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과 과학기술 유감

글쓴이
노숙자
등록일
2005-08-15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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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이순신이 끝나 갑니다.
매주말 재미있게 시청했지만, 아쉬움이 남는군요.

드라마에서는 주로 정치.술수적인 면과 인간관계가 배경이나 발단으로 등장하고, 탁월한 영웅상과 무한한 충성심, 시의적절한 전략이나 진법의 채택같은 면이 많이 다뤄지는거 같습니다. 이런 주제들을 통해서 이순신 장군의 위대함이 극적으로 표출되는데는 이의가 없습니다만, 과학기술에 대해서는 별 교훈이나 리뷰가 없는거 같군요. 제가 보기에 이순신 장군의 위대함 중의 한가지로 빼 놓을 수 없는 것은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왜군과의 수전은 주로 선상 포격전으로 그려져 있는데, 400년전에 이미 300미터 거리의 해상 포격이 가능했다면, 그 자체로 상당히 주목받을 만한 과학기술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포탄의 제원이라든지 화약의 제조법, 전선 건조법, 머 이런거를 이순신 장군같은 분이 혼자만 알려고 하지는 않았을 거 같구요 ~

군령이 적용되는 예하의 담당자가 혼자만 알게 내 버려두지도 않았을거 같은데 말이죠. 왜 그런 기록이나 기술들은 모두 사라지고 말았을까 궁금합니다. 흔히 듣는 얘기로 기술자들이 고려 청자 제조법을 자식에게만 몰래 전수하는 치졸함 때문에, 고려 청자의 제조법이 끊겼다는 그런 경우에 해당될까요? 이순신 장군 같이 충성스럽고 치밀한 분이?

거북선같은 돌격선과 왜군을 압도하는 함포에 대해서는 상세한 기록을 직접 작성, 보관케 하거나, 아니면 부하에게 지시, 문서화했을거 같다는 생각입니다. 전쟁중에 누가 언제 죽을지 모르는 마당에 한 사람만 그 비법을 알고 있었다면, 너무 무모한 일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이상한 점은, 그 이후 조선의 전선이나 함포, 항해술이 꾸준히 개량되었다는 글을 본적이 없습니다. 어떤 역사 드라마를 봐도 과학 기술이 어떻게 발전했는지, 어떻게 실패했는지 일언반구 건드리지 않는 점이 참 아쉽습니다. 아마 그 이후 300년간 그 기술을 잘 보존, 발전만 시켰어도, 18세기 말쯤에는 우리나라도 식민지를 개척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럼 왜, 왜군을 궤멸시키고 명군도 감탄한 그 과학기술은 중단된 것일까요? 누군가에 의해 중지됐을 수도 있다는 추측이 들지 않습니까? 그런 사람이 나타 나면 역사적으로 심판을 받겠지만, 그러나 중지시킨 사람은 끝내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조직을 해산하고 녹봉을 안 주면 영웅이든 과학기술이든 끝나는 거지만, 그건 인사행위일 뿐이지 과학기술과 관계있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철저하게 붓 뒤에 숨어서 남을 맘대로 주무르는게 능력으로 치부되는 세계도 있죠.

이순신이 너무 탁월해서 제거했다(사라졌다?) 하더라도, 과학기술의 힘을 아는 위정자라면 그 밑의 과학기술자들에게 계속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줬을겁니다. 전쟁이 닥치고 나면, 총 들고 나갈 군대도 모으기 바쁜 판에 연구개발할 시간이 있겠습니까? 무기의 연구개발은 평화시에 하는거 아니겠습니까 ~ 그러나 조선은 그 후 어떻게 됐습니까? 과학기술이 발전했나요? 19세기 서양 과학기술을 소화한 일본 앞에, 감히 고개도 못 들게됐죠.

자, 과학기술 좀 아는 영웅은 겁이 나니까 밟아 버리고, 자신은 식견이 없으니 과학기술 중지시키고  ~
이걸 우리나라 위정자의 초상이라고 인정해야 하나요?


  • 김선영 ()

      야사쪽에서는 모반의 위험이 있다고 해서 무기제조기법은 기밀에 속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무기개발이나 여러가지 화약을 다루는 곳은 조정이 정한 곳에서만 관리감독관 하에서만 이루어졌고 제약이 많았다고 합니다.

    이 제약은 중앙군이 지방군을 누를정도로 강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중앙군이 강하던가 아니면 지방군을 약화시켜야 했는데, 후자를 택했던 조선은 지방군을 월등하게 약화시켜서 상대적으로 중앙군이 강해보이게 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결국 이 방법으로 전체 군의 약화를 초래했죠.

    협소한 시야로 자국에서의 안정만 생각했지, 외세의 침입을 생각못한 안일한 시각이 결국 나라를 망하게 했던거 같습니다.

  • 노숙자 ()

      김선영님/ 그럼 결국 거북선의 제조법이나 총포 화약 제조법을 없애 버린 것은 조정이라고 봐야 되나요 ?

