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14 관련) 허성도 vs. 송복의 다른 사관

글쓴이
Simon
등록일
2010-10-14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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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복 연세대 명예교수는 '위대한 만남―서애 유성룡'이라는 책에서 조선 왕조의 장수 비결을 사회경제적 절대 빈곤에서 찾았다. "사회가 빈곤하면 빈곤할수록 정권을 바꿀 에너지가 사회 내부에서 생성되지 못한다. 반면 정권은 일정한 무력으로 어떤 농민 반란도 진압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다이내미즘의 상실은 곧 정체로 이어지고 정체는 오늘날 북한처럼 장기집권을 가능케 한다"는 것이다...." (전상인 사회학과 교수)

출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10/13/2010101301989.html?Dep1=news&Dep2=headline1&Dep3=h1_09

아래 7114 게시물의 허성도 중문과 교수와 180도 다른 시각으로 조선왕조를 해석한 것 같은데, 어떤 것이 더 옳은 말일까요? 옛날엔 다 후지고 못살고 낙후되어 있었고 늘 일본보다 못났었나요? 교수 사회에서도 조선을 어떻게 보는가가 이렇게 다르다는 것이 놀랍고 저마다 전공분야에 따라 또 다르게 본다는 게 더 놀랍고, 아울러 식민사관이 옳은 것인지 다른 사관이 옳은 것이 혼란만 있는 것 같아 더 놀랍습니다. 조선은 후기에 썪었으므로 실패한 왕조에다 일본에 굴종했으므로 부정하고 보는 것이 후세에 더 유리할까요?

이상적으로 이데아적으로는 허성도 중문과 교수의 얘기가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실상은 송복 명예교수의 부정적 사관이 더 현실에 맞는, ... 역사에 대한 바른 인식이라고 할 수 있을려나요?

  • BizEng ()

      빈곤이 정권을 유지하게 한다? 라는 명제는 러시아 혁명이나, 여러 가난한(?)나라들의 혁명 사례를 보면 안맞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잘살고, 부의 분배가 공정한 나라일 수록 사회가 안정적이라는 것이 상식에 가깝죠.

    조선이 500년을 가게 된 것도 오히려 조선 초기 안정적 경제기반을 구축하고 분배가 나름 골고루 되었던 때문에 문화와 경제가 발전하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안정된 정권기반을 구축할 수 있었지요. 그러나,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을 거치면서 민생경제가 피폐해지고, 권력층의 수탈이 심해지면서 경제 격차가 늘어나면서 민란이 발생하고 결국은 내재적 발전이 불가능 해졌던 차에 서구열강과 일본에 굴복하게 되었지요.

    사설에 보면, "가난이 정권을 지속하게 한다" 라는 명제를 가지고 젊잖게 "좌파·진보세력은 차제에 대북관을 자연스럽게 재고(再考)" 하라고 타이르는게 목적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가난과 경제적 격차가 사회의 불안정을 이끌었다는 사실을 무시한채, 잘못된 명제를 바탕으로 논리를 전개한 것 같습니다.

  • Simon ()

      귀가 얇아 여기서 이 얘기하면 힐긋하다 저기서 딴 얘기하면 저쪽이 맞는 것 같네요. 한마디로 철학이 없고 지조가 없고 지식이 없다보니 판단이 안된다는..

  • 남영우 ()

      농민반란을 진압해도 외세에 먹히면 끝장본다는게 역사에서 나타난 사실입니다. 북한의 장기집권이라고 해봐야 나라 세운지 몇 십년이죠. 중국의 어느 역대왕조보다도 역사가 짧은 것입니다.

    더군다나 북한 공산당의 권력은 중국 공산당이라는 외세에 결정적으로 의존하고 있습니다.

    백성들을 가난하게 만들어 억압하여 통치... 이건 몇 십년 수준에서나 통하는 이야기겠죠.

  • 남영우 ()

      식민지도 몇 백년 통치하려면, 나름대로 방법이 있어야 합니다. 탄압만 하는 것은 가장 무능한 방법입니다.

    조선왕조의 장수비결이 절대빈곤.....세종때 백성들을 빈곤하게 만들어서 왕조가 장수하는 기틀을 다졌나요? 그냥 농담이길 바랍니다.

