수준을 위협하는 수준인 만큼 기술인력 이동을 통제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첨단기술 유출 44조원 규모”

그러나 지금도 기술인력의 전직(轉職)을 제한하는 규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퇴직할 때 ‘퇴사시 비밀유지 및 경쟁업체 취업금지서약서’를 받는 기업이 37.8%에 달한다(산업자원부). 이들 대부분은 휴대폰, 반도체, PDP 등 IT 분야에서 치열한 경쟁을 치르고 있는 기업들이다. 지난 9월에는 LG전자가 자사 연구인력 6명이 팬택 계열사로 전직하자 ‘중대한 영업비밀 보호’와 ‘퇴직 후 LG전자의 동의 없이 영업 비밀을 유출하거나 동일 업종의 업체나 경쟁 업체에 최소 1년간 종사하지 않겠다’는 전업금지 약정 위반을 사유로 전업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낸 바 있다. 당시 법원은 법원의 결정을 위반하면 매일 300만원씩을 LG전자에 지급하라는 명령까지 내렸다.

그러나 지난 9월 18일 산업자원부가 기술유출 방지대책을 위한 경제장관간담회 안건으로 기업과 국공립연구원 연구개발인력에 대한 전직을 제한해야 한다는 안건을 회부한 뒤, 연구인력의 전직제한이 기업과 연구인력, 정부 간의 전면전으로 번지고 있다. 산자부는 기업별로 시행되고 있는 전직제한 조치가 아직까지 미흡하다고 판단하고 기업들이 일괄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냈다.

산자부 관계자는 “1998년 이후 2004년 8월까지 기술유출 직전에 잡힌 것만 51건에 이른다”면서 “기업의 핵심연구개발인력의 경우에는 경쟁 중인 동종업체에 취업을 금지하거나 취업을 하더라도 예전 직장에서 배운 것을 누출하지 않도록 보안준수서약서를 받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산자부는 ‘첨단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안)’에 전직제한 규정을 넣을 필요는 없지만 어떻게 해서든 기업의 기술유출 방지를 명문화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명백히 한 것이다.

산자부는 지금까지 기술유출로 피해를 본 사례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44조원 규모, 올해 적발된 11건만 18조원 규모라고 밝히고 있다. 또한 첨단기술을 두고 경쟁 중인 국내 업체들 사이에서도 기술인력의 이동에 따른 기술유출 사례가 적지 않다고 보고 있다.

기업들도 산자부의 제안에 맞장구를 치고 나왔다. 특히 기업간 기술유출이 심한 휴대폰 업체들은 이번에 단단히 기술유출 방지책을 찾겠다는 전략이다. 휴대폰을 제조하는 국내 대기업의 한 인사는 “제대로 된 연구원 한 사람을 키우려면 최소한 3~4년 동안 수억원의 돈이 들어가는데 이런 사람들이 돈 더 준다고 다른 회사로 가버리면 기업으로서는 손해가 막심하다”면서 “정부에서 전직에 대한 분명한 가이드라인를 설정해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과학기술인연합’을 중심으로 한 이공계 연구인력들은 전직금지뿐 아니라 산자부가 제출한 ‘첨단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안)’까지 반대하고 나섰다. 지난 11월 11일 이광재 의원(열린우리당)을 비롯한 여·야 의원 33명이 ‘산업기술유출방지및보호지원에관한법률(이하 기술유출방지법)’안을 의원입법으로 다시 발의하자 이공계 인력들이 다시 발끈하고 나섰다. 이공계 인력들은 이광재 의원의 홈페이지 게시판에 ‘과학기술에 대해 아는 게 무엇이냐’ ‘이공계 죽이기…. 왜 사람들 자꾸 때리면서 니들(이공계 인력)이 소중하다고 하느냐’는 등의 글을 줄기차게 올리고 있다.

 

이공계 “보상 해준다면 수용하겠다”

이처럼 이공계 인력들이 강력하게 반발하는 데에는 ‘이공계 푸대접론’도 한몫을 하고 있다. 휴대폰을 개발하는 대기업에 다니고 있는 김모씨는 법안 자체가 이공계의 사기를 꺾을 수밖에 없다고 단정했다.

“다른 분야에서는 국내 기업에 있다가 외국 기업 CEO로 가면 잘했다고 기사에도 나더니 이공계는 정반대입니다. 국내 기업 있다가 다른 기업으로 가면 완전히 도둑놈 취급을 하는 거죠. 아무리 기술유출 방지가 중요하고 국가경쟁력이 달린 문제라고 하더라도 개인의 직업선택 자유까지 막을 수는 없습니다. 차라리 영화에서처럼 제품 하나 개발하고 나면 기억을 지워버리는 게 낫겠습니다.”

여기에 과학기술부도 이공계 연구인력의 입장을 대변하며 산자부의 행동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과기부 관계자는 “정부부처간의 갈등양상으로 비쳐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도 “기본적으로 기업의 입장을 대변할 수밖에 없는 산자부와는 달리 과학기술부의 입장은 전직을 제한하더라도 분명한 보상체계가 없이는 곤란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과기부는 산자부 안에 대해 관련부처들이 함께 논의해 결정할 사안이라고 못 박고 산자부의 일방적인 법안 제출에 분명한 반대의사를 밝힌 상태다.

그러나 이공계 인력들 사이에서도 연구인력의 전직에 의한 회사의 기밀유출 가능성이 있는 만큼 합리적인 보상을 해 준다면 수용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 제시되고 있다. 산자부의 법안에 반대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한국과학기술인연합의 운영자 정우성(카이스트 박사과정)씨도 합리적인 대안 도출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입장을 밝혔다.

“외국의 사례를 보더라도 일방적으로 몇 년씩 전직을 금지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기술발달 속도가 빠른 만큼 전직금지 기간도 최소한으로 줄여야 합니다. 또 공익을 위해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만큼 회사가 합리적인 수준의 보상을 해 주는 것이 상식적입니다. 합리적인 수준으로 안이 만들어진다면 충분히 합의가 가능하다고 봅니다.”

이석우 주간조선 기자(yep249@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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