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규 대원은 자기 연구를 위해 남극에 간 것일뿐? - 김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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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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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30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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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좀 이상하군요.

고 전재규 세종기지대원의 국립묘지 안장을 반대하는 많은 논지들중 그런대로 일리가 있는 것들이 없지는 않습니다만, 일부는 상당수 눈살을 찌푸리게끔 하는 주장들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죠.

'국가를 위해 간것이 아니라 본인의 학위를 위해 간것인데 유공자 대접이 타당한가'

이건 그나마 온건한 표현입니다. 이런 말도 있습니다.

'자기가 좋아서 연구하러 간거 아냐? 국가를 위하는건 무슨'

이를테면 막말 버전이지요.

뭐 그렇습니다. 사실 본인의 학위를 위한다는 측면이 없진 않겠죠. 아니면 남극의 자연환경에 대한 학문적 호기심이나 기타 등등, 자연과학이나 기술을 갖고 먹고사는 우리들이라면 모두들 갖고 있을 그러한 지적인 열망의 표출이라고 볼수도 있을 겁니다.

이러한 동기가 '국가를 위한다는것보다 오히려 순수하고 범인류적으로 존중해야 할만한 것 아니냐' 라고 답변하거나, '동란때 전사한 군인들이 전부 국가를 살린다는 열망으로 자원해서 싸운 군인들이냐. 그들도 대부분은 강제로 징집된거 아니냐'식의 물귀신적인 논법을 사용해서 반론을 할수도 있겠죠.

하지만 좀더 우리가 주목해서 봐야 할점은, 우리 사회(뿐만이 아니지만..) 일반에 퍼지고 있는, 이른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상징되는 홉스적 세계관의 확산입니다. 인간 활동은 철저히, 그리고 오로지 이기적인 동기만을 모멘텀으로 해서 움직인다는 만인불신의 일상화죠.

이러한 시각에 경도된 사람들은 타인의 행동이 이타적이거나 큰 이상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가치는 철저히 현실화(사실은 자기자신에게 있어서만 현실이지만)되고, 타인의 업적은 오로지 자신을 누르기 위한 적대적인 방향으로만 해석합니다. 따라서 헐뜯기가 일상적인 행동이 되지요. 나아닌 다른 사람이 정당한 방법을 써서 저런 성취를 이뤘을 리가 없어.

이런 시각은 일차적으로는 사회에 꼭 필요한 장기적인 비전의 구상이나 휴머니즘의 실현을 직접적으로 방해합니다. 그러나 더 큰 폐해는 이런 시각이 일반 군중의 심리가 될경우 잠재적으로 이상적인 비전에로의 의지를 말살한다는데 있습니다.

고 전재규 대원의 국립묘지안장 불가론중 가장 심각한 것이 이겁니다. '이공계 이기주의론'.

과학기술은 본질적으로 피드백이 즉각적이지 않은것들이 많습니다. 돈에서는 더욱 거리가 있죠. 실험실에서 연구를 하는 학자던 수출계약물량을 맞추기 위해 현장에서 밤샘작업에 매진하는 기술인이건 간에 이들에겐 경제적인 가치나 권력 이외의 신념과 가치가 있습니다. 많든 적든간에 말이죠.

만약 이들에게서 학문적 열정 혹은 수출을 한다는 자부심을 완전히 소거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오로지 돈과 권력만을 위한 돌진이죠.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이 이렇습니다.

