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과학도가 방황한다 - 문제는 과학영재 교육부터 1 [04.04.26/과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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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g
등록일
2004-05-17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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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구실 못하는 과학고
 
 이 땅에 과학고가 출범한 것은 지난 83년. 현재 국내에는 부산의 과학영재학교와 16개 과학고가 있다.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까지는 그야말로 ‘과학고 열풍’이 불어, 많은 과학고가 새로 생겨나는 시기였다. 하지만 현재 과학고는 정체성을 상실한 채 고급 입시학원, 우수한 학생들의 집합소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우후죽순 영재고 문제 부채질
입시 해결없이 영재교육 요원

“그는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물리학자가 되는 게 꿈이었다. 물리학자로 성장했다면 지금쯤 세계적 학자가 될 능력이 있었다. 그런 그의 재능을 우리 사회가 왜 붙잡지 못했는지 고민해 보아야 한다.” 작년 한 시사주간지에 실린 과학고 수재의 이야기다.
국내 최초의 과학고인 경기과학고 1기생 정재규씨(가명). 동기들은 그를 역대 졸업생 중 가장 뛰어난 천재로 꼽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KAIST에 진학한 후 자퇴한다. 그리고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인턴을 마친 후 현재는 사법고시를 준비중이다. 국내 과학영재교육의 ‘실패’를 드러내주는 대표적 사례다.

초기 과학고 출신의 대학 교육을 전담하던 KAIST의 정원은 그 동안 크게 늘지 않은 반면 과학고 정원은 계속 늘어났다. 그러자 졸업후 진로가 불투명해진 과학고 학생들은 과학영재교육보다 대학입시 준비에 치중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현재 대부분 과학고는 새벽 1시까지 자율학습을 실시하는 등 수능성적 향상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기도 교육청은 제2경기과학고 설립을 준비하고 있으며, 수도권 신도시에도 강남의 집값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과학고 등 특수목적고등학교를 신설할 예정이라고 한다. 과연 어느 정도 규모의 과학영재 육성이 필요한지 체계적인 검토가 요구된다.

과학고를 졸업한 학생들은 많은 수가 비이공계로 진로를 택한다. 2003학년도 대학입시를 치른 과학고 출신 학생은 총 856명. 이 중 141명(16.5%)이 장래 직업으로 의사를 선택했다. 물론 외국의 경우에도 과학영재교육을 마친 상당수 학생들이 비이공계열로 진출하고 있지만 지금 국내의 추세는 상당히 위험한 수위다. 90년대 중반 과학고를 졸업하고 KAIST 박사과정에 재학중인 고 모씨는 “내가 과학고에 다닐 때부터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이 정도까지 오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지금부터라도 관리를 잘 하든지, 아니면 더 이상의 과학고 신설을 막아야 한다”고 말한다.

개선의 움직임이 없지는 않다. 지난 99년 ‘영재교육진흥법’이 제정되고 2003년에는 국내 최초로 체계적인 영재교육 연구 결과에 따라 설립한 부산과학영재학교가 올해 문을 열었다. 기존 과학고와 학생 선발과정도 다르다. 기존 과학고는 각종 고사, 경시대회 성적, 면접을 통해 신입생을 뽑았는데, 최근에는 경시대회도 과외를 통해 ‘시험 선수’로 단련된 학생들이 수상하는 예가 많아짐에 따라 과학영재 발굴이란 원래 취지가 손상된 상태다. 그래서 과학영재학교는 창의적 문제 해결 능력 평가에 중점을 두었으며 3박4일 합숙훈련을 통한 3단계 과정을 거쳐 입시를 실시하고 있다. 수업 또한 7차 교육 과정과는 무관하며, 대학식 학점제 수업 방식을 도입하고 있다. 강사진에는 KAIST에서 파견한 6명의 교수가 포함돼 있다.
일단 기존 과학고의 문제점을 보완하고 진정한 과학영재교육을 실시하겠다는 포부로 과학영재학교는 첫발을 내디뎠다. 그러나 그 미래도 낙관적으로 볼 수만은 없다. 과학영재학교는 석차를 매기지 않으며, 교육부의 7차 교육과정도 따르지 않는다.

그럼 장차 이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할 때 일반 대학은 이들을 어떤 기준으로 평가해 줄 것인가. 과학고들 역시 비슷한 문제로 몇 년 전 학생들의 대거 자퇴 대란을 겪었다. 과학영재학교가 어느 정도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게 되면, 과학고와 마찬가지로 우후죽순처럼 신설 과학영재학교가 생기거나, 어느 순간 국가와 사회의 지원이 줄어들어 그냥 평범한 학교 중 하나가 되어버릴 수도 있다.

과학 영재 육성은 국가 경쟁력을 위해 우리가 이루어야 할 중요한 과제이다. 지금까지 저질러 온 실패가 거듭되지 않기 위해 정부와 학계는 보다 장기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과학영재교육의 미래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는 게 우리 과학의 미래를 걱정하는 많은 이들의 바람이다.

한국과학기술인연합 운영위원  정우성, 최경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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