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유능한 연구원이란 무엇인가?

글쓴이
소요유
등록일
2004-06-15 16:06
조회
3,02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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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9건

최근에 기술경영 쪽에서 배운 것인데 지식에는 '형식지 (explicit knowledge)'와 '암묵지 (tacit knowledge)'있답니다. 형식지는 글로 명확히 표현 될 수 있는 지식이고, 암묵지는 글로서 표현되지는 않아 체계적으로 전달하기 어려운 일종의 '문화'로 볼 수 있는 지식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한 실험실이 연구성과가 높고 연구원들이 유능하다는 것은 이러한 형식지와 암묵지가 잘 갖추어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할 것 같습니다.

기술경영 이론을 좀 더 읽어보니 이러한 암묵지는 도제식 훈련이나 토의, 혹은 서로 간의 대화를 통하여 공유된다고 합니다. 이러한 절차를 지식의 사회화라고 하더군요. 따라서 실험실 단위에서의 암묵적 지식의 교환은 토론문화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두번째로 개인의 암묵지가 명시적으로 표출되어 형식지로 변환되는 과정을 지식의 외재화라고 하는데 이러한 외재화를 통하여 개인이나 실험실 차원의 지식을 외부와 공유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모든 암묵지가 형식지로 전환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논문으로 출판되는 경우가 형식지 일텐데, 사실은 저자는 그 논문에서 자기가 아는 모든 것을 기술하지 않을 뿐더러 기술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열역학 제 2법칙과 같은 것 같습니다. 모든 열을 일로 전화되지 않는다!

세번째로 일반적으로 정보산업에서 많이 이야기되는 정보들의 조합과 가공을 통한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는 지식의 결합화가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너무 여기에 촛점을 두고 있는지 모릅니다.

네번째로 형식지에 대한 이해와 학습을 통하여 소화하는 형식지가 암묵지로  변환되는 내재화 과정이 있습니다. 이 부분은 상대적으로 우리에게 상당히 익숙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같은 지식에 대한 논거들이 개인차원에서 논의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어떤 단서를 마련해 준다고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관점으로 볼 때 저 개인적으로 생각해 보는 '유능한 연구원'이란 도전적이고, 적극적이며, 사람에게 진지한 과학기술자로 생각해 봅니다.


뱀다리로,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과학자들은 무능하다. 좋은 장비 사줘, 책 사줘, 돈 줘. 그런데도 왜 선진국 과학자 만큼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느냐 말이다.'

더 나아가,

'우리나라 과학자들은 이상하다. 왜냐하면 중요한 과학적 결과는 항상 논문으로 발표되어 그 논문만 읽어도 될텐데 왜 지들이 엄청난 돈들여 장비 만들고, 운영하겠다고 돈 달라고 하냐. 그런 것은 돈 많은 선진국 넘들이 해 놓으면 그냥 쓰면 되지 않느냐. 괜히 지 기관이나 지들 배부려고 그러것 아냐?'

사실 제가 만나 본 관료 중 몇은 이런 뉘앙스의 이야기를 하더군요.


무엇이 문제일까요?  정말 '회수를 건넌 귤이 탱자가 되어서'일까요?  뭐 사실 외국에서 학위하고 우리나라에 들어와 귤이 '탱자'된 사람들 많습니다.

여기에 중요한 것은 바로 '실험실'이라는 것에 있고, 이 실험실 문화에서 몸으로 체득한 '암묵지'가  연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사실 제가 이점이 궁금했거든요. 왜 외국의 '귤'이 한국에 오면 '탱자'가 되는가 말이죠. 일단 시스템의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여기에 더해서 바로 이와같은 눈에 나타나지 않는 문화가 있다는 것입니다.

  • 쉼업 ()

      한마디로 저는 랩이거나 학교이거나 귤이 탱자로 된 연유에는 무어니 무어니 해두 Director의 잘못이 가장 크다고 생각합니다.

  • 강동민 ()

      질문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과학자들은 이상하다. 왜냐하면 중요한 과학적 결과는 항상 논문으로 발표되어 그 논문만 읽어도 될텐데 왜 지들이 엄청난 돈들여 장비 만들고, 운영하겠다고 돈 달라고 하냐. 그런 것은 돈 많은 선진국 넘들이 해 놓으면 그냥 쓰면 되지 않느냐. 괜히 지 기관이나 지들 배부려고 그러것 아냐?'