이들에게서 저러한 열정과 신념을 소거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주위에서 이렇게 말하는 거지요. '저거 다 지혼자 잘먹고 잘살려고 하는 짓이야'(데미지 80).  '저짓 해서 뭐하냐' (데미지 100. 여러번 말하면 시너지 효과가 생김)

이런 말들의 상당수가 자기자신의 인생관의 반영인 경우입니다. 본인에게 이상적인 신념이 없으니 남들에게도 없을거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안타까운 점은, 이러한 이상적 가치관에 대한 실명 증상이 점점 확산되고 있으며, 주로 이른바 사회적 성공을 이룬 계층에게서 많이 나타난다는 점입니다. 대부분의 학부모들이 자기가족들만 잘먹고 잘살기 위한 삶의 전략만을 가르치고 있으며, 게다가 이러한 근시안적인 사고방식을 현실적이라며 자랑스러워하기까지 합니다. 아마도 도덕적 가책에 대한 자기방어적 심리기제가 강화된 나머지 이를 거세해버린 결과가 아닐까 합니다.

아무튼 전재규 대원에 대한 저급한 헐뜯기를 보면서, 역사는 반복되는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국난이나 평화시에 많은 영웅들이, 자기가 국가를 생각하지 않으니 저놈도 그럴거라는 수준의 모리배들에게 발목잡혀 온 역사를 가져 왔습니다. 최근에 위인 재조명을 비롯한 많은 이름들로 포장된, 그러나 결국은 자신보다 인격적인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시기심에 불과한 깎아내리기가 도처에 행해지고 있죠.

제가 이런 장문의 횡설을 쓴것은 일단은 이공계 이기주의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세상엔 당신같은 사람들만 있는게 아니란걸 말해주기 위함입니다. 둘째는, 그나마 학문적인 열정이란걸 가져본 이곳 분들에게 (물론 많은 양식있는 인문계 사람들도 포함됩니다) 그러한 순수함의 '소중함'만은 잊지 말자는 말을 하기 위해섭니다. 물론 그럴리야 없겠지만, 세상의 힘겨움에 이상과 신념을 접게 되더라도, 부디 그러한 마음을 배신하는 짓만은 하지 맙시다.


 
 

 
 
전은석 (2003-12-17 02:02:02) 
 
이 글 읽기 전까진, 물질주의에 빠진 사람들의 몰가치, 몰이해와 냉소라 생각했는데, 김하원님의 뛰어난 분석력을 통해 많이 배웠습니다. 
 
 
 
즐거운상상 (2003-12-17 02:24:05) 
 
여러번 깊게 생각해서 읽어보았읍니다. 순수함의 소중함이란 마지막의 님의 주장 새겨듣겠읍니다. 
 
 
 
샌달한짝 (2003-12-17 03:36:51) 
 
이공계 이기주의론의 근본적인 원인이 이상적 가치관에 대한 실명 증상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것보다는 여전히 이공계쪽이 여건이 좋다고 보는 사람들이 더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심지어는 이공계 위기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더 많지요. 되풀이되는 얘기지만 순수학문의 몰락과 인문학의 몰락 그리고 자연과학의 몰락 끝으로 이제 공학의 몰락 이미 그전에 몰락한 사람들의 시선이 그리 곱지 않은 것은 당연한 겁니다. 그 사람들이라고 학문에 대한 순수함을 간직하지 않고 산다고는 할수 없겠죠? 
 
 
 
샌달한짝 (2003-12-17 04:12:34) 
 
이런류의 사람들한테 이공계의 특수성(우리나라 경제성장의 발판이라는 둥)등을 얘기하기 시작하면 그 순간부터 이기주의로 몰리기 쉽상입니다. 주로 경영학쪽이나 법대쪽 공부하는 사람들 반발이 심한데 이런 류의 반응은 혹시 의사 얘기만 나오면 눈이 뒤집히는 이공계 사람들과의 반응과도 비슷하다고 생각지 않나요?ㅋㅋ 
 
 
 
이민주 (2003-12-17 05:11:00) 
 
