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온초전도체, 상온핵융합, 그리고 아카이브

글쓴이
최성우
등록일
2024-03-13 10:12
조회
585회
추천
0건
댓글
0건
최성우의 과학기술 온고지신②

지난해 여름 이후 한동안 국내외 과학기술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던 상온초전도체 소동은 지난번 글에서 언급했던 ‘국뽕 과학’의 위험성 이외에도 여러 심각한 문제를 노출한 바 있다. 특히 해당 논문의 아카이브 공개로부터 촉발된 대중의 성급한 흥분과 폭발적 반응은 과학 커뮤니케이션의 측면 등에서도 면밀히 되짚어 봐야 할 과제를 남겼다. 
처음에 이를 보도한 신문·방송에서는 상온초전도체가 사실이라면 대단한 업적인 것은 틀림없겠지만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신중하고 차분한 논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일부 대중의 과장되거나 잘못된 주장과 진위가 불분명한 영상 등이 유튜브와 각종 SNS 등으로 급속히 확산되면서, 상당수 언론마저 부화뇌동하여 지나치게 낙관적인 장밋빛 기사를 쏟아내기에 바빴다. 이에 따라 초전도체 관련 업체의 주가가 폭등과 폭락을 거듭하는 매우 우려스러운 일마저 벌어지게 되었다.

이 소동은 오래 전에 역시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상온핵융합 소동과 비교하면서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1989년 3월, 미국 유타대학의 화학자인 스탠리 폰스(Stanley Pons)와 마틴 플라이슈만(Martin Fleischmann)은 기자회견을 열고 전기분해에 의해 상온핵융합 반응을 성공시켰다고 발표하였다.
최소 1억도 이상의 초고온이 필요한 기존의 핵융합 방식과는 달리 상온에서도 핵융합이 가능하다는 이들의 주장을 세계 각국의 언론은 대서특필하였다. 우리나라 주요 신문들도 ‘인류의 에너지 문제 완전 해결’이라는 대문짝만한 1면 머리기사를 냈던 것을 필자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러나 충격과 흥분을 가라앉힌 전 세계의 과학자들이 차분히 그 실험을 재현하고 검증해 본 결과, 상온핵융합이 아닌 것으로 결론지어졌다. 두 화학자는 실험 결과를 성급하게 잘못 해석하였거나 계산과정 등에서 중대한 오류를 범했던 것이다. 이들은 학술 저널을 통하여 충분한 검증을 받기도 전에 대중에게 발표해 혼란을 초래했다는 비난을 받고 대학에서도 쫓겨나고 말았다.
대중을 기만하거나 부정한 이득을 취할 목적으로 의도적으로 실험 결과를 날조하거나 논문을 조작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과학계의 검증 이전에 언론을 상대로 직접 연구결과를 발표한 것은 매우 잘못된 행위임에 틀림없었다. 이후에 미국 언론계에서 논문이 나오기 전에는 섣불리 연구성과를 보도하지 않는 것이 관례로 자리잡게 되었다. 또한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 행정부는 ORI(연구진실성위원회)의 설립을 추진하게 되었다.

그런데 상온핵융합 소동에서 수십 년이 지난 오늘날, 아카이브를 비롯한 논문 사전 공개 사이트가 등장하면서 이들의 역할과 기능에 대해 고민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이는 논문이 정식 출간되는 학술지는 아니지만, 연구자들이 자유롭게 게재하여 동료들의 의견 등을 들을 수 있는 나름 의미가 있는 온라인 공간이다. 그러나 원래의 긍정적 기능에서 일탈하여 미처 검증되지 않은 주장에 많은 대중이 현혹되는 등 바람직하지 못한 일들이 발생하고 다른 목적으로 악용될 가능성마저 있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코로나19가 창궐하기 시작할 무렵인 지난 2020년 2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중국 우한의 실험실로부터 유출되었다고 주장한 논문이 ‘리서치 게이트’에 실려서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이 사이트 역시 학술지가 아닌 논문 사전 공개 기능을 포함하는 연구자들의 소셜 네트워크였고,  해당 논문은 저자마저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곧 삭제되었다. 그러나 음모론 등에 경도되기 쉬운 대중에게는 진위에 관계없이 그럴듯한 미끼를 제공했던 셈이다.         
한편으로는 상온초전도체라는 과학적 이슈가 사회 전반적으로 큰 주목을 받으면서, 과학기술에 대한 대중적 이해와 관심이 고양된 일부 긍정적 측면도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신문과 방송이라는 기존 레거시 미디어의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퇴조하면서 유튜브, SNS 등 개인미디어의 힘이 갈수록 커지는 오늘날, 이들의 역기능과 부정적 측면 등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과학 언론과 과학 대중화의 관점에서도 쉽지 않은 숙제를 남겼다.     

최성우 과학평론가

< 교수신문 2024. 3. 13 >

이미지1: 전기분해에 의한 상온핵융합 반응의 모식도 (출처: 위키미디어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이미지2: 자석을 공중에 띄우는 초전도체 모습 (출처: 위키미디어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목록


과학기술칼럼

게시판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등록일 조회 추천
1903 힉스 입자와 노벨물리학상 최성우 05-16 80 0
1902 달 탐사 로켓과 로스트 테크놀로지 최성우 04-24 270 0
1901 메타버스가 맥을 못 추는 이유는? 최성우 04-02 503 0
열람중 상온초전도체, 상온핵융합, 그리고 아카이브 최성우 03-13 586 0
1899 상온초전도체 소동과 ‘국뽕’ 과학 댓글 2 최성우 02-14 923 0
1898 물 없이 견디는 동식물과 레퓨지아 댓글 1 최성우 03-30 2983 1
1897 빙하 코어라는 차가운 타임 캡슐 최성우 03-11 2526 1
1896 타임캡슐과 같은 물 최성우 02-28 2356 1
1895 갈수록 심해지는 가뭄과 홍수 최성우 02-19 2352 0
1894 가상수와 물 발자국 댓글 4 최성우 01-29 2824 0
1893 물을 둘러싼 국제적 분쟁 최성우 12-30 2297 0
1892 동식물과 물의 상호작용 최성우 12-26 2241 0
1891 물과 생명체의 진화 최성우 12-22 2304 0
1890 제임스웹 우주망원경의 특징 - 우주망원경의 세대 교체 댓글 3 최성우 11-29 3062 0
1889 2021년 올해 노벨물리학상의 특징 최성우 10-28 3081 0
1888 새롭게 각광 받는 해조류 최성우 10-25 2675 0
1887 가장 검증된 탄소 흡수 - 식물의 광합성 최성우 10-18 2581 0
1886 태양 지구공학적 방법은? 댓글 2 최성우 10-11 2751 0
1885 이산화탄소의 다양한 활용과 저장 최성우 09-28 2612 0
1884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직접 포집 최성우 09-23 2753 0


랜덤글로 점프
과학기술인이 한국의 미래를 만듭니다.
© 2002 - 2015 scieng.net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