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메이커/벤처로 해외로, 변호사로

글쓴이
퍼오미  ()
등록일
2002-03-05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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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벤처로 해외로, 연구현장 떠나는 사람들
-상당수 연구원들 미래 불안·정체성 부재 등으로 새로운 삶 도전-
지방 ㄷ대학 수학과 교수 고모씨(37). 그는 조만간 교수직을 접고 미국 유학을 떠날 생각이다. 4년 전 한국과학기술원(KAIST)을 떠나 어렵사리 구한 자리지만 전공을 살린 연구에 전념할 수 없는 데다 더 늦기 전에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어서다.

“4, 5년 정도 미국에 머물면서 컴퓨터 관련 분야를 공부할 생각입 니다. 미국에 있는 선배의 조언이 있었고 때마침 그곳에서 공부할 여건도 마련돼 고심 끝에 이 자리를 떠나기로 했습니다. 좀더 지나 봐야겠지만 지금으로선 국내 연구기관에 돌아올 생각은 없습니다.”

KAIST 시절을 돌이켜보면 학위 따거나 당장의 논문을 내는 데 급 급했지 학자로서 기초학문을 연구한다는 보람은 거의 느낄 수 없었 다. 늘 ‘어떻게 하면 학교로 빠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앞섰고 돈에 쪼들려 주말이면 서울에서 중·고생 과외교습으로 상당한 시간 을 보냈으니 그에겐 연구소 생활이 결코 달갑지 않았다고 한다. 고 씨는 지금도 연구소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한 후배들 가운데 상당수가 유학을 준비하고 있다고 전한다.

▲“연구소, 평생직장이라고 생각 안 해”

암호 인증 전문업체 비씨큐어 기술연구소 박상준 소장(43)은 한국전 자통신연구소(ETRI)를 떠나 2년 전 벤처에 둥지를 틀었다.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한 뒤 연구소 생활을 15년 정도 했지요. 예 전보다 처우가 많이 달라져 삶의 질이 낮다고 생각진 않았어요. 물 론 연구소에 들어갈 무렵 ‘이곳이 평생직장’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만 큰 불만도 없었죠. 하지만 IMF 환란 당시 거센 구조 조정을 거치면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생겨 고생을 하더라도 능력 있을 때 도전을 해보자는 판단을 했습니다.”

박 소장에 따르면 예전엔 전체 연구원의 5~10%에 달하는 인력이 민 간연구소나 학교 등지로 빠져나갔지만 1998년이후 4명 중 1명꼴로 연구소를 떠나고 있다고 한다. 이들 대부분은 벤처기업 연구소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그는 전한다. 실제로 대다수 기술 벤처기업에서 정 부 출연 연구소 출신 학자를 접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정보보호업체 데이타게이트 보안연구소 이준호 대리(33)는 연구의 아이덴티티가 희석돼가고 있다는 점을 꼽 는다.

“저 역시 물리학을 전공했지만 학교나 정부 연구소에서 리서치, 즉 연구를 한다고 했을 때 일단 ‘경쟁상대가 누군가’라는 걸 세우기 힘든 면이 있습니다. 제품을 개발해 상품화해야 하는 기업과 달리 연구논문으로 승부한다는 게 아주 막연해 보이죠. 기초학문과 연계 가 활발한 실리콘 밸리 수준이라면 연구활동 그 자체가 해볼 만한 것이지만 말이죠.”

▲“정치논리에 이합집산하는 것 보고 좌절”

콘텐츠 기술개발업체 야인소프트의 정철흠 사장은 상당수 연구원들 이 연구라는 일을 통해 평가와 기회를 얻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기업의 경우 ‘어떻게 일을 했는가’라는 걸 통해 다양한 평가와 책임이 주어지지만 정부 연구소는 이런 면에서 처진다고 봐야죠. 연 구소의 존재가치를 ‘하고 싶은 것’과 ‘남을 도와주는 것’으로 정의한다면 정부 관련 연구소에서 이를 찾기란 어렵다는 것이죠. 다 양한 분야에서 연구의 비전과 연구원의 역할이 맞물려 가야 하는데 그게 간단치 않다는 겁니다.”

