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을 읽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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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이름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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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06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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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인기가 너무나 높아 나도 요즈음 하는 일을 잠시 옆에 미뤄 두고 이 책을 읽기로 결심했습니다. 이제 읽기 시작해 겨우 Introduction을 마친 단계지만, 여기에 재미있는 구절이 너무 많아 소개를 해드리겠습니다.

우선 나는 Piketty가 그 정도로 천재였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습니다. 경제학계에서 천재라면 Lawrence Summers나 Paul Krugman을 흔히 생각하는데 Piketty도 이들에 전혀 모자랄 것이 없는 천재라는 사실을 최근에 새로이 알게 되었습니다. 더군다나 미국이 아닌 곳에 그런 천재 경제학자가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놀랍구요. (요즈음 경제학이 미국의 독점 체제하에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지요.)

이 책에는 그가 미국에 약간 살았던 경험이 있다는 얘기가 나오더군요. 22살 때 미국에 갔다가 25살 때 프랑스로 돌아오게 되었다구요. 그저 Boston 근방에서 가르친 적이 있다고만 얘기할 뿐 더 이상 구체적인 언급은 없습니다.

그가 잠깐 MIT 교수로 일했다는 걸 알고 있었던 터라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더니 Piketty가 말하고 있는 미국 생활의 경험이 바로 그것을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Piketty는 22살에 프랑스에서 박사를 받고 미국으로 건너가 MIT 교수가 되었다가 25살 때 미국 생활 접고 프랑스로 돌아온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고국 프랑스로 돌아오기로 결심한 동기가 재미있습니다. 한마디로 미국 경제학에 대한 환멸 때문에 프랑스로 돌아오기로 결심했다는 겁니다. (미국 경제학에 목 매달고 사는 우리나라 경제학자들에게 자존심 좀 가져 보라고 외치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현대 경제학에 대해 다음과 같이 통렬한 돌직구를 날리고 있습니다.

To put it bluntly, the discipline of economics has yet to get over its childish passion for purely theoretical and often highly ideological speculation, at the expense of historical research and collaboration with other social sciences. Economists are all too often preoccupied with petty mathematical problems of interest only to themselves. This obsession with mathematics is an easy way of acquiring the appearance of scientificity without having to answer the far more complex qustions posed by the world we live in.
한마디로 말해 경제학자는 현실과 아무 상관이 없는 수학의 유희를 즐기고 있을 뿐이라는 비판인데, 정말이지 이 부분을 읽으면서 속이 다 시원해지데요. 경제학자들은 자기네들끼리만 흥미를 갖는 공리공론을 일삼는다는 비난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말이지요.

Piketty는 한 가지 또 재미있는 발언을 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에 와서 경제학자로 활동하면서 (미국에 있을 때와 비교해) 하나의 큰 장점이 있다는 걸 발견했답니다. 프랑스에서는 경제학자들이 지식계층 혹은 정치적, 경제적 엘리트들에게서 별 존경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 바로 그 장점이라는 겁니다.

자기도 그 중 하나인데 경제학자들이 존경을 받지 못하는 게 장점이라고 말하니 참으로 이상한 발언이지요? 그 다음의 말을 들어 봐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프랑스의 경제학자들은 다른 학문을 하는 사람들을 무시할 수 없고, 또한 경제학이 더 큰 과학성을 갖는다는 궤변도 늘어놓을 수 없다는 겁니다.

Piketty는 이 말 뒤에 "they know almost nothing about anything"이란 말을 덧붙입니다. 여기서 they는 경제학자를 가리키는 말인데, 경제학자들이 실제 경제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다는 통렬한 비판입니다. 그러면서 다른 학문을 무시하기 일쑤인 경제학자들을 마음껏 비웃어주고 있는 것입니다.

경제학에 대한 이와 같은 비판은 주로 미국 경제학자들에게 향한 것이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미국 경제학자들보다 더 욕 먹어 싼 사람들은 우리나라 경제학자들입니다. Piketty가 비웃고 있는 경제학자의 약점이란 측면에서 우리나라 경제학자들이 한 술 더 뜨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경제학자들은 인접 학문을 하는 사람들에게 욕을 많이 얻어먹는 편입니다. 걸핏하면 그들을 무시하고 마치 경제학적 논리가 불변의 진리인 양 오만을 떨기 일쑤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위원회에 참석했을 때 경제학자들의 오만한 태도에 불쾌감을 느끼고 돌아와 불평하는 사회과학대학의 동료 교수들 많이 봤습니다.

