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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중앙당에 '충고 편지' 쓴 연구팀 전원 숙청 - 논문 "中 산업폐기물 대책 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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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en 작성일2010-04-26 0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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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당에 '충고 편지' 쓴 연구팀 전원 숙청
[소식통] 북 과학계 발칵 뒤집혀…논문 "中 산업폐기물 대책 촉구"
http://www.dailynk.com/korean/read.php?cataId=nk04500&num=78677


김정일은 중국의 개혁개방을 뒤따를 수 있을 것인가?
http://sonnet.egloos.com/4324297#n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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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농업과학원 연구원으로 지내다 숙청되어 탈북한 이민복은 1980년대 중반의 '박철 사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전한다.

1985년 당시 과학원 지질학연구소 실장이었던 박철은 식량난 타개책으로서 ‘농장포전 개인책임관리제’라는 논문을 작성하여 중앙당에 제출하였다. 그 내용인 즉 간부를 포함한 전농장원의 개개인에게 논밭을 맡겨서 생산관리를 행한다는 것이다. 이 제안은 중앙당의 과학담당비서 김환, 농업담당비서 서관히, 정무원총리 강성산 등을 비롯하여 북한 지도부 내에서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군급 이상 농업간부들의 토론에서도 절대적 지지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이듬해 박철의 제안으로 시작된 일련의 움직임은 김일성의 주체 농법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되어 혹독한 비판을 받고 주요 관련인사가 처분되거나 사상투쟁의 대상이 되어 사라진다. 이후 누구도 감히 자영농 지향의 농업개혁을 건의하지 못하였다.
...
이 연구소는 환경오염 문제를 조사하고 대책을 세울 목적으로 설립된 연구기관이었다. 이들은 과거 이 대학에서 근무한 바 있는 최태복 노동당 교육과학 및 국제담당비서가 방문하자 그 동안의 연구조사 논문과 세포당원 명의의 편지를 직접 전달했다. 그 내용인 즉 '사실상 우리나라(북한)가 중국의 산업물 쓰레기장으로 변해가고 있으며' '평양시 수돗물조차도 먹는 물로는 이용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게 오염'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최태복은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장군님께 직접 전달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였다. 이 편지를 전달받은 노동당 중앙위는 10여 일 후 '토질조사 연구소'를 해산하고 연구소 당세포에 대한 노동당 조직지도부 검열을 진행했다. 편지를 올린 간부들과 주동자들은 함경남도 보위부에 체포되었다. 이들에게 씌워진 죄목은 종파행위였다.

이 사건은 북한이라는 사회에서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 최고지도부에 건의를 한다는 행위가 여전히 인생을 걸어야 하는 일임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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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많이 보던 모습입니다.

댓글 5

백면서생님의 댓글

백면서생

  오호 dailynk기사를 다 인용하시고, 웬일이세요?

지지지님의 댓글

지지지

  우리나라와 북한은 통하는 듯...;;

통나무님의 댓글

통나무

  어느 댓글에 이런게 있더군요.
선거때마다 북풍을 북이 일으키는 이유는
남한 선거에 개입을 하기 위해서인데
어느 분들의 선거에 도움이 되고, 권력을 잡아야 나라가 개판이 되기때문이라고.

서시님의 댓글

서시

  우리나라 이야기인줄 알았어요.

남영우님의 댓글

남영우

  북한에서 과학자를 비롯한 전문가가 정치적 탄압을 받아 망명하는 것은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제가 아는 이야기로, 북한의 농업생산 전문가가 90년대 초에 한국에 귀순한 일이 있습니다. 이유가 뭐였냐 하면, 식량생산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제안한 농법이 김일성의 교시 (산비탈을 개간해서 농작물 생산을 늘리는 방법, 60년대부터 시행)과 어긋난다고 해서,

끝내는 사상범으로 몰아서 쫒아내려 했기 때문에 귀순하게 되었다고 고백한 내용이었습니다. 자신은 식량문제를 연구했고, 심지어 공산주의에 대해 비판을 한 적도 없었지만, 바로 식량생산의 개선법을 제안하고 설득하려고 했기 때문에 북한을 떠나 망명할 수 밖에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그 당시 글에서 예견한 것이 북한의 식량부족분과 부족분만큼의 공급이 없으면 대량의 굶어죽는 사태 발생을 예견한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 예측은 몇 년뒤에 현실이 되었고요. 그 글을 읽은게 95년도였으니까 나중에(북한의 식량난이 알려진 후) 속으로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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