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최초의 여성수학자 히파티아

글쓴이
최성우
등록일
2003-07-29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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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국내에서 상당히 저명한 원로수학자 한 분이 어느 잡지에 기고한
'여성이 수학을 잘 못하는 이유'에 대한 글이 은근히 여성의 능력을 비하하
는 듯한 의미로 읽혀졌다 하여 내가 아는 여성과학자들이 꽤 분개한 적이
있었다.

일선 학교선생님들이 여학생들의 수학 성적이 대개 남학생들보다 떨어진
다고 얘기하는 것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은 여성들의 (다른 과목은 몰라
도) 수학적 능력이 남성들에게 크게 뒤진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 이유가
남녀의 생물학적 성 차이에 따른 두뇌구조의 차이라는 등의 설명이 있는가
하면, 역사적으로 저명한 수학자들 중 여성은 손에 꼽힐 정도로 드문 것이
단적인 증거 아니냐고 얘기하기도 한다.

이에 반해서, 페미니스트들이나 일부 과학자들은 여성이 수학을 잘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지극히 왜곡된 편견과 사회, 문화적 영향에 의
한 것일 뿐, 원초적 능력의 차이에서 온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특히 생
물학적 차이 운운하는 것은 과학의 이름을 빙자한 남성지배 이데올로기라
고 비판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여성들이 수학으로부터 멀어진 것처럼 보이는 이유가 무엇인
지 단언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일부 과학사가들은 그 근원의 하나로서 인
류 최초의 여성수학자 히파티아((Hypatia; 370?∼415)의 비극적인 생애를
꼽기도 한다.

히파티아의 삶에 대해서는 구체적 기록이 많지 않고 예로부터 구전되어
오는 것들이 많은데, 그녀는 오늘날까지 '가장 아름답고, 가장 순결하고, 가
장 교양 있는 여성'으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히파티아는 370년 경 그리스 알렉산드리아 시대의 수학자 테온(Theon)의
딸로 태어났다. 테온은 그리스 기하학의 완성자인 유클리드(Euclid; BC
330-275)의 기하학 원론(Element)의 주석을 달고 수학을 발전시킨 인물로
유명한데, 또한 프톨레마이오스(Ptolemaios)의 저서인 알마제스트
(Almagest)에 대한 테온의 주석도 잘 알려져 있다.

히타피아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탁월한 수학자가 되었는데, 30대에 알렉
산드리아의 무제이온(종합고등교육기관) 교수로 초빙 받은 그녀는 높은 학
식과 덕망으로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녀의 강의를 듣기 위해 도
시의 상류층과 부자들의 마차가 매일같이 장사진을 이루고 교실은 초만원
이었다고 한다. 히파티아의 저서로 남아있는 것이 없기 때문에 그녀의 수
학적 업적을 제대로 알기는 어렵지만, 유명한 천문학서이자 수학서인 알마
제스트의 주석도 실은 테온의 것이 아니라 딸인 히파티아의 것이라고도 한
다. 또한 디오판토스의 '산수학'과 아폴로니우스의 '원뿔곡선론'의 주석도
달았다고 전해진다. 히파티아의 제자들은 학문의 여신의 이름을 따서 그녀
를 '뮤즈의 딸'로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광신적인 키릴(Cyril; 키릴로스)이라는 인물이 알렉산드리아의 교
구장으로 부임해오면서 하파티아에게 비극적인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키릴은 이단심판관의 역할을 했는데, 그는 히파티아의 신플라톤주의 철학
과 그녀의 행실이 이교도적인 것이라 간주했던 것이다. 키릴과 광신도들은
탁월한 수학적 능력과 수많은 남성제자들을 지니고 있던 그녀를 마녀로 지
목하였고, 무제이온은 반(反)기독교문화의 총본산으로 여겨졌다.

서기 415년 어느 날, 광신도와 폭도들이 무제이온에 난입하여 교수들을
학살하였고, 히파티아도 돌을 맞고 쓰러졌다고 한다. 그녀는 머리채가 마차
에 묶여져서 이리저리 끌려 다니다가, 결국은 무참하게도 불태워졌다고 전
해진다. 그녀의 모든 저서를 포함하여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있던 수많은
책들이 역시 불태워졌고, 귀중한 문화재들도 아울러 파괴되었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찬란했던 알렉산드리아의 학문과 문화는 곧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고, 이는 곧 고대 그리스문명의 종말로 이어지게 되었다.
높은 학식과 고결한 인격, 그리고 뛰어난 미모를 함께 갖췄던 히파티아의
비극적 생애는 이후 많은 소설에서 언급된 바 있고, 오늘날까지도 여성이
수학을 꺼려하게 된 시초가 되지 않았는가 이야기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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