정말이지 내가 보기에 우리 사회의 경제학자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겸손해져야 마땅합니다. 솔직히 말해 미국 경제학의 아류에 지나지 않으면서도 인접 학문에 대한 오만은 눈 뜨고 못 볼 지경인 때가 많으니까요. 그런데 내가 경제학자들에게 겸손해지라고 말하면 아마도 "네가 무슨 자격으로 그런 말을 하느냐."는 볼멘 소리가 돌아올 게 분명합니다. 그러나 Piketty 같은 천재가 그런 말을 하면 그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하군요.

이 책을 읽으면서 또 하나 멋지다고 생각한 것은 그 동안 경제학이 소득과 부의 분배 문제에 대해 너무나 소홀한 대접을 해온 것은 비판한 부분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분배의 문제가 차지하는 중요성을 생각해 볼 때 그와 같은 홀대를 정당화할 하등의 근거를 찾을 수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가 주장하는 것처럼 이제는 분배문제가 경제학의 중심 과제 중 하나가 되어야 마땅한 일입니다.

내 고개를 끄덕거리게 만든 또 하나의 주장이 있습니다. 그것은 분배의 문제에는 정치적인 측면이 강하게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에 순전히 경제적인 메커니즘에 의해서만 이해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입니다. 이것은 내가 그 동안 분배문제에 대해 공부해 오면서 절실하게 느꼈던 점이기도 합니다.

다음과 같은 그의 말을 직접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The history of inequality is shaped by the way economc, social, amd political actors view what is just and what is not, as well as by the relative power of those actors and the collective choices that result.
이제 본문을 읽기 시작할 때지만, Introduction만 읽고도 나는 그의 팬이 되어 버린 기분입니다. 왜 보수적인 경제학자들이 그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인지 훤히 알 만합니다. 나로서는 이런 천재 경제학자가 경제학자들의 위선을 마음껏 비웃어주는 것이 너무나 통쾌할 따름입니다.

  • 지나가다 ()

      굳이 피케티를 몰라도 실증적으로 한국의 경제학자들이 사실은 거의 현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지 않나?

    1998년 IMF 사태를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고.
    10년이 지난 2008년 전 세계 금융위기조차 낌새조차 못채고. 국내에서 발생했던 신용카드 위기와 부동산 버블, 저축은행 사태같은 숱한 문제조차 제대로 예측도 못했는 데. 무슨. 게다가 일부는 알면서도 모른척 했던 놈들도 있고. 무능도 문제지만 아주 대 놓고 국가와 민족과 국민을 등쳐먹으려던 놈들까지 있으니.
    거시경제는 아마 거의 예측이 불가능한 수준같고
    미시경제의 일부 영역정도나 그럭저럭 주둥아리로 사기치는 수준 같고.

    아이러니한건 거시경제는 제대로 예측도 못하고 미시경제 일부가지고 사기치며 먹고사는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기득권은 좌지우지 한다는 사실.

    일단 문과와 이과를 나눠놓고 미적분학이나 벡터수학, 통계도 못하는 인간들이 경제학과 경영학으로 진출하는 한국 교육제도로는 한국 경제학자들의 수준에 뭘 기대한다는 게 불가능해 보이네요. 뭐 문돌이들이야 지들이 먹고살 영역 만들어 놓고 헤먹고 있는 거라 당연한건지도 모르겠지만. 허허.

  • 물리학도 ()

      피케티 같은 천재도 자본의 수익성이 극도로 높아지는것을 경계하는데,

    한국의 네이버 전문가들께서는 불로소득 세금 징수하라고 주장하면 돈많은게 죄냐 자본주의 부정하는 빨갱이냐며 거품물죠.

  • 통나무 ()

      이준구면 서울대 교수 아니던가요. 경제학.
    그런데 천재타령에, 남의나라 천재 교수입을 빌려서 얘기하는게?

    피케티가 3가지 공식인가로 장기적 연구 결과라고 하는데,

    고딩 고려역사 책 보다  보니
    주류라고 하는것 변화가 문벌귀족에서 무인들로 그리고 권문세족으로 시대와 상황에 따라 바뀌는데 그 바뀌면서 경제적 토대를 쌓기위해하는게
    토지와 노비의 광범위한 집적. 불법 합법 가릴것 없이.
    고려말에는 극도의 집중이 일어나면서 정도전에 나오는 식의 얘기들이 나오는데요.

