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경제 논란에 대해..

글쓴이
이광호
등록일
2005-03-21 21:12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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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8건
맨날 글만 보고 가다가 관심있는 주제가 나와서 한마디 거들까 합니다..

한겨레신문에 이필렬 교수가 올린 글이 많은 분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것 같군요.

'수소경제가 온다 오지 않는다', 혹은 '태양력(태양광+태양열)이 대안이다 아니다'와 같은 주제는 미래 기술 및 산업 변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참 중요한 이슈가 아닌가 싶습니다. 먼저 에너지와 관련된 이슈들은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범지구적인 차원에서 산업 패러다임의 변화와 관계한 매우 광범위한 주제입니다.

먼저 역사적인 차원에서 살펴보자면, 석탄경제시대는 산업혁명의 시작과 함께 약 200년간 지속되었고, 석유경제시대는 식민지 경제체제가 종료되는 1900년대 초반에 시작되어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제 석유경제시대가 100년을 막 지나는 현재, 앞으로 향후 어떤 에너지원을 기반으로 하는 경제시대로 넘어가느냐가 많은 사람들의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일단 역사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주요 에너지원의 변화는 어느 한 순간 A라는 에너지원에서 B라는 에너지원으로 급격하게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A가 주로 사용되다가 어느 시점에 있어서 새로운 B 또는 C라는 에너지의 비중이 점점 증가하게 되는 누적성을 보여주게 된다는 것이 큰 특징입니다. 지금 현재 석유경제시대라고 일컬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석탄이 주요한 일차에너지원으로서 쓰이고 있고, 향후 수소경제시대가 오더라도 석탄과 석유를 동시에 사용하는 그런 시기가 분명히 존재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현재, 미국을 비롯한 유럽, 일본에서 예견하는 수소경제시대의 도래도 약 30년 후를 가정하고 있는데, 이때도 전체 에너지가 아니라 수송에너지의 약 20-30%를 수소로 바뀌게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에너지체제의 변화는 단순히 직접적인 관련 기술의 발전 뿐만 아니라 주변 기술의 동반 발전 및 인프라의 구축이 반드시 필요한 거대한 흐름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에너지체제의 변화를 논하기 위해서는 기술, 경제의 구조적 변화 뿐만 아니라 정치적 역학관계도 필수적으로 고려해야 합니다. 많은 분들이 이 점을 간과하기 쉬운데요, 현재 석탄이 일차에너지원으로 상당히 많이 쓰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석유경제시대로 불리우냐면, 바로 석유를 통한 세계 역학관계가 성립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이유도 한 예가 되겠죠.

현재 석유경제체제의 가장 큰 특징은 중앙집중적인 공급체제라는 점입니다. 몇 개 안되는 메이저 석유회사들이 원유의 채굴 및 공급권을 독점하고 있고, 이런 회사들은 주로 미국에 많이 있죠. 따라서, 제 생각에는 이러한 중앙집중적인 공급체제가 변화없이는 다음 경제시대로의 전환은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생각해보세요. 미국이 이러한 체제를 근본적으로 흔드는 일은 결코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많은 에너지 전문가들은 향후 세계 에너지 체제의 변화를 고려하는 데 있어서 미국의 정책이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칠 것이라는데 거의 만장일치로 동의하고 있습니다.

이런 미국이 최근 수소경제로의 전환을 추구하겠다고 하는 것은 굉장히 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근본적인 이유는 석유의 매장량이 이제 슬슬 바닥을 보이고 있으며, CO2 배출과 이로 인한 범지구적인 환경변화와 이에 드는 환경비용이 점점 증가하고 있으니까요. 미국이 현재 교토의정서에 가입을 안하고 있지만 언젠가 가입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됩니다. 세계 경제가 블록화되고 있어서 미국만 여기서 소외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우니까요.

