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는 하고싶은데 연구는 하고싶은게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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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먹고사는문제
등록일
2015-05-20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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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선배님들!!!
소위 말하는 [대학원 우울증]이 찾아와서 글을 남깁니다.
선배님들의 냉철한 한 마디가 필요해서 글을 쓰게 됐습니다.

신소재공학을 전공하고 나노 기술을 연구하는 대학원에 왔습니다.

대학원을 온 이유가 있는데 학부 때 공부를 깊게 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시험에 안 나올 가능성이 높은데 혼자 고민해보고 이해 안되면 애들이랑 같이 얘기하는 걸 좋아했는데 그러다가 성적은 막상 별로 못 받고... ㅋㅋ 이런 학생이었는데 제 성격이 대학원에 가면 잘 맞을 거 같아서 자신감을 갖고 왔습니다.
또 내 전문분야를 만들어서 커리어를 쌓고 나중에 더 높은 연봉을 받고싶다는 현실적인 욕심도 많았구요ㅋㅋㅋ

그리고 입학하여 한 세달 정도가 흐르고 있습니다. 연구실 분위기는 자유로운데 다 각자 개인 할 일이 바빠서 자상하게 이끌어주는 선배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선배들이 불친절한거는 아니에요 다 물어보면 잘 가르쳐주더라구요. 일단 랩 규모가 커서 교수님도 챙기실게 많아서 저에게 뭔가 일을 주시진 않고 있구요. 연구실에 서브 팀이 4개가 있어서 각자 연구하는 분야가 비슷하면서도 다릅니다. 저는 이 중 하나에 배정되어서 대충 어떤 장비를 공부해야하는지 알고 배우고 있는 중입니다. 몇 억정도 하는 비싼 장비가 있어서 그걸 메인으로 연구하는 팀입니다.

그런데 요즘 몇 주째 우울한 상태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공부는 재밌어요. 학부 때 이해안갔던거 다시 시간 갖고 꼼꼼하게 봅니다. 그리고 보고나니 아 이게 이런거였구나. 싶으면서 뭔가 알아가는 기분이 드는데..
근본적으로.
제가 뭐 연구하고 싶은게 없습니다. 이게 참 웃긴게 그럼 또 왜 이 나노 기술을 연구하는 대학원의 이 교수님 랩을 선택했느냐
재료과다보니 반도체, 철강, 나노재료, 복합재료, 배터리 등등 에서 선택을 했어야했습니다. 그 중에서 일단 나노 기술 연구하면 제가 30 40 50대에 해 먹을게 많을 거 같았습니다. 참 현실적인 이유죠 ㅠ 근데 이게 속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사실 이것도 중요한 이유 중 하나 아닐까요? ㅜ
그리고 교수님 인품이 좋으신 걸로 유명했습니다.

그래서 일단 여기오고 리뷰 논문 읽고 선배들이랑 얘기하고 하면서 곰곰히 생각하다보면 아 이거 실험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거라고 나름의 정리를 하고 왔습니다........ 근데 그냥 방황만 하고 있습니다.
 뭔가 이걸 실험하면 좋겠다 라는 생각도 안들고 이걸 연구해야겠다 라는 생각도 들지 않습니다. 다른 선배들이랑 얘기하다보니 원래 석사 초부터 뭔가 스스로 해내긴 힘들다 기다려라 하지만 이러다가는 겉돌기만 할것 같고 그냥 그저그런 석사생 중 한명이 될 것 같아서 두렵습니다.(사실 학부 때부터 연구하고 싶은게 없었다는거 자체가 그저 그런 대학원생이 될 수 밖에 없는 그릇이었던 거 같기도 합니다)