  • 통나무 ()

      조선시대의 한 인물에 대한 책중의 내용일텐데요.
    정권을 바꾼다.
    왕권이 아닌 정권을 왕조시대때 어떻게 정의하느냐가 달라질수도 있겠지만, 조선시대 반정이 두번이나 있었지요.
    이번에 끝난 동이가 나오는 숙종때, 당을 갈아버리는것을 환국이라는 용어를 쓰고요.
    이게 왕권에 의한것이냐 신권에 의한것이냐라는 시기별 차이는 있지만
    변화는 정말 다양한데요.
    조선시대 중국의 왕조는 명과 청뿐이었고, 거의 도전못할 힘을 가진 통일 왕조였고, 중국이 분열되었을때는 좀 틈이 있고, 왕조가 우후죽순 나오고 망하고 하면, 니만 왕하냐 나도 왕해볼란다라는 생각이나 나겠지만, 조선에서 왕이 바뀌어도 중국에 눈치를 볼 상황에서 역성혁명이라는게 조선초 처럼 쉬운것도 아니고요(이게 중국에 예속되었다고 보면 그렇게 볼수도 있지만 국제적 역학관계라는게 힘셀때 조용히 있는것을 예속이라고 우기면 그리, 아마 지금 일본도 나중에 미국의 예속국가로 볼수도 있을겁니다. 경제력 넘너 투지만요)

    요즘 방송되는 성균관유생의 나날인가를 보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 유생들을 돌봐주는것은 노비들입니다.
    조선조 양반들의 생활을 버텨준게 노비들이었고,물론 노비도 사람이니 최소한 먹여살려야 되니 살림이 커지죠.
    그래서 선초 노비를 혁파하자는 애기는 그리 힘을 못쓰고
    순조때나 가야 공노비가 혁파가 되고요.
    일반백성들이나 노비들은 배나 곯지 않으면 다행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당시 사회의 중추역활을 하는 층은 시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절대 빈곤은 아니었을텐데요.

    조선의 힘
    <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6965353 target=_bla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6965353</a>
    제도적인 면에서 조선을 탐색한 책인데요.
    선조가 피난을 다니면서도 경연을 하는 식을 조선은 조선나름대로의
    틀이 있었는데요.

    조선이라는것도
    17세기 조선인 지도
    <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151085X target=_bla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151085X</a>

    18세기 조선지식인의 발견
    <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8621729 target=_bla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8621729</a>

    글을 남긴 사람들이 지식인이니 그 사람들을 봐도 17세기와 18세기의 그림은 너무도 다르게 나오고 이게 19세기로 가면 이제 찌질해지는 상황에서도 추사가 나오는 그런식인데요.

    조선시대 기근은
    <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1510825 target=_bla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1510825</a>
    전세계적으로 동시대적인 면도 있고

    생산력이나 농사의 발전은 영정조때 이르면 소출량에서 최고의 수준까지 오르는데요. 물론 이게 일반백성들한테 얼마나 고르게 가는지 양반들이 다 중간에서 가로채는지는 또 다른 문제지만,
    저렇게 볼 내용은 아니라고 봅니다.

    진짜 부족한것은 제대로 배운사람을 제대로 발탁하지 않은것이라고 해야할까요. 언제나 인재는 있고.

    선조가 피난갈때 한양을 지킬사람을 유성룡으로 결정했다가 이항복의 진언으로 이양원으로 바꾸고 유성룡을 데리고 가죠. 이게 조선의 힘이라는 책에서는 그런결정의 진언과 받아들임이 조선이 망할때는 아직아니었다는 해석을 하는데,
    지금 저런식의 칼럼이 나오고 많이 읽힌다면 어찌보면 망국의 징조일조도 모르겠습니다.

  • avaritia ()

      송복 식의 해석도 일정 부분 맞는 말일 수 있죠. 좀 더 부드럽게 말하자면, 군주제를 위협할만한 이념적 발판도 없었고 사회경제적 세력도 없었다는 얘기가 되겠네요.

    그런 면에서 BizEng 님의 맨 첫 리플에는 찬성하지 않습니다. 프랑스 혁명 등 근대 시민혁명을 보면 농업생산성 증대와 상공업의 발달로 경제권력이 왕가의 테두리를 벗어났기에 가능한 일이었고요 (권력층 밖에서 이상을 꿈꾸는 한량들이 늘어났기도...) 러시아 혁명 역시 19세기말 러시아의 산업혁명으로 봉건적 경제질서가 무너지고(시골 농노가 도시 공장노동자로) 마르크시즘이라는 이념적 무기와 레닌이라는 선동가가 있었기에 가능했죠, 가난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은 아닙니다.

    반면 조선의 경우 (군주제를 떠받치는)성리학을 위협할만한 이념적 사조가 형성되지도, 수입되지도 못했고, 농업생산성의 향상이 일부 있었지만 그렇다고 낙농업으로 가지도 못했고, 국제무역이 적어 상업자본도 형성되지 않았고, 통일신라때부터 이어내려온 오랜 중앙집권제의 전통(동시대에 세계적으로 과거라는 관리 선발 시험에 의해 지방 관료가 중앙에서 파견되고 로테이션되었던 나라는... 조선 외에는 아마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다른 나라들은 지방 토착 귀족이 상당한 자치권을 갖고 있던 형태였죠.)으로 왕권을 위협하는 지방 귀족도 없었고요.

