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히틀러와 나치 하의 과학자들

글쓴이
최성우
등록일
2003-07-16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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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위) 무솔리니 치하의 이탈리아를 떠나 미국으로 망명한 엔리코 페르미

(사진 아래) 히틀러 치하의 독일을 떠나지 않고 마지못해 나치에 협조하였던 하이젠베르크




히틀러와 나치 하의 과학자들


히틀러는 인류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범죄자임은 두말하면 잔
소리일 것이다. 히틀러와 나치당의 광기 어린 독재 및 그 정치적, 역사적
배경에 대해 논한다는 것은 필자의 주임무가아닐 것이므로 거두절미하기
로 하고...

히틀러는 다른 분야 뿐 아니라 독일의 과학에, 나아가서는 세계 과학계
전체에도 커다란 오점과 상흔을 남겼다. 히틀러 치하에서는 과학 역시 '게
르만 민족의 우수성'을 증명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으로 왜곡되고 변질되었
는가하면, 수많은 과학자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온갖 고초를 겪어야만 했
다. 20세기 최고의 과학자로 꼽히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유태인 과
학의 졸작품'으로 매도되고 배척을 받은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아인슈타인, 막스 보른과 같은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들을 포함하여, 뛰어
난 유태인 출신 물리학자들이 나치의 박해 때문에 결국은 미국 등지로 망
명을 떠났다. 이들 중에는 후에 미국 정부가 원자폭탄을 개발하는 맨하탄
계획을 수립하자, 거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사람도 많았다. 별의 생성 및
진화원리를 밝힌 천체물리학자 한스 베테(Hans A. Bethe; 1906-), 맨하탄
계획 참여에 이어 훗날 수소폭탄 개발 총책임자가 됐던 헝가리출신의 물리
학자 에드워드 텔러(Edward Teller; 1908-), 수학자로서 컴퓨터의 아버지
라 불리는 폰 노이만(L. von Neumann; 1903-1957) 등이 바로 그들이다.
아인슈타인은 원자폭탄을 만드는 연구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과학자들의 권유로 1939년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나치독일에 앞서서 미국이
먼저 원자폭탄을 개발해야 한다는 편지를 보냈으므로 역시 맨하탄 계획과
관련이 있었다. (물론 나중에는 이 일을 크게 후회하고 반핵평화운동에 매
진하긴 하였지만...)

미국에 망명하여 맨하탄 계획에 중심적으로 참여한 인물로는, '갈릴레이
이후 최고의 이탈리아 물리학자'로 꼽히는 엔리코 페르미(Enrico Fermi;
1901-1954)도 있다. 그는 유태인이 아니어서 직접 나치의 박해를 받지는
않았지만 그의 부인이 유태인이었는데, 독일과 동맹을 맺었던 무솔리니의
이탈리아 역시 유태인 차별정책을 취하였던 것이다. 자신이 1938년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같은 날 유태인 차별법안이
공포되었다는 뉴스를 들은 페르미는 결국 노벨상을 받기 위해 스웨덴으로
간 후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바로 미국으로 망명해 버렸다.

핵분열 원리를 밝힌 공동연구자인 여성물리학자 리제 마이트너(Lise
Meitner; 1878-1968) 역시 나치의 피해자였던 유태인 중의 한 사람이다. 오
토 한(Otto Hahn; 1879-1960), 슈트라스만(Fritz Strassman)과 함께 우라늄
에 중성자를 충돌시켜 초우라늄을 만드는 연구를 했던 그녀는 나치의 박해
를 피해 코펜하겐으로 탈출하였다. 그 후에도 편지 서신 등을 통하여 공동
으로 연구를 계속하였으나 1939년에 발표된 핵분열 이론에 관한 논문에서
도 나치의 압력으로 그녀의 이름은 빠지게 되었다. 이는 마이트너가 자신
의 업적을 인정받지 못하게 된 이유의 하나가 되기도 하였다.

물리학자 뿐 아니라, 화학자, 생물학자 중에도 나치독일의 박해를 피해 미
국으로 망명한 사람들이 많고, 노벨상 수상자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이
른바 '두뇌이민'으로 표현되는 이러한 고급두뇌들의 집단적인 미국 이주는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 과학이 세계적인 패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 밑바
탕이 되기도 하였다.
유태인이 아니면서도 독일에 남아 있다가 뜻밖의 피해를 본 과학자들도
적지 않다. 나치 치하에서 평화운동에 앞장서서 모진 박해를 받았던 독일
의 언론인 오지에츠키(Carl von Ossietzky)가 1936년 노벨 평화상을 받게
되자, 이에 분노한 히틀러는 그후 독일인이 노벨상을 받는 것을 금지시켰
다. 이로 인하여 노벨상 수상자로 지명된 여러 과학자들이 본의 아니게 노
벨상 수상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고, 이들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야
수상자가 될 수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독일의 패망으로 끝나고 연합군이 독일에 입성한 후로,
이번에는 나치독일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여러 과학자들이 수난을 당하기도
하였다. 대표적인 경우가 불확정성원리의 발견으로 양자역학의 수립에 크
게 공헌한 하이젠베르크(Werner K. Heisenberg; 1901-1976)이다. 그가
1932년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후, 나치독일은 그것을 '독일 민족의 우
수성'을 선전할 절호의 기회로 삼고 히틀러와의 연대를 공식적으로 서약할
대규모의 환영행사를 제안하였다. 그러나 하이젠베르크가 끝내 행사에 불
참하자 그는 '아인슈타인의 잔당'으로 매도되었고, 그의 양자역학 역시 일
거에 '졸작품'으로 비판받았다.

하이젠베르크가 다른 과학자들과는 달리 왜 끝내 독일을 떠나지 않고 마
지못해 히틀러에게 협조했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카
이저 빌헬름 연구소의 책임자가 되어 독일의 원자폭탄 개발을 총괄하게 되
었고, 이로 인하여 후에 연합군에 의해 전범으로 몰려서 구금되었다. 그러
나, 그가 일부러 원자폭탄 개발을 사보타지했기 때문에 독일은 원자폭탄을
만들 수 없었다는 동료 과학자들의 변호가 받아들여져 풀려날 수 있었다.
우라늄 핵분열 원리의 발견으로 원자폭탄 개발의 단서를 마련한 오토 한
역시 독일의 원자폭탄 개발 계획에 관여했다는 이유로 영국의 비밀장소에
구금되어 조사를 받았다. 그러던 와중에서 자신이 1944년도 노벨 화학상
수상자로 지명되었다는 소식을 들었고, 노벨상을 받으러 가기 위해 결국
구금생활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 조준호 ()

      히틀러는 '나의 투쟁'에서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의식한 듯한 발언을 합니다. '지구가 에테르 상을 순항하듯 어쩌구'하는 표현이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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