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씨조선의 꼭두각시극 / 진중권

글쓴이
예진아씨
등록일
2007-11-10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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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세상] 이씨조선의 꼭두각시극 /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

변호사가 사제관으로 피신하고, 사제단이 변호사를 보호한다. 과거에는 민주화운동을 하던 이들이 그리로 들어갔었다. 그런데 21세기 디지털시대에 군사독재정권 시절에나 보던 일이 다시 <> 벌어진다. 어찌된 일일까? 이번 일은 우리 사회의 권력이동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이제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 노무현 대통령의 말이다. 실제로 그동안 우리 사회에는 큰 변화가 있었다. 과거에 정치권력을 비판하려면 목숨을 건 실존적 결단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요즘 "대통령 씹는 것이 국민 스포츠가 되었다."는 어느 여당 정치인의 푸념대로, 이제 정치권력을 비판하는 것은 부담없이 즐기는 가벼운 오락이 되었다.

시장권력은 다르다. 이건희 회장한테 명예박사학위를 주는 데에 반대해 시위를 벌인 학생들은 학교와 동료 학생들로부터 뭇매를 맞았다. 사태에 책임을 지고 고대 보직교수들이 일괄사표를 내놓았다.

그 학교 학생들이 전직 대통령의 학교진입을 막았을 때에도 올라오지 않았던 교수들의 목이 일개 기업 회장을 위해 총장님 책상 위에 줄줄이 올라온 것이다.

그뿐인가? 얼마전 '시사저널'이라는 잡지에서 이건희 회장도 아니고, 2인자를 비판하는 기사를 썼다가, 거의 모든 기자들이 직장에서 쫓겨났다. 기자들의 대량 해직은 박정희, 전두환 정권 때나 있었던 일 아닌가?

심상정 의원이던가? 멀쩡한 의원들이 고장난 녹음기처럼 같은 소리를 반복하면 삼성에서 다녀갔다고 보면 된다고 했던 것이? 명색은 국민이 뽑는다 하나, 의정활동의 범위를 정해주는 것은 삼성. '법'이라는 게임의 규칙을 정하는 것은 그들이다.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넣지." 이것이 대한민국 검찰의 원칙인지. 이제 우리는 떡값 받은 검사를 색출하는 일을 떡값 먹은 검찰에 맡겨야 한다. 그뿐인가? 떡값 리스트에는 법관과 대법관의 이름까지 들어 있단다. 그게 사실이라면, 사법부까지 기업의 조종에 춤을 추어왔다는 얘기가 된다.

국세청은 어떤가? 폭로에 따르면 검찰이 먹은 것에 0이 하나 더 붙는다고 한다. 역시 납세의무를 남다르게 수행하는 데에는 품이 많이 드나보다. 불쌍한 것은 언론. 받아먹었다는 돈이 겨우 십만원 단위다. 광고로 이미 데스크를 커버할 수 있으니, 기자들에게는 그냥 애들 과자값만 줘도 된다는 얘길 게다.

명절날 떡값. 세시풍속이 사라져가는 시대에 기업이 나서서 민족문화의 명맥을 이으려 한다. 귀한 일이다. 특히 막대한 돈을 들여 민속극의 전통을 되살린 공은 영원히 기억되어야 한다. 남사당의 전통은 입법, 행정, 사법, 나아가 언론까지 동원된 저 거대한 꼭두각시극 속에 면면히 살아 숨쉬게 되었다.

일개 기업이 사법, 입법, 행정이라는 국가의 근간을 쥐고 흔든다. 일개 기업이 헌법적 가치를 우습게 만들어버린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이는 일개 '기업'이 아니라 일개 '가문'이 하는 일이다. 이 모두가 결국 일개 가문에서 억지로 기업을 사유화하려 드는 데에서 비롯된 일이 아닌가.

디지털 시대에 아직도 세습을 하는 곳이 세군데 있다. 북조선, 한국교회, 그리고 삼성. 대형교회 목사들에게 왜 세습을 하냐고 물으면, "리더십 때문"이라고 대답한단다. 북한에서 세습을 하는 것도 그 때문일 게다. 그렇다면 삼성은 어떤가? 삼성도 회장 가문의 리더십이 없이는 붕괴하고 말까?