    사실 이 분야는 혁명이론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숱하게 다뤘던 내용이고 윗글에 언급된 두 분 모두 혁명이론 전공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한국에는 근대 혁명이 없었다가, 일제에 강제 합병되면서 왕조가 사라졌고(굉장히 위험한 얘기지만 당시 공화주의파 중에 친일파가 많았죠) 해방이 되면서 어찌저찌하다가 이북에서는 공산혁명이 일어난 것이고요. 뭐 나름대로 거칠 것은 다 거친 셈인데... 시기적으로 좀 뒤졌다는 것 외엔...

    암튼 요약하면 조선이 못나서 혁명이 없었다라기보다는 변화가 더뎠다 라고 보는게 맞겠고요. 구한말 조선을 한없이 등-신같이 보는 시각이 존재합니다만 나름대로 혁명을 꿈꾸는 사람들, (청나라로부터의) 독립을 추진하던 사람들 등이 드글대던 격동의 시기였고, 내재적인 역량도 없지 않았고... 산업경제적으로 낙후했던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었지만 독일, 러시아도 19세기말에야 산업혁명을 시작했으니 크게 뒤처진 것도 아니었고...

  • 통나무 ()

      간송미술관
    동·식물 그림, 시대상·이념을 담다
    <a href=http://kr.news.yahoo.com/service/news/shellview.htm?articleid=2010101216432489609&linkid=4&newssetid=1352 target=_blank>http://kr.news.yahoo.com/service/news/shellview.htm?articleid=2010101216432489609&linkid=4&newssetid=1352</a>

    " "예술이 꽃이라면 그 뿌리는 이념"이라고 말하는 최완수 간송미술관 한국민족미술연구소 학예실장은 올 가을 정기 회화전의 주제를 '화훼영모(花卉翎毛)'로 삼고, 지배 이념이 바뀌면서 꽃과 동물 그림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보여준다. 미술관이 소장한 가장 오래된 동물 그림인 고려 공민왕의 양(羊) 그림부터 이당 김은호까지 600년의 동ㆍ식물그림 100점이 오는 17일부터 31일까지 전시된다."

    시간들 나시면 한번들 가보시길,
    조선의 빈곤이 현재의 문화, 사고의 빈곤일수도 있고요.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고려불확특별전을 합니다.
    조선과 고려, 불교와 유교
    우리 조상들이 꿈꾸던 세상이 뭐였는지 한번 생각해볼 계기도 될것 같고요.

  • 62도 ()

      역사에서 통치권력/체제나 이념이 크게 변한 원인을 내부적인 에너지와 외부적 에너지로 분류할 수 있겠습니다.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일반적이겠지만 조선은 인종반정 이후에 경직된 이념으로 쇄국을 했죠. 따라서 송교수의 시각대로 본다면 내부적인 역량이 자라서 개혁/개방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하는데 다수가 빈곤상태니 가능할 리가 없겠죠. 그런 면에서 송교수의 분석은 타당합니다.

    만일 농민이 반란을 일으킨다고 하더라도 농번기가 되면 봉기를 지속할 수 없었을겁니다. 먹지 않고 싸울수는 없을테니까요. 그러니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반란진압이 가능하죠. (거기에 이들을 지도할 만한 새로운 이념, 리더도 없으니 흩어지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이는 동학운동만 봐도 확연히 증명되죠.)

    만일 조선이 철저한 전답위주의 농업에서 벗어났다면 봉기는 쉽게 성공했을 가능성도 꽤 높았을겁니다. 거기에 상공업과 교역이 활발했다면 조선은 인조이전에 망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 통나무 ()

      쇄국은 일본도 명나라도 했었을 텐데요.
    일본 막부와 우리와 쇄국을 푼 차이는 햇수로는 얼마 안됩니다.

  • 62도 ()

      하지만 제가 옳다고 생각한 송교수의 분석은 조선시대에 한한 경우입니다.

    저는 은근슬쩍 북의 체제와 조선의 체제를 같은 선상에 두는 점은 좀 이해가 안갑니다. 더군다나 결론은 안드로메다로 날아간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원인으로 봐도 조선의 쇄국은 당시 사상적 기반때문에 발생한 경우이고 북의 경우는 독재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 권력의 의해 쇄국하는거 아닌가요? 그런데 쌩뚱맞게 빈곤하면 권력이 유지된다고 말하는 것은 좀 아니라고 봅니다.

  • 62도 ()

      일본 막부도 쇄국은 했지만 조선처럼 이념적으로 경직된 경우는 아니였습니다. 더군다나 에도시대에도 네덜란드로부터 학문적 경제적 영향을 지속적으로 받게 되었습니다.