인터넷이 발달하고 사회적 지휘나 판단능력이 부족한 사람들도 여론 창조에 기여할수 있게 되면서부터 쓰레기같은 의견들이 주류로 부상하는 경우도 많은듯 합니다. 앞으로 인터넷의 문제점들은 여러면에서.. 판단능력이나 지적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의 사회평가등에 의해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예를들면.. 화상회의나 화상전화를 위해 만들어진 화상통신이 주로 음란통신에 이용되고있고... 전자상거래나 초고속 과학기술용으로 만들어진 인터넷망이 고스톱치고 시간때우는데 주로 쓰이는 현상등이 그런 예입니다. 다음이나. 기타 싸이트등에도 말도 안되는 주장을 하는 중고생 성인들이 있습니다만.. 대부분의 각종 싸이트 들에서 그런것을 걸러낼 방법이 없어 상당히 고심중인것으로 알고있고요...심각한 문제입니다.. 
 
 
 
노숙자 (2003-12-17 09:17:34) 
 
가치관 미성숙, 철학 부재, 인격 Below Average, 상업주의 언론 ... 일일이 신경 쓰지 마시구려, 흙탕물 튈까 두렵소 ~ 
 
 
 
배성원 (2003-12-17 09:23:19) 
 
해외파병활동중 전사한 사병이나 장교는 거의 예외없이 국립묘지에 묻히죠... 돌맞을지 모르지만 기실은 그들이 더 현실적인 이유때문에 파병부대에 지원합니다. 수당이 많거나 진급이 빨라지죠. 그렇다고 누구하나 그런 이유를 대놓고 이야기하지 못합니다. 총알이 스치는 전장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위험을 감수한다는 엄연한 현실이 그들앞에 놓여있기 때문이지요. 문제는 고 전재규 대원의 경우와 이 경우를 혼동하는 겁니다. 한쪽에서는 의식적으로 '이익'에 관한 부분만 부각시키죠. 이공계 학생 나부랭이가 국립묘지에 묻히는것을 용납할수없기 때문입니다. 왜 용납할수없는가.... 
 
 
 
배성원 (2003-12-17 09:29:28) 
 
극지근무라는 위험을 감수하고 그가 무엇을 얻어내려고 했는가... 물론 돈도 포함됩니다. 그렇지만 파병군인이 돈보고 지원했다고 누가 이야기합니까? 크게는 세계평화에, 작게는 조국의 위상을 높이는 거지요. 세세하게 조국이 그 활동으로 얻게되는 경제적, 현실적인 이득도 일부러 언급안합니다. 그러나 이공계 학생 나부랭이가 장차 조국의 위상제고와 인류번영에 이바지할 극지연구중, 그것도 동료를 구하려는 구조활동중 사망해도 오로지 개인의 학위나 돈보고 가서 죽은 경우로 전락합니다. 제가 보기에 본질적으로 동일한 사건에 대해 이렇게 다른 시각이 나타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배성원 (2003-12-17 09:31:56) 
 
바로 그 해답이 이 모임의 화두요.... 한국의 현실입니다. 이렇게 써 놓으니 또 비관적이라고 하실분 계실텐데... 절차탁마 하시고 와신상담하시라고 썼으니 오해는 마시기를...... 
 
 
 
샌달한짝 (2003-12-17 09:57:07) 
 
언제나 배성원님 말씀은 critical해서.... 
 
 
 
수험생 (2003-12-17 14:49:37) 
 
좀 더 속을 긁어볼까요? '주장을 뒷받침하는 바가 별로 명확치 않군. 개인연구 아니면 국가가 강제로 떠맡겼단말야?? 너 아니어도 하고싶어 안달하고 줄을 선 사람 많은데?? 하기싫어?? 싫음 하지말지 그게 뭐하는짓이냐??" --> 실제로 주변인물 에게 들었습니다. 철저한 이기심이랄까.. 
 
 
 
보라탱이 (2003-12-17 15:20:36) 
 
엄밀히 말하면, 전대원을 국립묘지에 안장시킨다는건 무리가있죠. 왜?! 만일, 그렇게 된다면, 과거,현재,미래에 국립묘지로 갈 수백명의 잘나가는 이공계 연구진들이 있죠. 그들을 묻기엔, 묘지자체가 적겠죠. ^^; 
 
 
 
배성원 (2003-12-17 15:35:18) 
 
소위 '잘나간다'고 국립묘지에 안장되는것이 아닙니다. 착오가 있으시군요. 
 