  • 김선영 ()

      글쎄요? 없앴다는 표현보다 비밀유지로 하다가 사라진게 되겠죠. 그리고 세종대왕의 업적이 한글때문에 다른 업적이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세종대왕이 군사무기에 관심이 많아서 그 때 대포기술이 굉장히 발전했습니다. 그 후에 쿠데타나 몇몇 사화를 거치면서 군사기술이 상당히 위축되었죠.

    광해군은 군사기술이나 무인을 등용하려고 했지만, 결국 실각하는 바람에 무관이 별로 대접받지 못하게 되었고, 광해군 이후로 조선의 군사력은 눈에 띄게 약해졌다고 합니다.

    지금 방영중인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조선수군이 좀 허접하게 표현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정병중에 정병들이 많았죠. 그리고 각종 무기제조는 현장에서 실제로 하지 않았는데, 좀 무리하게 그린면도 있습니다.

  • cantab ()

      정묘호란과 병자호란때 한성 북쪽이 제대로 방어되지 못하고 순식간에 뚫린걸 보면 왜란을 겪고도 위정자들은 정신을 못차린듯 합니다. 왜란후 훈련도감에서 총병과 창병을 훈련했지만 그나마 이들은 중앙군이고 기록에 보면 지방군인 속오군 훈련은 조총을 구경이나 해보면 다행일 정도로 엉망이었다 하더군요. 후기 조선군 머스킷은 아직 화승총의 형태로 왜란당시의 것보다 기술적으로 진보한 것이 없었으나 유럽에서는 17세기 초반에 부싯돌로 격발하는 수발총이 등장했고 중반에 총검이 발명되어 창병대가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조선에서는 19세기 말이 되도록 화승총을 사용하는 총병과 창병을 혼용하고 세종대의 화포인 대완구가 여전히 사용될 정도로 (명나라을 통해 들어온 서양식 화포인 불랑기, 홍이포 등도 있었으나 17세기 수준이죠) 군사기술이 낙후되어 있었습니다. 왜란후 오랜시간이 지나는 동안 외국문물의 유입도 있었을 것이고 자생적으로도 뭔가 기술적 개량등이 가해졌을법도 한데 19세기 말이 되도록 유럽의 17세기 초반의 군사기술 수준에서 정체된 것은 미스테리에 가깝습니다. 흥선대원군의 국방강화 정책도 기술적 발달을 수반하지는 못했습니다. 아마도 왜란과 호란을 겪으면서 조선의 지배층 의식이 극단적으로 폐쇄화 하면서 사회경제과학기술 전반에 결쳐 발전을 도외시한 결과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때나 지금이나 지도층의 의식구조는 별 달라진게 없어보이니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 긍정이 ()

      일종의 지식경영의 부족이 아닐까 하는데요? 고려청자의 제조비술은 지금 전해집니까? 조선백자는요? 각종 건축술은요? 못을 쓰지 않는 한국의 건축술은 역시 세계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전해지는것 이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쯤 더 발전해서 아무도 따라오지 못하는 강자가되야 하는데 지금 도자기의 세계적인 기술은 절대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라고 알고 있습니다. 과학기술과 관련된 문화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 김영철 ()

      인조때로 알고있습니다. 화포,조총,화약을 한곳에서 다루던 조직이 있었는데..(이름은 가물~)인조반정후 광해군 쪽에 충성하던 조직들을 폐쇄하면서 폐쇄된걸로 압니다. 인조도 대단하죠, 결국 병자호란에서 머리터지도록 절한것도 인조고, 소현세자가 청나라 볼모생활후..북경에서 서구문물을 접하고는 청과 친하고 서구문물을 받아들일것을 주장하자..자신의 장남 임에도 독살 해버렸죠? 이 이후 화약무기는 더이상 발전이 없었던걸로 압니다. 인조때 성리학을 장려하여 이때를 조선후기 성리학의 전성기로 보더군요..유교는 확실히..종합 사기술이란 생각이듭니다. 차라리 후흑학이 솔직하지만, 유교는 못당하죠. 일단 자신을 속이고 남을 속이라하니 참 안속기 어렵죠. 유교의 몇몇 고상한 말에 현혹되어 옹호하는 이도 많죠. 공자가 확실히 인간의 본성을 어느정도 아는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나..논어인거 같은데.. 노자가 공자에게 “ 내가 듣기로 뛰어난 장사치는 가진 것을 깊이 감추어 두어 겉으로 보기에는 마치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듯이 행동하고, 덕이 가득한 군자 또한 그의 겉모습은 늘 어리석고 모자란 듯하다고 한다. 그런데 그대의 모습에는 교만함과 욕심, 훌륭함을 가정하는 태도가 가득하다.” 고 욕하자 공자가 나중에 제자들에게 “새가 날고 물고기가 헤엄치고 짐승이 달린다는 정도는 나도 알고 있다. 달리는 것은 그물을 쳐서 잡고 헤엄치는 것은 낚싯대로 잡고 나는 것은 화살로 잡으면 된다. 그러나 용은 바람과 구름을 타고 하늘에 오른다고 하니 나도 그 실체를 알 수가 없다. 내가 오늘 노담을 만났는데 정말 용과 같은 사람이었다.” 고 하죠..이게 공자와 노자의 무슨 고상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로서 전해지지만..간단히 말해서 노자는 공자에게 "넌 사기꾼이야"했고, 공자는 "이 인간은 사기못치겠네", 라고 한거죠 공자가 어느정도 학식이 있었던것은 사실일지라도 그가 가르친것은 사기술입니다. 사기술도 그 정도면 경지에 다다른 것으로서 배울만한걸까요?