그럼 여기서 왜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이필렬교수님이 그렇게 대안으로 내세우는 태양력 경제시대로의 전환을 고려하지 않는 것일까요? 그 해답은 간단합니다. 태양력은 현재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유지시키는 대량생산 및 소비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향후 세계 에너지체제는 기존의 중앙집중적인 공급체제에서 분산형 에너지공급체제로 변화해 나갈 것이 확실합니다. 기존에 화석연료 위주의 에너지원에서 천연가스, 원자력, 태양력, 풍력, 조력, 바이오매스 등의 다양한 에너지원들을 각각의 나라 사정에 맞게 개발시키고 사용하게 될 것입니다. 약 30년 후에는 가정에서 필요한 에너지를 가정에서 스스로 만들어서 사용할 수 있는(self-sufficient) 시스템이 개발될 가능성이 굉장히 높습니다. 물론 태양력이나 풍력, 바이오매스 등의 신재생에너지를 이용해서 말이죠.(물론 이것도 그동안 이 분야 기술혁신이 굉장히 급속도로 진전된다는 가정하에서 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공장(특히 제철과 같은 대량 에너지 소비형 산업은 에너지를 무지 많이 소모합니다) 가동이나 수송과 같은 분야에서는 이러한 신재생에너지로는 기술혁신 속도가 아무리 빨라도 백년 이내에는 수요를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이론적인 에너지 변환률을 계산하여도 나오지가 않습니다.

참고로 현재 자동차 주유소 하나 정도의 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해서 필요한 태양열 집열판의 면적은, 태양열 변환효율을 아무리 높게 잡아도 축구장 20개 정도의 면적이 필요합니다. 또 같은 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한 풍력발전용 풍차는 날개 직경이 70m 이상인 초대형 풍차 여러개가 쉬지 않고 가동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태양열이나 풍력은 어느 한정된 지역이나 가정용 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해 사용되면 몰라도 대량생산 대량소비가 핵심인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는 그 효용성이 크게 떨어집니다. 물론 위에서 언급한 사례들에는 개발비용과 유지비용, 인프라구축에 드는 비용은 고려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걸 고려하면 그 차이는 더 벌어지게 되죠.

현재 수소경제시대로의 전환이 컨센서스를 이루고 있는 것은 에너지 전환 효율이나 환경문제 등을 고려하고 기술혁신에 의해 비용 절감이 이루어지고 있는 추세를 감안해서 현실성이 상당부분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수송 부분에서의 석유를 대체할 가능성을 많은 전문가들이 예측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시기는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30년 정도가 걸리지 않을까 하지만, 더 단축될 수도 더 늘어날 수도 있을 겁니다.

공학을 전공하신 분들이 많으시므로 좀 더 현실성있게 접근하자면, 현재까지 나와있는 수소생산 방법은 크게 세가지 정도입니다.

첫째, 석탄이나 천연가스를 개질하여 수소를 생산하는 방법입니다. 석탄의 매장량은 향후 200년, 천연가스는 100년 이상임을 고려하고 공정 상 생산단가가 가장 싸서, 가까운 시간 안에 제일 먼저 상용화가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하지만, 이 방법은 여전히 CO2를 배출한다는 근본적인 단점이 있습니다.

둘째, 신재생에너지를 이용한 수소생산 방법입니다. 태양력, 풍력, 조력 등을 이용하여 일차적으로 전기를 생산하고, 이를 이용해 물을 전기분해 하는 방법입니다. 직접적인 환경문제는 없지만 에너지 효율이 극히 낮고 생산단가가 다른 방법에 비해 엄청 비싸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이런 방법으로는 대량생산이 어렵고 나라마다 처한 환경과 기후에 의해 일관된 생산성을 낼 수 없다는 것도 단점입니다. 뭐 아이슬란드는 지열이 풍부해서 이를 이용하면 수소를 쉽게 생산해 낼 수 있다고 하는데, 아이슬란드는 참고로 인구가 30만 정도되는 나라이니 우리랑 처지가 다르죠. 또 최근에 광촉매를 이용하여 수소를 생산하는 방법이 있는데, 이 방법도 근본적으로 효율이 너무 낮아서 상업적 가치는 없다고 생각됩니다.