    자본주의든, 봉건제라고 하든, 뭐든 경제력의 집중은 일어나는데,
    현재 한국에서는 주변을 둘러보면, 그게 상가와 주거하는 집과 금융상품쪽으로 집중되는것 같은데, 그걸 유지하기 위한 법과 제도와 이해관계를 가진분들의 집적이 어찌보면 주류라고 봐도 될것 같고요.
    그리고 대물림.

    이런 상황에서 교육은 전체적으로 사적인 자본투입으로 가고, 법과 제도적으로 이익을 어느정도 보장받는 상태에서 거기 내부에서도, 부모에게 자산을 물려받으면 더 큰 이익을 볼수 있는 시스템으로 가고 있는데,
    묘한 상태가 되는것은 이런 학력이나 자본의 층차를 그것을 선취한 사람들은 능력이고 노력의 댓가라고 생각하고, 그 나머지는 거기에 끼어들 생각만 하지
    그게 하나의 야바위놀음이라는것은 생각을 안하는게 현재 한국의 상태인지라 더 악화될것 같고.

    교육제도에서 없앨것은 없애고, 그리고 공교육체계내에서 더 가르칠수 있는것을 고민해야할때, 선행준비는 없이 사적인 비용을 통해서 다 해결해버리는 버릇.
    그렇다고 제대로 배우는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 그렇게 배우면 다른 못배운 애들은 아예 접근조차 안해봐서 그 제대로 못배운게 못배운것인지 조차 조정이 안되는 상황.
    이런 학력이라는게 단지 부모때 자산을 유지하는 정도의 벌이밖에 안되는데
    죽게 공부해서 끼어들어서 그 부모자산받은 사람들과 뭔가 비교해보다 보면 이건 게임 자체가 안되는 사회가 되어버렸는데,

    고1 외고 다니는 애 친구가 논문쓰는것 한다고 해서 뭐 학교에서 갈켜주냐고 하니 그냥 쓴다고, 학교애들 절반이 쓰고 있다고. 이럼 애들이 배울게 학원으로 가거나 열심히는 하는데 참 그런상황이 벌어지는데 그런 상황이 비정상적이라는것은 인지 못하고 그거 못하는 애들보다 자신이 다르다는 이상한 생각들이 머릿속에 쳐박히고 그리고 대학들어가면 뭐가 문제라 우리가 살려면 뭐를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게 아니라 그런 차이는 본인도 모르게 당연하다고 생각해버리는.

    대다수가 제정신이 아니니, 이제 방학인데, 애들 잡을 생각에 눈이 반짝반짝해지는 엄마들 보면 저런 여자들이 도대체 뭘 얘기해아 알아 쳐먹을 수가 있을지, 거기다 돈대주는 남편들과 아니면 집애서 애하나 관리못하냐는 아빠들, 그런 전체적인 틀속에서 벗어나기 참..........

    프랑스 학문하는 사람들보면, 이것도 푸코도 어릴때 자살할려고 하고 알튀세르니 뭐니 죽 정신 나가는것보면 애네들도 입시강박으로 맛이 가는것아닌가도 생각을 하지만 하여간, 문헌창고에 쳐박혀서 1년넘게 기초 데이터를 다루던데,  한국대학 나와서 천재타령이전에 그런 시간투자를 할 인재들을 키우고나 있을지. 제도적인것도 그렇고...........

  • PRC ()

      경제학 뿐 아니라요...  요새 학교들이 폭넓은 지적인 활동을 하거나 정말 진짜로 중요한 문제들을 깊이 오래 파고들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죠. MIT에서 조교수 생활을 했다면 더 그랬을텐데... 현실과 상관없는 수학적인 유희이건 나발이건 월화수목금금금 연구해 있는대로 푸쉬를 해서 결과를 내고 그랜트도 따고 해야 재임용이 되고 승진이 될텐데 빈부격차의 역사를 연구한답시고 1700년대, 1800년대 문헌 뒤져고 있으면 이상한 놈 소리 듣기 딱이겠죠.  결국은 유럽식 시스템이 아니었다면 받쳐줄 수 없는 연구였다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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