 +++이 문단에 내용을 덧붙이자면.. (안 읽으셔도 됩니다.) 이 분야에 관심이 있다 라는 걸 어떻게 정의해야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건 내가 축구에 관심있다는 거에 비유해서 설명해보자면 축구에 관심있는 사람은 많지만 어떤 사람은 직접 뛰는 걸 좋아하고 게임만 좋아하기도 하고 경기를 보는 것만 좋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영국리그를 보기도 하고 국내리그만 보기도 하며 직접 가서 보는 사람도 있고 팬 활동까지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의미로 말하면 저도 관심 있는 분야는 있습니다. 기계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 소자 쪽에 관심이 있는데 그건 반도체 소자부터 시작해서 정말 다양합니다. 대학원에 온 선배들에게 입학 이유를 물어보면 응 나는 뭐 태양전지 관심 있어서 왔어 배터리 관심 있어서 왔어 이렇게 말해주더라구요. 근데 제 눈에는 이게 축구에 관심있어서 왔어 와 같이 넓은 범위의 대답과 다를 바 없어 보입니다. 저는 축구에 관심있다고 말하는 대답 정도의 관심은 연구의 동기로써 좀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대답은 고등학생에게 장래희망 또는 입학하고 싶은 학과를 물어봤을 때나 나올 법한 대답이고 대학원 입학 할 때의 대답은 이거보다는 아주 조금 더 구체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전 큰 관심 가는 것 있지만 제가 그걸 연구로써 밀고나가고 싶은 분야는 없는 거 같다고 표현했습니다.++++



 한 마디로 저는 지금 제가 관심이 갈 거 같은 분야를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이 장비로 할 수 있는 연구 중에서요. 그러다보니 아 내가 뭐하는거지. 대학원 왜온거지. 라는 생각이 들어서 몇 주째 우울증에 빠져있네요

 제가 생각해도 웃긴게 관심이 있어서 대학원에 와야지 와서 관심이 갈 거 같은 분야를 찾는다는게 제가 제 자신을 보기에도 좀 어이가 없습니다.
이 쯤되면 읽으시는 분께서는 자기가 답을 아는데 왜 이런 식의 글을 쓰는거냐 하실 것 같습니다. 위에서 썼다시피 학부 때 공부하면서 친구들이랑 고민해보고 알아가는 일련의 과정을 즐겼고 성적은 안 나와도 뭔가 배운 과목이 있으면 기분도 좋았고 대학원 와서도 지금 뭔가 알아가는 과정이 재밌습니다. 이런 제 자신에게 믿음을 걸고 "아 이걸 연구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대학원에 오게 됐네요.

 많은 석박사 지원생들이 학문에 대한 고결한 탐구성을 갖고 대학원에 입학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들 현실적인 이유와 욕심을 어느정도 갖고 입학했으리라 생각합니다. 또 주위에 선배 대학원생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입학초기의 학문적인 목표보다는 대학원을 일단 마쳐야하기 때문에 어떻게 꾸역꾸역 해나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저는 이런 대학원생이 되지 말자고 생각하며 대학원에 왔습니다. 스스로 공부에 흥미가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수동적인 대학원생활이 아닌 스스로 개척해나가는 대학원생이 될거라고 생각하고 왔습니다. 그냥 지금까지 질문하고 고민해보는 교육이 아니라 수동적으로 지식을 머리에 넣는 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에 지금 이 방황하는 시간은 어쩔 수 없는 거다 라는 생각도 해왔습니다.

 근데 몇 주째 이런 고민이 계속 되고 이 문제에 대해 누구랑 대화를 나누지도 못 하다보니 증세가 나아지지가 않습니다.
(사실 대화를 나눠도 깊은 얘기까지 들어가지 않고 다들 그냥 일단 해보는거지... 라는 식의 대답만 합니다. 그래서 다들 아 나름 힘든데 그냥 참고 하는거구나.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근데 전 대학원이 참는 과정이 아니라 호기심이 실험으로 실험이 논문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저에게만큼은 자발적이면 좋겠는데 그게 지금 안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대학원 올 때 자기는 이 분야에 관심이 있다고 말하면서 결국에는 석박사 과정을 꾸역꾸역 해나가는 게 자기 자신한테 솔직하지 못 해서가 아닐까요? 정말 관심이 있었으면 중간에 귀찮은 노가다 실험이나 스트레스가 있어도 연구를 스스로 해나갈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연구가 그리 재밌지 않으면 그만하면 되는데 일단 시작해버렸으니 어떻게 되돌릴 수는 없으니 자연스럽지 않게 꾸역꾸역 시간을 보내며 학위를 따거나 또는 못 따거나 하는것 같습니다.
다시 제 얘기로 돌아오면 지금 안되지만 나중에 될거라고 생각하는게 자기 합리화구나. 나는 그냥 대학원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인데 박사까지 못 가고 포기한 사람으로 보이기 싫어서 언젠간 머릿속에서 아 이거다 이거해봐야겠다라고 생각이 팍 떠오를거라고 믿으면서 합리화하는 거구나 생각이 드는 찰나에 제 자신이 미쳐가는 걸 느껴서 여기에 오게 됐습니다.