    이 이야기에 대해 어떤 대답을 하셨습니까? 말이 안되는 이야기인데
    뭐라 답해야 될지 제머리속엔 떠오르질 않네요. 너무 어이가 없어서
    그런가..

  • 쉼업 ()

      기술을 써먹으려면 재구현을 해야하는데, 논문만 읽어 가지고는 구현이 제대로 되기가 쉽지 않지요. 그래서 남이 한 연구를 직접 고대로 재현하고나서 더 발전된 아이디어를 가미한 연구를 진행해야 하지 않나 싶네요.

  • 소요유 ()

      강동민님 말씀대로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이 말이 너무 어이가 없지만 반벅하기 쉽지 않아 매우 억울한 말일 것입니다.

    이것을 바로 위와 같은 과학기술에 있어서 '실험실'의 중요성으로 설명하면 될 것입니다. 즉,

    '선진국 넘들이 돈과 노력을 엄청 투자하여 나온 결과를 공개하는 데에는 그 만큼 자신 있기 때문이다. 정말 중요한 것이라면 공개 안하는 것이 정상이다. 다만 순수 과학적 결과의 경우는 인류가 공유해야 한다는 대의 명분이 있어 발표는 하지만 실제 그 결과를 재현하는 데에는 한계라는 것이 있게 마련이어서 그 만큼 자신을 갖는 것이다. 이를 테면 선진국은 고기는 주지만 의식적인든 무의식적이든 고기잡는 법은 알려주지 않는다. 특히 기초학문으로 갈 수로 이러한 경향이 커진다. 그 이유는 기초학문이 첨단의 기술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 이승철 ()

      '우리나라 과학자들은 무능하다. 좋은 장비 사줘, 책 사줘, 돈 줘. 그런데도 왜 선진국 과학자 만큼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느냐 말이다.'
    --
    아직도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공계에도 소위 관리자라는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지요. 그래서 장비만 사주면 다 될 것 같다는..
    그 이유는, 제가 생각하기에는, 관리자들이 젊었을 때, 아마 학위도 외국에서 했겠죠, 한국과 외국의 가장 큰 차이는 장비에 있다는 생각이었겠지요. (왜냐하면 70-80년대에는 정말 "장비"가 없어서 실험을 못하는 일이 비일 비재 했었으니까요.)  그 이유는 장비는 눈에 보이는 것이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연구소 관리자 등급의 사람들은 우리가 어떤 "장비"가 있다고 자랑은 할 지언정 그 장비를 운용하는 오퍼레이터가 몇 십년을 근무했다고 자랑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같은 장비로 찍더라도 학생이 찍는 것과 숙련되고 경험이 많은 오퍼레이터가 찍은 것과는 확실히 차이가 나지요. 즉, 인적 풀의 급이 중요한데도 그걸 이해못하는 것 같습니다.

    아직도 좋은 연구에 있어서 사람의 중요성을 깨달으려면 멀었지 않나 싶습니다.

    그리고 여담입니다만 예전에 학위과정때는 네이쳐나 사이언스 같은 논문을 보면 "이거 별거 아니잖아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연구를 하면 할 수록 소위 네이쳐에 나온 논문 아래에 깔려 있는 엄청난 연구경력과 노하우에 놀라고 있습니다.

  • 배성원 ()

      그 관료한테 '바로 너 때문이다'고 하면 그날로 사표써야겠지요. ^^

  • 박지훈 ()

      마지막 부분에 '시스템의 문제'라는 것에 동의합니다. 외국에서 소위 합리적인 시스템에서 일하고 공부한 사람들이 한국에 들어와서는 다시 한국식으로 일하는 것이.... (한국이 무조건 비합리적이라는 뉘앙스는 아닙니다.) 귤이 우리나라로 건너와 탱자로 된다는 것과 같은 이야기지요?

  • 박지훈 ()

      실험실에서 생활하는 대학원생이나 연구원이라도 설령 불합리한 것을 느꼈다면 한꺼번에 확확 바꿀수는 없어도 그 조직에서 한 사람에 한가지만이라도 불합리적인 것을 바로 잡을 수 있다면 작은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 김무경 ()

      좋은 글이라 제 블로그에 퍼가겠습니다.
    ( <a href=http://milya.egloos.com target=_blank>http://milya.egloos.com</a> )
    혹시나 소요유님께서 원하지 않으신다면 바로 지우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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