회장 '가문'이 없다고 삼성이라는 '기업'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만약 그런다면 그것은 기업이 아니라 아마 사이비종교일 게다. 가문과 기업은 구별되어야 한다. 졸지에 이씨조선의 시대를 맞은 이 사회에 필요한 것은, '기업은 가족의 것이 아니라 사회의 것'이라는 근대적 기업윤리가 아닐까?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

기사일자 : 2007-11-10

  • Wentworth ()

      이거 읽고 궁금했던 것이... 한국 교회도 세습을 하나요? 주위에 교회다니는 사람이 없어서.

  • 예진아씨 ()

      Wentworth//  그런 일 하다가 신도들이 많이 떠나버리거나 심각한 경우에는 내분이 나서 교회가 둘로 쪼개질 수도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그렇게 하고 싶어도 못하지만 몇몇 규모가 큰 유명 교회에서 그런 일이 있어 언론의 질타를 받기도 했습니다. 개신교는 교회별로 사정이 천차만별이라 실력 없다고 혹은 교회 재정이 부족하다고 목사가 ㅤㅉㅗㅈ겨나가는 경우에서부터, 목사가 인기가 많아서 CEO처럼 교회 모든 업무를 결재하거나 재가하는 경우에 이르기가지 다양합니다.

  • 임춘택 ()

      진중권 교수는 시원시원하게 글을 잘 쓰긴 하는데, 이번 경우에는 '권력 이론'을 더 가다듬어야 할 것 같습니다.

    제 '이론'에 따르면 한국에서 세습까지하고 아무도 못 건드리는 무소불위의 권력은 언론(조중동네 등), 재벌(삼성, 현대 등), 종교(일부 교회/사찰 등)입니다.

    여기서 '일부 교회'는 사학재단과 복지시설을 갖고 있는 대형교회로 사유화 되어있는 곳이고, '일부 사찰'은 개인이 사찰을 소유할 수 있도록 허용해주는 일부 종파 중에서 기업의 뒷돈을 맡아 관리하는 것으로 알려진 일부 사찰을 의미합니다.

    이래서 언론 민주화, 종교 민주화, 경제민주화가 안되었다고 말하는 것이고, 우리가 선진국으로 가는데 있어서 걸림돌이자 악성 종양이며 독버섯인 것이죠.

    우리 이공계가 열심히 벌어서 산업을 발전시키고 외환보유고를 높이며, 국방, 교육을 튼튼히 해놔도 한쪽에서 곶감 빼먹듯이 우리 사회를 좀먹는 세력들입니다. 그래서 국가의 주인격인 우리 과학기술인들이 무관심하면 안되는 부분이 이런 부분입니다.

  • shine ()

      교회 세습합니다. 저희동네 주변부에 있는 대형교회중에 단 한군데빼고 전부 세습해버렸다고 들은적이 있습니다.

  • shine ()

      요즘 한국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습니다. 아무리 물을 퍼부어도 밑에서 열심히 구멍뚫는사람들이 있는 이상 소용이 없죠.

  • shine ()

      또 세 부류에 대한 국민들의 입장은 3가지정도로 나뉘더군요.
    적극적으로 비판하는 입장, 비판하고 못마땅해하면서도 이면에는 내심 부러워하는 입장, 긍정적으로 보는 입장으로 말이죠.
    적어도 제 주변에는 1번째에 비해 2, 3번째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언론 민주화, 종교 민주화, 경제 민주화가 일어나긴 어렵다고 봅니다.

  • 정중동 ()

      한국은 세습형 재벌 자본주의로
    북한은 왕조적 사회주의 국가입니다
    둘다 완전히 왜곡된 형태입니다

    가족밖에는 믿을수 없다는것이 그 저반의식이구요
    두고두고 해먹겠다는 겁니다
    이것이 조금 확대된것이 (극단적인) 공동체 혹은 동지의식입니다
    비슷한 신분에 있는 사람들이 손에 손을 잡고 권력을 독점합니다
    기본적으로 가족외에는 신뢰가 없으므로
    대등한 입장에서는 정략결혼이 오가는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뇌물과 접대가 필요한겁니다
    우리나라를 말아먹고 있는것이 다름이 아니라
    이런 국민정서 때문이에요
    단순히 기득권세력 소수의 책임만은 아니라는것이지요

    가정, 언론에서나 교육현장에서부터
    합리적인 사회생활에 대한 신념을
    세우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아무리 지식정보사회라고 해도 사람이 사람을 상대하기에
    도덕과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어렸을때부터 가르쳐야하는겁니닌다

  • dsl ()

      이씨조선이 뭔뜻인지 알만한 사람이 대놓고 쓰니까 기분 더럽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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