세째, 최근 미국, 일본을 중심으로 원자력을 이용한 수소생산 방법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나라도 여기에 동참할 의사가 많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구요. 이 방법은 원자로에서 발생하는 850도 이상의 열을 이용해 물을 수증기 상태에서 직접 분해하여, 수소를 생산하는 방법입니다. 대량생산이 가능하고 생산단가도 천연가스 개질법 보다는 높지만, 신재생에너지보다는 월등히 적습니다. 또한 CO2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장점도 있구요. 하지만 원자력발전이라는 용어가 주는 거부감(?), 또 현재 시스템 기술개발이 진행 중이며, 지역주민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대중수용성(public acceptance) 문제가 남아있습니다. 아마 이필렬 교수님 같으신 분은 펄쩍 뛰겠죠? ^^

에고 글이 넘 길어진 것 같은데, 결론적으로 다음과 같이 제 주장을 마무리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수소경제시대 올까?

- 장담할 수는 없지만 제반 여건(기술, 경제, 정치 등)들을 고려할 때, 상당히 가능성이 높다.

2. 태양력이 대안이 될까?

- 30년 뒤에 가정용 전기를 공급할 수 있겠지만,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고수하는 한 현실성이 없다.

3. 그럼 우리나라는 어떻게 해야 할까?

- 신재생에너지 개발을 포기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그건 그 나름대로 개발할 이유가 있을 것이다. 특히 에너지 포트폴리오 차원이나 환경 보전 차원에서 그렇지만 그게 메이저는 되지 못한다.
- 일차에너지원의 97%를 해외에 의존하는 우리로서는 장기적인 비전과 플랜을 가지고 수소경제시대로의 전환에 대비한 기술개발에 중점을 둬야한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수소경제시대로의 전환을 위해서는 아직 넘어야 할 기술적 장벽들이 많다. 이 부분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수소경제시대가 도래해도 여전히 에너지 주권의 확보는 요원할 것이다. 또한 대중수용성 부분에서는 과거 쓰라린(?) 경험이 많으므로, 장기적인 계획과 정책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상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쓰고 싶은 말(에너지안보 등)이 더 있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 박상욱 ()

      반갑습니다.^^

  • 이광호 ()

      아, 네에 저도 반갑습니다. 원래 여기에 쓸려고 했던 것은 아닌데, 등록 누르니까 여기에 올라오네요.

  • 사색자 ()

      갑자기..인더스트리아에서 플라스틱을 파던 미래소년 코난에 나오던 선장이 떠오르는군요. *^^*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 이민주 ()

      아.이 글의 .신문에 기고를 싸이엔지에서 적극 밀어드리면 좋겠습니다.

  • ourdream ()

      쉽게 생각할 수 있도록, 정리해서 풀어쓰신 점 감사드립니다. 추천 꾹~~

  • 소요유 ()

      좋은 글이군요.

    역시 결론은 원자력이군요.

    기술적인 측면에서 국외자 입장으로 보면 수소 경제가 있는가 없는가의 논쟁에서 긍정적인 측은 원자력이 필요한 부분을 가정하고 이야기하는 것 같고, 그 반대측은 이 부분을 애써 무시하고 논리를 전개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 소요유 ()

      워낙 민감한 문제라 서로 꺼내기 힘든 측면도 있겠지만 결국 종합적으로 고민해야되겠지요.

    개인적으로 몇달전 정부의 에너지 정책관련 동네에서 눈동냥할 기회가 있어서 살펴본 적이 있는데 원자력을 빼고 미래 에너지 관련된 국가 R&D 총예산이 대략  년 900언원 쯤 되는 것 같더군요. 이 예산에는 핵융합 원자력 등 핵에너지 관련 예산은 제외된 것입니다. 

    좀 의외였습니다.  휘발유 등 석유 소비 세금으로 만든 기금이 수조원은 될텐데 겨우 1000억도 안되는 돈을 에너지 개발에 투자하는 것은 결국 남들이 개발하면 사다쓴다는 생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돌아온백수 ()

      엄밀하게 말하면, 에너지 변환이죠. 태양열이든 수소든 화석연료든 원자력이든지요. 인류가 존재하는 한에는 이공인들이 매달릴수 밖에 없는 분야입니다. 물론 시류에 따라, 유행이 있기는 하겠지만, 에너지 변환은 모든 이공인들이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조금만 생각하면, 자신이 연구하는 분야에서 쉽게 연결고리를 찾을 수가 있습니다. 이번 토론을 계기로 좀 더 전향적인 자세로 에너지 변환에 대해 고민해 보시죠. 꼭 수소나 태양열에 한정짓지 마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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