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펌] 인문학의 위기에 대한 다른 견해
- 글쓴이
- 바루흐
- 등록일
- 2003-08-27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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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글의 내용중에서 지엽적인 부분이지만 생각해 볼 만해서 퍼왔습니다. 출처는 매일 경제입니다.
앎을 즐기는 것도 바람직하지만 그보다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현실인식'인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나 확실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아랫글은 그런 의도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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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이라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내게도 '문학만이 유일한 구원'이라는 확고한 신념에 사로잡혀 있던 시절이 있었다.
문학에 대한 순정을 지키기 위해 많은 것들에 대해 무관심했고 문학을 숭배하기 위해 더 많은 것들을 부정했던 시절이었다.
사랑의 방식이 무모했던 탓일까, 아무튼 문학에 대한 나의 사랑은 그리 행복하지 못했다.
한동안 열병이 좌절을 낳고 좌절이 허무를 낳던 고통스런 시간들이 지나고, 열병도 견딜 만한 지병이 되어 있을 무렵 문득 깨달은 바가 있다.
문학과 나 사이의 불행은 나의 오만과 질투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의심했던 것도 나이고 배신했던 것도 나이며 욕설을 퍼부었던 것 또한 나였다.
십년을 출판기획자로 일하면서 여러번 독자와 세태를 탓했던 적이 있다.
내심 기대했던 양서의 반응이 영 마뜩찮을 때 말이다.
그러나 앞의 경험을 통해 곧 어떤 경우에도 독자는 무죄라는 인식에 도달하게 되었다 . 독자는 언제든 책방으로 달려가 쌈짓돈을 털어 줄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이다.
문제는 책에 만원의 환금가치도 부여하지 못하는 저자와 기획자에게 있다.
인문학이 위기라고들 한다.
신물 나게 들어왔을 그 데이터들은 생략하기 로 하고 결론부터 말해보자. 그게 인문학자들의 위기지 어떻게 인문학의 위기인가? 삶의 현장으로 접근하지 못하는 강단의 위기이고, 세상이 변해도 강의노트가 바뀌지 않는 학자들의 위기이고,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 맹종과 지적 모험보다 인간관계에 연연하는 학풍의 위기지, 그게 왜 학문의 위기인가? 낡은 강의노트와 분필 한 자루, 반증의 위험을 피해가는 추상적인 언어로 두 시간을 채우는 강의에 학생들은 더 이상 인내심을 발휘하지 않는 다.
당연히 강의실은 비고 경쟁력과 자생력을 상실한 강의는 존폐의 기로에 서기 마련이다.
이런 현상을 인문학의 위기라고 하는 것에서 나는 원인을 세태로 돌리려는 혐의를 읽는다.
스스로 문학의 죽음을 말하는 문인이나 학문의 위기를 말하는 학자를 나는 신뢰할 수 없다.
학문 자체와 세태는 잘못이 없다.
<정해종 시인.터치 아프리카 대표>
< Copyright ⓒ 매일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앎을 즐기는 것도 바람직하지만 그보다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현실인식'인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나 확실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아랫글은 그런 의도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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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이라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내게도 '문학만이 유일한 구원'이라는 확고한 신념에 사로잡혀 있던 시절이 있었다.
문학에 대한 순정을 지키기 위해 많은 것들에 대해 무관심했고 문학을 숭배하기 위해 더 많은 것들을 부정했던 시절이었다.
사랑의 방식이 무모했던 탓일까, 아무튼 문학에 대한 나의 사랑은 그리 행복하지 못했다.
한동안 열병이 좌절을 낳고 좌절이 허무를 낳던 고통스런 시간들이 지나고, 열병도 견딜 만한 지병이 되어 있을 무렵 문득 깨달은 바가 있다.
문학과 나 사이의 불행은 나의 오만과 질투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의심했던 것도 나이고 배신했던 것도 나이며 욕설을 퍼부었던 것 또한 나였다.
십년을 출판기획자로 일하면서 여러번 독자와 세태를 탓했던 적이 있다.
내심 기대했던 양서의 반응이 영 마뜩찮을 때 말이다.
그러나 앞의 경험을 통해 곧 어떤 경우에도 독자는 무죄라는 인식에 도달하게 되었다 . 독자는 언제든 책방으로 달려가 쌈짓돈을 털어 줄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이다.
문제는 책에 만원의 환금가치도 부여하지 못하는 저자와 기획자에게 있다.
인문학이 위기라고들 한다.
신물 나게 들어왔을 그 데이터들은 생략하기 로 하고 결론부터 말해보자. 그게 인문학자들의 위기지 어떻게 인문학의 위기인가? 삶의 현장으로 접근하지 못하는 강단의 위기이고, 세상이 변해도 강의노트가 바뀌지 않는 학자들의 위기이고,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 맹종과 지적 모험보다 인간관계에 연연하는 학풍의 위기지, 그게 왜 학문의 위기인가? 낡은 강의노트와 분필 한 자루, 반증의 위험을 피해가는 추상적인 언어로 두 시간을 채우는 강의에 학생들은 더 이상 인내심을 발휘하지 않는 다.
당연히 강의실은 비고 경쟁력과 자생력을 상실한 강의는 존폐의 기로에 서기 마련이다.
이런 현상을 인문학의 위기라고 하는 것에서 나는 원인을 세태로 돌리려는 혐의를 읽는다.
스스로 문학의 죽음을 말하는 문인이나 학문의 위기를 말하는 학자를 나는 신뢰할 수 없다.
학문 자체와 세태는 잘못이 없다.
<정해종 시인.터치 아프리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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