 
 
팻송 (2003-12-17 16:25:05) 
 
오랜만에 들어와서 좋은 글 읽고 갑니다. 오마이뉴스를 보니 보건복지부에서 의사자로 결정했다고 하는군요. 
 
 
 
팻송 (2003-12-17 16:25:32) 
 
여기 http://www.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menu=c10100&no=144001&rel_no=1 
 
 
 
익명좋아 (2003-12-18 01:31:10) 
 
정치판을 보면 공멸공사로 가는 한국 사회다라는 생각도 듭니다.그 영향력이 이공계 안까지 이미 침투하지 않았나 염려됩니다. 
 
 
 
기쁨이 (2004-01-26 14:00:10) 
 
그런데 전재규 대원은 사실 해양연구원의 정식 연구원이 아니라서 그런지도 모릅니다. 1년 임시계약식이라고 들었습니다. 월동대원을 1년간 하고는 다시 학교로 돌아가야 한다고 그러더군요. 공무원으로 치면 일용(잡급)직이라고나 할까요???? 아마도 그래서 국립묘지에 안장을 시키네마네 논란이 있나 봅니다. 
 
 
 
기쁨이 (2004-01-26 14:02:12) 
 
극지에서 죽었다뿐이지 사실 그렇게 따지면 정부출연연구소나 국가연구소에서 죽어나가는 과학기술인들 부지기수입니다. 그 사람들 다 묻어줘야해요. 앗쌀하게 거시기 해불자. 
 
 
 
기쁨이 (2004-01-26 14:04:21) 
 
요즘 돌연사(과로사) 하는 과학기술인들이 그렇게 많다고 하더군요. 의자에 앉아서 그대로 죽은 사람,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줄서서 기다리다가 쓰러져 죽은 사람, 야간연구작업 하다가 책상에 엎드려자다 그대로 죽은 사람,,,,,, 

  • 관망이 ()

      사실 전재규 대원의 경우 본인의 뜻(연구열정)이 숭고했다손 치더라도 해양연구원 내에서 전재규 대원과 같은 신분을 가진 사람을 크게 쳐주는 분위기는 절대로 없습니다.
    말그대로 1년 임시계약직일 뿐이지요.
    만약 그렇게 딴 세상으로 가지않았더라면 정부인사들이 조문을 오고 그런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물론 극지연구 관련 연구비 증액과 관심증폭도 없었을 것이구요.
    사회적으로 크게 이슈화되니까 서로 얼굴 내밀고 조문하고 성금 전달한다고 하는 꼴들이 정말 가관이더군요. 그 사건 이후로 해양연구원에 연구비 많이 증액됐지요. 쇄빙선을 만들어주는 것부터 시작해서......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부출연연구소의 임시계약직(석박사 연구생, 수료 후 연수생, 학위 후 연수생 등)도 전재규 대원과 똑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단지 극지에 가서 근무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만 다를 뿐......

  • 관망이 ()

      어쩌면 현재 이런 임시계약직들이 근무하고 있는 현장이 극지일 수도 있겠지요.
    여러분!
    전재규 대원같은 경우가 우리 주변에서는 전혀 없는 일처럼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같은 과학기술인으로서,
    전재규 대원의 일을 애도하기 전에,
    우리 주변에서 전재규 대원같은 사람들이 얼마나 애절한 삶을 살고있는지를 먼저 살펴야 하지 않을까요?
    다시는 전재규 대원같은 경우가 발생하지 않도록........

  • 지지지 ()

      정부인사라는 분들은 조문만 오면 다인가요.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려고 해줘야죠. 조문오면 다인 줄 아는 윗분들 맘에 안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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