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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과학도가 방황한다 - 교수를 꿈꾸는 젊은이들 3 [04.07.19/과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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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g 작성일2004-07-21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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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실업 탈출구가 안보인다
인재은행- 비정규직 양산 부작용

이공계 기피현상을 부추기는 원인 중의 하나는 공부를 마치고도 갈 곳이 없다는 현실적인 문제일 것이다. 90년대 들어 대학원 정원을 과학적 산출 근거 없이 무한정 늘리다 보니 고학력자들이 급증했고 이제는 국내와 해외를 막론하고 박사과정을 마치고도 갈 곳이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박사인력 실업난의 직접적인 원인은 물론 기업과 정부출연연구소 그리고 대학의 채용기피다. 기업체 입장에서는 하는 일은 석사급 인력들과 다를 바 없으면서 더 높은 직위와 급여를 지급해야 하는 박사급 인력의 채용을 기피하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 같은 인식이 곧 우리 기업의 연구개발 역량과 경쟁력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정부출연연구소 역시 박사를 기피하기는 마찬가지. 정부출연연구소가 본연의 성격에 부합하려면 원천기술개발과 기초연구를 수행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다수의 우수한 박사급 연구원들이 필요하다. 그러나 구조조정이라는 명목 하에 도입된 PBS제도로 기본인건비도 충당하기 힘든 연구소 형편으로는 박사급 인력을 대거 채용하기가 곤란한 실정이다.

박사들의 주 수요처인 대학들도 재정난 등을 이유로 전임교원 1인당 학생수가 중고등학교의 학급당 인원수를 초과하는 열악한 교육여건에도 불구하고 전임교원 충원을 꺼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상당수의 신진 박사인력들이 해외에서 일자리를 구하거나 국내 대학과 연구소에 비정규직 연구인력으로 고용되어 불안한 신분과 저임금으로 고통받고 있다.
이들이 겪는 공통적인 어려움은 통상 1~2년의 짧은 계약기간으로 인한 신분상 불안정, 낮은 보수, 정규직 연구원 또는 교원과의 각종 처우상 차별 등이다. 그 결과 박사과정을 갓 마친 상태에서 가장 활발한 연구활동을 해야 할 인재들이 구직활동이나 생계유지를 위한 부업 등에 시간을 빼앗겨 연구생산성을 크게 저하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참여정부에 들어와서 연구인력 미취업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제시된 이른바 인재은행(인력저수조)제도 역시 지금의 이공계 박사 실업과 연구원 비정규직화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 정부가 생각하고 있는 인력저수조는 정부출연연구소가 미취업 석박사 인력을 신진과학자 연구지원사업 등으로 임시 고용했다가 일정기간 후 민간기업으로 진출시킴으로써 궁극적으로 민간부문에서 고급 인력의 고용을 늘려가려는 계획이다. 중소기업 연구소들이 박사급 고급 인력을 채용하면 인건비를 지원하는 인센티브 제도를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연구개발을 통해 제품의 성능과 품질로 승부하려는 마인드가 부족한 상황에서 기업이 박사급 연구인력을 기피하는 현상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 없이는 오히려 정부의 재정지원으로 정부출연연구소의 비정규직 연구인력 채용을 고착화하는 일종의 고급인력 공공근로제도로 잘못 운영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지금은 과거처럼 기업의 경영행태에 대해 정부가 개입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그러므로 장기적으로는 인력저수조운영과 인센티브 지급 등의 방법보다 정부차원에서 박사인력을 정규직으로 고용하고 민간기업에 대한 무료 또는 저가 기술지원을 중단, 민간부문과 경쟁함으로써 기업이 박사인력을 고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 더 유용한 방안이 될 것이다.
지금 논의되고 있는 고시제도 폐지 또는 개혁과 맞물려 고위직 공무원 채용시 박사급 전문인력을 대거 확충하는 것 역시 실업문제 해결은 물론 공무원의 전문성 확보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정부출연연구소에서도 박사급 연구인력을 정규직으로 대거 채용, 이들이 연구 실무를 담당할 수 있도록 유인책을 마련해야 한다. 현재의 정부출연연구소 구조는 한참 연구를 수행할 연령대의 박사급 연구원들이 연구관리직화 하고 실무는 석사급에서 수행하는 선진국과는 상당히 다른 기형적인 형태를 보인다.

이러한 정부출연연구소 구조조정을 조직축소, 인력감축, 급여삭감 차원에서 접근하기보다는 박사급 연구인력을 다수 확충하여 기초기반기술과 원천기술 개발연구실무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도록 함으로써 연구생산성과 기술 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박사들이 진출하는 또 다른 통로로서의 대학은 우선 국립대 교수 1인당 학생수를 선진국 수준은 못되더라도 적어도 1:10 정도 수준으로 개선해야 한다.

박사실업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온정주의에 흐르고 만민평등 나눠먹기식이 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 학교별 특성이나 연구여건 그리고 수준차를 고려하지 않은 채 거의 모든 대학에 박사과정을 설치하여 학위자를 ‘양산’하고 있고, 학위 취득과 수여과정에 대한 철저한 검증장치가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지금 배출되는 박사들이 모두 우수 고급인력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박사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든 박사들이 다 일자리를 얻도록 하겠다는 과욕으로 접근하면 함량미달 인력이 연구직과 교직에 진출하여 연구의 수준을 하락시키고 이들을 고용한 기관과 기업과 대학에서 박사들에 대한 불신감을 확산시켜 궁극적으로는 다시 박사기피현상을 불러올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업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 수립에 반드시 박사들의 업적과 실력을 공정하게 평가할 장치를 마련하는 것을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

한국과학기술인연합 이성원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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