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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군·구보다 대학이 많은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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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yun Kim 작성일2004-06-30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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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시·군·구보다 대학이 많은 나라

우리나라의 시.군.구 수는 모두 234개인 반면 대학은 359개다. 기초자치단체마다 평균 1.5개의 대학이 있는 셈이다.

이들은 '규모의 경제'를 과신한 나머지 학생수를 엄청나게 불려 놓았다. 덩치만 키우면 경쟁력이 절로 생긴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대학생수는 전체 인구 대비 4%를 넘어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고교 졸업생 10명 중 8명이 대학에 들어갔다.

서울대는 매년 4000명 가량, 연.고대는 5000명 이상씩 신입생을 뽑는다. 반면 한국 인구의 20배가 훨씬 넘는 중국의 명문 베이징대와 칭화대는 신입생수가 각각 3000명 수준에 불과하다.

이처럼 양적 팽창을 거듭해 왔으나 경쟁력은 바닥권이다. 얼마전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소(IMD)가 발표한 '2004년 세계 경쟁력 순위'는 한국 교육의 현주소를 잘 보여준다. 대학교육이 경제적 수요를 충족하는지 묻는 항목에서는 최하위인 59위에 머물렀다.

왜 이 지경이 됐을까. 서울대 정운찬 총장의 진단.

"대학도 한국 경제처럼 양적 팽창이 앞섰을 뿐, 질적으론 갈 길이 먼 게 분명하다. 교육시설 부문에서는 과잉투자가 일어났고, 대학생수는 시설투자보다 더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아니 한국 경제보다 대학이 더 뒤떨어져 있는 지 모른다. 우리 대학은 한국 경제처럼 국제통화기금(IMF)에 의해 구조조정 당하는 기회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학이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안주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젠 여유를 부릴 시간이 없다. 이대로 가다간 대학은 물론 국가의 미래도 없기 때문이다. 내실을 다지기 위한 구조조정을 서둘러야 한다. 잘 나가는 대학도 정원을 줄여 교육의 질을 높여야 한다. 서울대도 신입생을 16%나 줄인다고 하지 않는가.

이젠 양보다 질을 따질 때다. 말만 무성한 '이공계 살리기'도 핵심을 비켜가고 있다. 한국의 이공계 학생 비율은 이미 엄청 높다. 선진국은 25% 정도인데 우린 40%가 넘는다. 많은 학생이 이공계를 지원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이미 우리 사회구조는 탈공업화.서비스 사회로 빠르게 진입하고 있다. 학생수가 줄어드는 것은 시장의 신호를 느끼는 것이다.

실업고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실업고는 전체 고교의 37%, 학생수는 30%다. 그러나 중상층 이상은 실업고에 아예 관심이 없다. 국가도 잊어 버리고 있다. 정책적 배려도 하지 않는다. 교육인적자원부란 명칭이 부끄러울 정도로 실업고 인력개발엔 소홀하다.

요컨대 이공계 위기론의 본질은 '양(量)은 과잉, 질(質)은 하락'이다. 따라서 선택과 집중으로 질을 높여야 한다.

기술에 올인하면서 무섭게 커가는 중국이 좋은 사례다.

"2025년까지 세계 100위권 대학에 두 곳이 들어간다. 노벨상 수상자 배출은 물론이다." 중국이 추진하는 21세기 대학의 목표다. 칭화대는 벤처회사 20여개를 거느리고 있다. 이들의 매출액은 연간 1조원이 넘는다. 베이징대는 기업을 소유해 대학 운영자금을 벌어 들인다.

한국 대학들은 이를 지켜만 볼 것인가.

이헌재 경제부총리는 "개혁은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진검승부"라고 말했다.

기업 및 금융 구조조정이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다. 개방과 경쟁에 담을 쌓아온 대학은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나 슬림화와 전문화를 통한 구조조정만이 대학이 살 길이다.

안병영 교육부총리가 이 부총리와 자주 만나 대학개혁을 논의하면 어떨까.


박의준 정책기획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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