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밈(Meme)'이 지배하는 미래사회...

글쓴이
최성우
등록일
2002-09-24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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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 모임의 게시판에서 여러 논의들이 진행되면서 적지 않은 분들이 공감을 하고, 또한 신문기사나 기타 여러 통로로 여론화, 공론화되는 과정을 보면서 '밈(Meme)'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아래 글 서두에서 언급을 했습니다만, 리처드 도킨스가 처음 만들어낸 이 개념이 매우 유용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밈을 우리말로 '모방자' 혹은 '모방유전자'라고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이렇게 제가 글을 써서 주장을 하고, 다른 분들이 공감을 표하거나 다른 사이트 등에 옮기는 것 또한 모두 다 '밈'의 일종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요...

아래 글은 2년 전인 2000년 5월 쯤 중앙일보 과학칼럼('헬로2000')에 짧게 썼던 글인데, (당시 신문에서는 "모방유전자의 위력"이라는 제목을 붙여서 냈더군요.) 이번에 책을 내면서 역시 부연설명을 하고 내용을 많이 보완했습니다.
'밈' 중에서도 통신을 통하여 급격하게 번성하는 부류로서 여러 악성 루머나 헛소문, 온갖 불건전 정보 등 나쁜 밈도 매우 많습니다만, 우리처럼 과학기술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이공계를 살리고 나라도 잘되게 하자는 '좋은 밈'을 적극적으로 퍼뜨려 나아갔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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밈이 지배하는 미래사회

최성우(과학평론가; hermes21@nownuri.net)
- '상상은 미래를 부른다(사이언스북스)' 中에서 -


길거리에서 낯모르는 사람이 부르는 콧노래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따라 부른 경험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요즘의 청소년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인기 연예인들에게 열광할 뿐 아니라, 그들의 의상, 머리모양, 장신구, 말투 등을 그대로 흉내내는 경우도 적지 않다. 공상과학영화 '터미네이터2'의 끝무렵에는 사이보그(기계인간)가 "이제야 인간들이 눈물을 흘리는 이유를 알겠다."라고 말하면서 인간성을 체득한다는 가슴 뭉클한 장면이 나온다.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세계적인 생물학자이자 과학저술가로도 유명한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는 1976년에 낸 '이기적인 유전자(The Selfish Gene)'라는 책에서 '밈(Meme)'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처음으로 제시한 바 있다. 그리스어로 모방의 의미를 지닌 'Mimeme'에서 따와, 남의 것을 모방하고자 하는 인간의 심리를 생물학적인 용어인 유전자 '진(Gene)' 에 빗대어 만들어 낸 용어이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에도 밈이란 '비유전적 방법, 특히 모방을 통해서 전해지는 것으로 여겨지는 문화의 요소'라고 정의되어 있다.

생명체가 자신의 형질을 후대에 물려주어 전파하는 방법으로는 유전자(Gene)에 의한 복제의 방식을 취한다. 밈도 스스로를 복제하고 널리 전파하면서 진화한다는 점에서 생물의 유전자와 닮은 점이 많다. 그러나, 유전자에 의한 복제는 반드시 부모가 자식에게만 물려줄 수 있으므로 시간이 오래 걸리고 개체수도 제한될 수밖에 없다.
반면에, 밈에 의한 복제는 모방을 통해서 이루어지므로 정확성은 다소 떨어지지만 이른 시간 내에 거의 무제한으로 퍼뜨릴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또한 유전자가 다윈의 자연도태설에 바탕을 둔 진화론을 따른다면, 밈은 획득형질의 유전을 주장하는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에 가까운 진화를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노래, 광고, 사상, 패션, 건축양식 등 유행을 타는 인간행위의 전파는 모두 밈에 의한 복제과정을 거치게 된다.

특히 정보화사회가 진전되고 인터넷으로 국경을 넘나드는 오늘날 밈은 점점 더 큰 위력을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전세계적으로 큰 피해를 입히고 있는 여러 컴퓨터 바이러스 역시 일종의 '악성 밈'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컴퓨터 바이러스의 성질에 대해서는 그 자체가 스스로 증식하고 자신을 복제하므로 인공생명의 일종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인간의 두뇌 대신에 컴퓨터를 숙주로 하여 전파하는 밈으로 간주할 수도 있겠고, 최소한 밈과 큰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여러 변종들이 생기는 것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
사이비종교집단의 혹세무민 행위, 근거 없는 헛소문의 유포 역시 밈이 인간의 마음에 침투하여 일으키는 것으로 설명될 수 있다. 물론 나중에 사실로 드러나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특정 연예인에 대한 소문 등이 확인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급속히 번져서 당사자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큰 소란을 빚는 것도 밈에 의한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언젠가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사람들이 착용한 선글라스나 티셔츠 등이 불티나게 팔리는 등, 맹목적인 유행성에 대해 일부 식자들이 큰 우려를 표명한 것도 밈이 인간의 마음 속에 침투하여 사고방식과 의지를 조종한다는 이른바 '마인드 바이러스' 이론을 떠올리게 한다.
그 동안 통신공간 등을 주무대로 하여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처럼 급속히 번졌던 여러 우스개 이야기들, 이른바 '덩달이 시리즈'니 '사오정 시리즈'니 '삼행시'니 하는 것들도 밈의 특징을 여실히 보여준다. 즉 생물과 같이 생성, 발전, 쇠퇴와 소멸의 단계를 거치면서, 여러 변종들이 출현하면서 진화하는 현상, 이른 시간 내에 대규모로 전파되는 모습 등은 바로 전형적인 밈의 모습이다.

앞으로 지능형 로봇이나 인공생명 등이 실제로 탄생하게 되면 밈이 진화의 주역이 될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들도 많다. 기계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복제인간의 애환을 다룬 리들리 스코트 감독의 SF명작 '블레이드 러너'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시한부 인생인 앤드로이드(복제인간)가 자신을 죽이려던 요원과의 격투 끝에 도리어 그를 살려 준다는 대목이 나온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성경의 구절을 연상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복제인간도 바로 '밈'에 의해 인간의 관용을 배웠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처음에 언급했던 사이보그 '터미네이터'도 그 동안 인간과 함께 생활해 오면서 바로 밈에 의해 가슴 뭉클한 인간성을 체득했다고 이야기해도 큰 무리는 아닐 것이다.

일부 학자들은 밈의 개념이 정확히 무엇인지 그 정의조차 불분명하며, 의미 없는 단순한 은유이거나 공허한 유추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근래에 외국에서는 밈의 개념을 여러 분야에 적용하여 설명하는 등, 밈의 실체를 폭넓게 연구한 책들이 잇달아 발간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자연과학계 뿐 아니라 사회과학계, 문화계에서도 밈에 대한 관심을 기울임과 동시에, 건전하고 유익한 밈을 발전시켜 나아갈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 최성우 ()

      요즘 통신공간에서 가장 크게 힘을 얻고 있는 밈(Meme) 중의 하나가 바로 '아햏햏'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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