긴 글이었는데 읽어주신 것만으로도 감사드립니다.
선배님들의 냉철한 한 마디를 듣고 싶어요
제가 분명 잘 못 생각하고 있는 것도 있을텐데 혼자 생각하다보니 어디서부터 꼬여있는지 보이지가 않습니다.
저와 비슷한 고민을 겪으셨거나 이를 잘 풀어 나가신 경험이 있으면 듣고 싶고 저에게 냉철한 한 마디를 해주셔도, 감사드리겠습니다 ㅜㅜ


  • 세아 ()

      "근데 전 대학원이 참는 과정이 아니라 호기심이 실험으로 실험이 논문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저에게만큼은 자발적이면 좋겠는데 그게 지금 안됩니다."

    대개의 경우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호기심이 안생기는 겁니다. 뭐가 해보면 중요한 연구인지, 해볼만한 연구인지에 대한 안목이 없기 때문에 수박 겉핥기식 호기심 수준에서 머물게 되고 그러니 심심하고 따분해지는 것이지요.

    일단... 지도교수와 상의하여 작은 연구거리라도 받아들고 시작하세요. 천릿길도 한걸음부터 아니겠습니까? 작은 것부터 시작하다보면 보는 눈이 조금씩 넓어지기 시작할 것이고 보는 눈이 넓어지면 더 재미있고 흥미있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할 겁니다.

    일단 첫걸음을 내딛으세요.

  • 서시 ()

      뭘 알아야 궁금하지....요... 누가 밥떠먹여주길 바라나...

  • 은하수 ()

      횡설수설이라 읽다가 넘겼습니다만
    요지는 아직 입학해서 뭘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뭐 그런정도로 생각됩니다

    뭐 뭘 알아야 뭐가 하고싶은지도 아는 법이지요 ㅋ
    입학하자마자 분명한 목표가 있어야 한다?
    이런말 하는 분들치고 나중에 잘되있는 경우가 그리 많았는가 싶습니다.

    사실은 아는만큼 보이는 겁니다.
    알면 무엇을 해야 할지 분명히 보이지요.
    그러니까 분명한 목표가 있으면 잘 아는 걸까?
    처음부터 목표가 확실하길래 그런 친구들인줄 알았는데
    사실은 아무것도 모른채 편견으로 구축된 자기만의
    생각으로 확신을 가진 경우가 많이 봤지요.
    이런 경우는 그래도 나이들어서 환상이 부서지지만
    않으면 뭐 그런대로 원하는대로 하긴 합니다.

    조금 더 공부하다보면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이 떠오를겁니다.

    그리고 앞의 세아님 말씀처럼 천리길도 한걸음부터...
    뭔가 하다보면 호불호는 저절로 생깁니다.
    그러면 그림도 보이고....그러다 보면 결국 자기 팔자대로 가있습니다.

    원래 처음은 시키는대로 해보는 겁니다.
    그러나 자기 스스로 생각하는건 잊지 말기 바랍니다.
    평생 시키는대로 살길 바라지 않는다면....

  • 은하수 ()

      더 친한 후배라면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헛소리 말고 술이나 더 마셔'
    이제 갓 입학한 석사생이 자기 연구에 대한
    확실한 계획과 목표가 있다?

    그러면 박사과정생들은 폼으로 고민하고 있답니까.
    그치들은 그치들 수준에서 연구에 고민이 많습니다.
    사실, 교수가 되어도 고민이 끝나지 않을텐데요?

  • kinetics ()

      흔히 사람들이 알아주는 선상에서 편히 먹고사는 걸 전제하기 때문에 그런거구요. 대학교 이후는 어떤 표준 지표가 없어요. ㅋㅋ
    있다면 졸업하고 취직하는 정도지.
    교재처럼 미리 설계돼 있는게 아니죠. 본인이 아쉬운 그 부분을 만드는 거죠.
    학부수업 방식이 그리우면 혼자서 하면 되는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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