아울러 그는 연구원들이 선망의 대상이던 연구원장이 정치논리에 끌 려다니고 그에 따라 연구소가 이합집산되는 형국을 자주 접하면서 좌절을 느낀다고 한다. ‘기관장이 바뀌면 정권이 바뀌는 것과 같 다’는 우스갯소리가 이를 잘 말해준다는 것이다. 정 사장은 이런 가운데 최근 몇 년 새 우리 사회에 벤처문화가 형성하면서 벤처가 연구원들의 돌파구가 되고 있다고 전한다. 요즘은 벤처침체로 좀 뜸 하지만 상황이 호전되길 기다리며 기회를 엿보는 연구인력이 많다는 것. 박상준 소장 역시 벤처가 엔지니어들에게 좋은 기회가 될 수 있 다고 말한다.

“대학이 IT 관련 학과를 늘리면서 이곳의 문을 두드리는 이들이 많지만 이젠 포화상태에 이르렀어요. 벤처가 지금 어렵지만 잘만하 면 예전엔 생각도 못한 성공의 틀을 세울 수 있어 하나의 기회를 제 공한다고 봅니다. 연구소에서 프로젝트 매니저를 비롯해 거의 모든 연구원이 한 해 살림을 필요한 프로젝트 따는 데 매달린 시절을 생 각해보면 저는 지금이 성취감이 더 큽니다.”

〈박길명 기자 myung@kyunghyang.com


[과학자 꿈 접고 법조계 입문한 공석환 변호사]

-“학생들 시야 넓힐 수 있는 이공계 정책 절실

“공석환 변호사(43)는 연구현장을 떠나 새로운 삶을 펼친 학자 가운데 원조로 꼽히는 인물이다. 1995년 사법고시에 합격한 그는 지금 특허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공 변호사는 1982년 서울 대 물리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버클리 대학에서 생물물리학을 전공,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시카고 대학 생물학 분야 연구원을 거쳐 모두 8년 10개월간 기초 분야 연구에 몰두했다.

“1978년 대학에 입학할 당시와 마찬가지로 졸업할 무렵 역시 시대 상황이 좋지 않았죠. 또한 세계적으로 환경에 대한 관심이 움트고 있어 생물물리학을 공부하기로 하고 유학을 떠났습니다. 1991년 귀 국할 때까지 이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쌓는 데 애를 많이 썼죠. 좀 더 머물고 싶었지만 당시 미국 경기가 최저점에 달해 돌아오게 됐습 니다.”

이런 까닭에 한국에 돌아와 전공을 살리고 생물학 연구를 본격화하 겠다는 생각으로 적지 않은 대학에 문을 두드렸다고 한다. 하지만 서울시내 대학에서 그를 찾는 자리는 없었다.

“물론 지방대에선 자리가 있었지만 연구 여건이 그리 좋은 편이 아 니었어요. 대덕 단지 내 화학연구소 등 정부 출연 연구소도 염두에 뒀지만 당시 이곳 분위기는 연구원들이 처우에 불만이 많던 시절이 라 곧 생각을 접었습니다.”

그래서 고심 끝에 새로운 도전을 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사법고 시가 바로 그의 도전 대상이었다.

“물리학에서 생물학으로 바꿀 때도 그랬지만 생소한 분야를 다시 공부하는 게 체질에 맞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전혀 접하지 않았던 법학·경제학 공부가 나름대로 재미있었지요.”

공 변호사는 법조계에 있지만 현재 업무가 자신의 전공과 전혀 무관 한 건 아니라고 말한다. 전공인 생물학이 최근 빈발하고 있는 환경 침해 소송을 처리하는 데 빛을 발했기 때문이다. 생명공학 벤처와 관련해서도 특허 전문 변호사로 일하는 데 많은 보탬이 되고 있다고 그는 전한다. 공 변호사는 최근 이공계 기피 현상을 두고 학생들이 보다 시야를 넓힐 수 있는 교육과 정부의 정책적 배려가 강화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공계 인력의 사기를 높일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보다 구체적으 로 마련돼야 한다고 봅니다. 미국처럼 연구소를 나오더라도 국가적 차원에서 그 성과를 효율적으로 연결하고 넓힐 수 있는 지원 말입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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