  • 돌아온백수 ()

      뭐 그렇게 대단하게 까지 확대할 필요가 있을런지 모르겠습니다.

    궁극적으로 문명이란 개인을 통제하는 것인데, 당하는 개인의 입장에서는 저항하고 싶은 것이 당연하죠. 따라서 문명이란 것 자체가 통제하려는 개인을 속이는 기능을 가지게 됩니다.

    공자가 강조한 "예"라는 것도 규범을 준수하는 습관을 들이려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구요. 노자의 "무위"야말로 속이지 않는 듯 속이는 절정의 사기라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종교와 문명, 그리고 개인의 자유의 문제는 끝을 헤아리기 어려운 인간의 굴레입니다. 그것과 과학기술 특히  국방안보에 관한 것은 분리해 내서 보는게 더 좋겠죠.

  • 즐거운상상 ()

      윗댓글들을 보면 참 화려한 문구로서 답을 다시는 분들이 많으시군요,

    암튼, 배를 운용하는 기술하나만이라도 제대로 넘어왔어도, 최소한 아시아를 주름잡는 강대국이 되어있을텐데 말입니다.

    안타까울따름입니다.

  • 노숙자 ()

      김영철님/ 저는 논어 맹자를 일회독한 적이 있는데, 그 안에는 사람을 속이려는 구석은 없었습니다. 다만, 끝없는 논리 전개에 빠져드는 면이 있어 사람이 지나치게 유약해 질 수는 있다고 봅니다. 또 해도 해도 끝이 없는 학문 같아서 돈 없는 사람은 가까이 하기 어려웠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

    그런데 이 체계를 통치에 원용하는 사람들의 의도가 문제겠죠. 복잡한 문제 몇개 내 놓고 평생 가르치며 먹고 살려고 드는 사람들 말입니다. 툭하면 그게 아니야 하면서 지적이나 하고...

    돈없고 시간없는 서민들은 지적을 받아도, 자신이 무식한 탓으로 인정하고 넘어가니, 통치자 측에서 보자면 이론이 복잡하고 난해할 수록 가치가 있던거는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아무리 좋은 도구도 강도의 손에 잡히면 흉기가 되는 거겠죠 ~

  • 노숙자 ()

      cantab님/ 오랜 만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지도층의 의식구조는 별 달라진게 없어보이니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 라구요 ~  동감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아직도 과학기술인에게 무슨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과학기술인에게 혁신이나 변화를 요구하지 않습니까?  KBS 프로그램 제목에 "신화창조의 비밀" 어쩌구 하지를 않나... 쯪쯔 ~

    자신에게서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하는 사람은 발전이 없다고 했지요 ~ 위에 선영님 말씀대로 "비밀을 유지하다 사라졌다"면 조정 관료의 문제가 틀림없는데, 적당히 우물거리면서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 상황으로 가는 방식, 우리나라에서는 너무 잘 통하는 거 같습니다.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지 않게 되면, 다음에 또 그런 일이 쉽게 반복된다는 당연한 귀결을 정말 우리 국민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살아야 하는지, 답답합니다.

  • 김영철 ()

      좀 과했네요..인조 생각하다 성리학 생각나니 좋은 소리 안나왔던듯..삼천포로 빠졌던거 같습니다...

  • 최성우 ()

      좋은 문제제기인 듯합니다...
    그런데 임진왜란 시기 조선의 군사과학기술 뿐만 아니라, 세종 조의 과학기술 역시 대단한 것들이었는데 지금은 제대로 원형을 찾아볼 수 없는 것들이 많지요....

    측우기야 간단하니까 지금껏 남아있지만, 장영실이 만든 물시계 '자격루'는 지금은 물통 부위만 남아 있고 나머지는 없습니다...
    '옥루'는 자격루보다 훨씬 정교하고 복잡한 '오토메이션 장치 물시계'인데, 원형을 전혀 찾을 수가 없습니다....  (설계도와 문헌을 보면 비스무레하게 복원할 수도....)

    제가 최근에 관련한 프로젝트 중에 세종 조의 과학기술 유물들을 복원, 전시하는 방안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문화재청에도 과학기술인 출신은 없고 맨 문과 공부한 양반들 뿐일테니 얼마나 관심을 기울일지 모르겠습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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