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설팅의 기원? > 손님게시판

본문 바로가기

컨설팅의 기원?

페이지 정보

chatnoir () 작성일2002-08-02 01:35

본문

안녕하세요

Scieng를 늘 지켜보는 독자중 하나입니다.

박상욱회원께서 지난 2002년 7월 5일에 한겨례에 기고하셨던
"[하니리포터] 이공계인들이여, 과학을 상품화하라"를 읽고
공감을 참 많이 했었읍니다.

그러나 인간관계, 회사내 직장상사와의 관계 때문에
현실적으로 이를 현실화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다는 글들도
있었던것으로 기억합니다.

오늘 니콜라 테슬라의 전기를 재미있게 읽었다는 분의 글을 읽고
마침 비슷한 시기의 엔지니어였던 Charles Proteus Steinmetz가 생각나더군요.
이 분은 독일서 수학을 하다가 정치적인 이유로 비스마르크 정권에게 쫒겨
다니다가 미국으로 도망와서 GE에서 평생을 엔지니어로 일했던 사람입니다.
우리가 접하는 수많은 전기 제품을 발명했고, 특히 3상회로를 해석할때
쓰이는 복소수법을 처음으로 도입한것으로도 유명하지요. 이분의 전기도
출판되었던 것 같아 이분의 업적은 여기에 쓰지 않겠읍니다.
(Steinmetz: Engineer and Socialist , 1992) .

오늘 Steinmetz를 언급하고자하는 이유는 이분이 GE에서 일할때의
일화 한가지를 소개하고자 하기 위해서 입니다.
여러분은 컨설팅의 시조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뭐 물론 그리스의 철학자들도 집권자에게 충고하고 그랬겠지요.
그러나, 이런것들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컨설팅과는 좀 다른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경영학에서는 1926년에 시카고 대학 회계학과 교수였던 James O. McKinsey가
컨설팅 회사를 세운 시점을 시초로 잡기도 하지요.
그러나 저는 좀 다르게 생각합니다. Knowledge & Information을 상품화
한 시초는 다름아닌 GE의 엔지니어였던 Charles Proteus Steinmetz라고
보는데, 그 이유는 아래의 일화때문입니다.

GE의 발전기에 이상이 생겼는데 아무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어서,
이 방면에 천재라 알려져있던 Steinmetz에게 의뢰가  갔던 모양입니다.
상당히 까다로운 문제라 며칠이 걸리긴 했지만 그는 결국 문제점을 찾아내고는
문제의 부분에 분필로 큰 X마크를 그었겠지요.
GE의 기술자들이 X자가 마크된 부분을 분해하여보니 과연 그곳이
문제였고, 곧 수리하여 발전기가 다시 작동하게 되었답니다.
경영진이 그에게 이 문제를 해결하는 댓가로 얼마가 필요하냐고
묻자, 그는 1000불이라고 딱 잘라 말하였읍니다.
1800말~1900년대 초에 1000불은 매우 큰돈이라, 깜작놀란 경영진이 견적서를
달라고 하자, Steinmetz는 곧 그들에게 다음과 같은 견적서를 보냈읍니다.

1. X자를 긋기위한 분필값 1불.
2. 어디에 X자를 마크해야하는지를 위해 필요한 지식 999불!

미국에서 지금과 같이 과학기술자들의 지식이 대접을 받게된데에는, 
Steinmetz와 같은 선배 엔지니어들의 탁월한 실력과 당당한 태도가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타 분야 사람이나 관리자들에겐
그 당당함이 때론 곤조(?)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국내의 지식 경시 풍토를 바로잡는데 참고가 될까해서 글을 올려보았읍니다.

윤하용 드림

================================================================
[또 다른 일화]

곤조 얘기가 나온김에 Steinmetz의 또 다른 일화 한가지만 소개하지요.
요즘 우리나라 기업에서 관리자들이 윗사람이 한마디만 하면,
맹목적으로 캠페인화해서 나머지 직원들을 괴롭히지요?
아침에 일찍나와서 인사하기, 금연하기, 자기회사 물건팔아주기...
미국도 그런일이 있었나봅니다.(사람사는데가 다 거기서 거기겠지요.) 
GE에서도 시대가 변함에 따라 금연운동이 불었다는군요.
그래서 건물 곳곳에 금연 표시를하고, 흡연자가 발각되면 적발하고...뭐 아뭏튼
꽤 귀찮게 굴었나봅니다. 관리자들이 애연가였던 Steinmetz에게도
금연을 강요하고자 그의 사무실 벽에 "No smoking"이라고 써붙였다고 합니다.
그러자, Steinmetz는 "No smoking"이라고 쓴 종이에 큰 글씨로
이렇게 써놓고 나갔다고 합니다.

"No smoking - No Steinmetz"

그 후로 Steinmetz에게 금연하라고 그러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었다고 합니다.

==========================================================
참고삼아 MIT총장의 1999년 졸업식 연설문 중 Steinmetz와
관련된 부분을 부분발췌하여 첨부합니다.

In the early years of this century, Steinmetz was brought to General Electric's facilities
in Schenectady, New York. GE had encountered a performance problem with
one of their huge electrical generators and had been absolutely unable to correct it.
Steinmetz, a genius in his understanding of electromagnetic phenomena, was brought
in as a consultant -- not a very common occurrence in those days, as it would be now.

Steinmetz also found the problem difficult to diagnose, but for some days he closeted
himself with the generator, its engineering drawings, paper and pencil. At the end of
this period, he emerged, confident that he knew how to correct the problem.

After he departed, GE's engineers found a large "X" marked with chalk on the side
of the generator casing. There also was a note instructing them to cut the casing
open at that location and remove so many turns of wire from the stator. The generator
would then function properly.

And indeed it did.

Steinmetz was asked what his fee would be. Having no idea in the world what was
appropriate, he replied with the absolutely unheard of answer that his fee was $1000.

Stunned, the GE bureaucracy then required him to submit a formally itemized invoice.

They soon received it. It included two items:

1. Marking chalk "X" on side of generator: $1.
2. Knowing where to mark chalk "X": $999.
============================================================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손님게시판

SLIDE UP

모바일에서는 읽기만 가능합니다.
PC 버전 보기
© 2002 - 2015 scieng.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