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억 IT연구소= '한국인이란 굴욕감' [06/04. 21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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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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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28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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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억 IT연구소= '한국인이란 굴욕감'



정부가 수백억원의 예산을 들여 유치한 외국계 IT기업 연구소(R&D 센터) 중 일부가 ‘빛 좋은 개살구’라는 현직 연구원의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 2004년 정보통신부는 ‘동북아 IT허브’를 만들겠다며 다국적 IT기업의 국내 연구소 유치를 적극 추진했다. 지금까지 경기도 분당, 서울 삼성동 등에 12곳을 유치했으며, 2007년까지 30여곳을 더 유치하겠다고 한다. 지금까지 300억원이 투입되고, 앞으로 480억원이 더 들어갈 예정이다.

그러나 일부 외국계 IT연구소에서 일하는 연구원들은 “유치 연구소 수준이 국내 대학의 석사 과정에 불과하다”며 “혈세와 국내 고급인력의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최근 과학도들의 인터넷 커뮤니티인 ‘한국과학기술인연합(scieng.net)’에는 ‘한국인이라는 굴욕감’이란 제목의 글이 최대 조횟수를 기록했다. 외국계 IT연구소에서 근무한다는 ID ‘지영이’는 “한국에 들어온 해외 IT연구소에 오지 마세요. 상처만 받고 나가실 거예요”라며 글을 시작했다.

그는 “한국에 파견된 외국인 연구진은 갓 대학원을 나온 석사가 수두룩하고, 솜털 뽀송한 학사까지 있다”고 했다. 또 “기초적인 연산도 못해서 끙끙거리기에 도와 줬더니 ‘한국 사람들은 어떻게 이렇게 수학을 잘하느냐’며 히히 웃더라”고 썼다.

이어 “이들은 한국 정부 돈으로 매달 바다로 산으로 워크숍 가고, 최고급 호텔에서 저희들끼리 잘 논다”고 했다. 그나마 한국에 파견된 인력도 10~20여명이라고 한다. 국내 삼성전자 연구소에 박사급만 수백명인 것을 감안할 때, 그는 “무슨 연구개발을 하며, 기술이전을 받느냐”고 반문했다.

이 연구원은 “해외 인력들은 말만 연구원일 뿐 실상은 ‘기술 영업사원’에 불과하다”며 “그런데도 연구소 높은 분들은 기술이전을 받아서 성과를 내라고 닦달한다”고도 썼다. 그는 “해외 IT연구소에 가지 마세요. 과학자의 자존심과 소신, 학문에 대한 열정을 영원히 잃어버릴 수 있다”고 마무리했다.

이 연구원은 조선닷컴과의 이메일에서 소속 연구소와 직책을 밝혔지만 “신원이 노출되지 않도록 부탁한다”고 했다. 그는 “제보사실이 알려지면, 연구업계에서 ‘왕따’를 당할 수 있어 겁난다”고 말했다.

그의 글에는 ‘공감한다’는 댓글이 40여개가 올라왔다.

ID ‘네모’는 “연구기반이 강제로 유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고 했고, ID ‘김일영’은 “공무원의 어설픈 아마추어리즘이 나라를 망치는 것같다”고 했다. “말만 최첨단 해외 센터지 국내 대학 석사과정에서 하는 시장조사 외에 한 것이 없다”는 내용도 올라왔다.

조선닷컴이 만나본 세계적 반도체회사의 A연구원(35)도 “이곳에서 허송세월한 시간이 아깝다”고 말했다.

1년 반을 일했다는 그는 “정부가 절반을 출자해 유치한 외국계 IT연구소는 간판만 그럴 듯하다”며 “10여명의 인력이 프로젝트 하나 결정하는 데만 6개월이 걸린다”고 했다. 인도나 미국 현지 기업으로 이직(離職)하고 싶지만 “이곳의 부실한 연구 포트폴리오를 보고 받아줄까 모르겠다”고 했다.

그런데도 외국계 IT연구소 개소식 때는 정·관계 고위 인사들이 빠짐없이 참석, 기념사진을 찍는다.

IT와 관련없는 전공자를 연구원으로 채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모바일 기술을 연구하는 모 연구소의 경우, 전체 연구원 20명 중 이공계 석·박사 학위를 가진 연구원은 5명 정도다. 이 연구소 관계자는 “외교학·정치학·광고학과를 나온 학사도 있다”며 “첨단 정보통신 원천기술을 개발하겠다는 센터의 구호와 너무 달라 어리둥절했다”고 밝혔다.

상당수 연구원들이 월 100만원 안팎의 박봉에 계약직으로 고용되는 상황도 지적됐다. ID ‘지영이’는 “허황된 프로젝트에 참여해서 학위를 끝낸 30대에 3개월짜리 계약직으로 한달 100만원에 보너스도 없이 일하는 젊은 연구자를 보면 정말 울고 싶을 때가 많다”고 했다.

이에 대해 정보통신부 관계자는 “정부가 각 연구소의 근무 현실까지 파악할 수는 없다”며 “문제가 있다면 해당 외국계 기업들이 책임져야 할 몫”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최근 현직 연구원들을 만나 고충을 듣는 시간을 가졌지만, 연구과정이나 대우에 대해 특별한 불만을 토로하는 경우는 없었다”고도 했다.


송혜진기자 enavel@chosun.com

입력 : 2006.04.20 15:34 06' / 수정 : 2006.04.20 16:45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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