  • 통나무 ()

      즐겨보는 만화가 막부말 일본만화인데요.
    료마니 뭐니 읽어봐도 경직된것으로 치면 우리나 거기나로 봅니다.
    단 차이가 있다면
    아편전쟁으로 청나라가 졌을때 일본의 지배층의 공포가 우리보다 훨씬 더 컸다는 글을 본적은 있습니다. 단순히 공포정도가 아니라 거의 하늘이 무너지는듯한, 자신들의 세계관이 거의 먹통이 되어버리는,
    거기서 어떤 행동이 유발되었는데,
    우리도 영향을 받기는 받았겠지만 어쨌든 일본은 그후 개인적 결단이든 정부측이든 외국으로 많이들 나가 배워오죠. 우리보다 한 10년 앞선다고 봐야 할까요.
    후쿠자와유키치 자서전 보면 개네들 네델란드 책이라 봤자 축성술이라는 부분과 의학정도 같던데요. 자서전 내용만으로 보면 짜증 만빵이던데요.

    조선시대 생활사 3
    <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6965175 target=_bla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6965175</a>
    여기에 식생활부분 보면 조선시대 식탐이 대단한 것으로 나옵니다.
    다른나라 3배를 먹어치웠다는,
    이게 엇나가게 설명하면 평소에 못먹어 먹을 때 많이 먹는식으로 설명을 한는데 그건 아니고 항상 그렇게 먹어댔다는 것을 보면
    식탐을 즐긴 시대라고 설명이 나오더군요. 벌이를 다 먹는데 써서 빈곤이 될정도로.

  • 개츠비 ()

      한국인 밥그릇이 엄청나게 컷다고 알고 있습니다.

    영양이 없었거나, 소화가 잘 안됐을 가능성도 있지만, 어쨋든 당시 일본의 3배를 먹어치웠답니다.

    그래서 임진왜란때 군량미로 추정한 적의 3배가량이 처들어와서 당황했다는 이야기도 들었고요...

    세상을 평가하기엔 항상 상대적이지만, 상당히 풍요로운 시대가 아니였을까요...?

  • 62도 ()

      몇몇 책에서 조선시대에 밥을 많이 먹었다고 하지만 그다지 신뢰성은 가지 않습니다. 뭐 양반들이야 많이 먹었다고 한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더군다나 양반들도 먹다가 남기는 풍습이 있었는데 (요새도 먹다가 마지막은 눈치보는 습관이 좀 있죠) 그것때문인지 애초에 왕창 퍼놓는 것도 있었고...

    하여간 조선시대 자체를 보면 풍요로운 시대라고 보긴 힘듭니다.

  • 통나무 ()

      홀로 벼슬하면 그대를 생각하노라
    이책을 보면 1567-1577년 일기를 토대로 정리한 책인데요.
    먹는 얘기가 많이 나옵니다.
    풍요.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에 영국 구빈법이 나오는데
    올리버트위스트 보면 그 상황이 소설적으로 잘 그려져 있는데요.
    근대 이전에 백성들이 풍요한적이 있었을까요?

    독학국사를 읽다보면 조선 백성에 대해 굶어죽지 않을정도의 정책적 배려에
    대해 얘기하는데요.
    풍요한 계층은 따로 있었던데 근대 이전의 상황으로 보는데요.
    닥터 노구치라는 만화보다 참 일본백성들도 어렵게 살았다는, 눈물이 다 나더군요.

    송복이 책에서 얘기하려던게 뭔가요.
    단지 유성룡의 리더쉽일까요.
    아니면 우리가 가난하게 참 침략받으면서 살았다는
    철지난  씨알도 안먹히는 소리인지,
    조선 500년, 일본한테 데인것 한번 외에는 참 편하게 산 역사로 보이는데요.
    명나라도 개국후 조선은 건드리지 마라
    청나라도 명을 치기위해 배후를 정리하기 위해
    우리를 치고도 그냥 적당한 선에서 인정하는 수준이었는데요.
    덜떨어진 일본애들이 만들어놓은 프레임에서 계속 왔다리 갔다리하는
    얘기를 유성룡의 리더쉽과 같이 엮어서 조잡하게 만든 얘기로도 보이고요.

    위에 링크한 조선의 힘에 왜 조선의 힘인지,
    그리고500년 역사에 굴곡이 없었을까요.

    허성도나 송복이나 저런 얘기를 아직도 떠벌리고 먹히는 세상이 좀 그렇다고 봅니다.

  • 통나무 ()

      역사전공 교수님에게 여쭈어 보니
    고고학 전공교수님은 송복같은 견해가
    친일파중에서도 보수적 입장이라고 하시고
    조선 전공교수님은 식자의 무식이라고 하시더군요.
    노교수님들이 잘못된 지식으로 잘못만들어진 역사를
    고치려 동분서주하시는 모습을 보니 안쓰럽더군요.
    뒷치닥거리하느라 인생다 보내신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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