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연료전지 시대는 오는가 (1) 자동차 - 5 (끝)

글쓴이
박상욱
등록일
2003-08-02 20:37
조회
5,95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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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건
(1) 자동차 - 4 편에서 이어집니다. 인기 없어도 계획했던 주제는 끝까지 다룰랍니다.

만약 연료전지차가 도로를 덮는 날이 온다면
앞서 언급했던 여러 난점들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화석연료 생산량 감소와 공해문제로 인해, 이미 수억대가 굴러다니고 있는 내연기관 자동차는 다른 어떤 구동수단으로 대체될 것이다. 그리고 그 정답이 연료전지차인가에 대해 아직 확신이 없고, 대중을 대상으로 한 양산차가 시장의 선택을 받은 것도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나마 몇 개 남지도 않은 메이저급 자동차회사들이 예외없이 거액을 투자, 아니 사운을 걸고 연료전지차 개발에 매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연료전지차가 연간 천만대 정도 팔려서, 어엿한 '대중 승용차'로 자리잡는 날이 온다고 가정하자. 전기화학과 공학의 승리로 연료전지차가 잘 구르게 된다고 해서 기술 외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백금(platinum)이다. 현재 저온형 연료전지(인산형, 고분자전해질형, 직접메탄올형)엔 산화극과 환원극 모두에 백금을 기반으로 한 전기화학 촉매가 사용되고 있다. 알다시피 백금은 금보다도 비싼 귀금속이다. 연료전지의 핵심인 'stack'(연료전지 단위전지들이 다층 샌드위치처럼 직렬연결된 것)에는 최소 수십 g의 백금이 들어간다. 그나마도, 최소량을 사용하여 최대의 촉매면적을 얻기 위해 수십년간 촉매 입자의 나노사이즈화와 탄소지지체의 개발, 합금 촉매의 개발, 전해질막과의 접합기술등에 전세계 수천명의 연구자가 달라붙어 온 결과이다. 백금 사용량을 줄이려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지만, 단순한 계산으로도, 매년 천만대의 자동차를 위해선 매년 1000톤의 백금이 필요하다. 세계 생산량의 대부분을 아프리카에 있는 몇 개의 대형 광산에 의존하고 있는데, 연간 생산량을 가뿐하게 넘어서는 수준이다. 실제, 올 초 부시 대통령이 (전쟁 준비에 바빴을텐데도) 연료전지 개발에 크게 투자한다는 선언을 한 뒤 백금의 국제 시장 거래 가격이 크게 오를 정도로, 연료전지와 백금의 관계는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어쩌면 백금이 연료전지의 대량 보급을 결정적으로 막을지도 모른다.

수소 공급 인프라와 수소의 생산은, 연료전지의 기술적인 면에 대해 잘 모르는 경제학자들에 의해 종종 지적되는 문제점이다. 수소 공급 인프라가 갖춰진다면 수송은 도시가스와 비슷한 파이프라인을 사용하게 될 것이다. 수소는 분자량이 가장 작은 기체로, 확산속도가 매우 빠르므로 작은 틈으로도 쉽게 새어나오고, 영하 253도의 너무 낮은 끓는점은, 액화하여 운반하는 것에 매우 큰 비용을 요구한다. 수송도 문제이지만 제조도 문제이다. 일단, 수소는 물로부터 얻을 수 있고, 연료전지는 수소를 산소와 반응시켜 수증기로 돌려보내므로, 연료전지는 수소를 고갈시키는 것도 아니며, 환경에 악영향을 주는 것도 아니다. 다만, 수소를 만드는 방법이 문제이다.

사실, 수소를 값싸게 만들수만 있다면, 꼭 연료전지 자동차가 아니더라도 인류의 에너지 생활에 혁명적 변혁을 이루어낼 파괴력이 있는 청정연료이다. 앞서도 다루었지만, 수소 연료전지가 자동차에서 경쟁력을 갖는 이유는, 전기자동차보다 우수하다는 것과 내연기관은 언젠다 폐기된다는 두 가지 이유이다. 그 외의 일상적인 에너지원으로서의 수소는, 아직까지 크게 경쟁력을 갖는 것은 아니다.

키아누 리브스와 모건 프리먼 주연의 '체인 리액션'이란 영화가 있었다. 여기서 주인공은 거의 공짜에 가깝게 연속적으로 수소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을 발명하여 거대 에너지 산업계와 기득권층으로부터 암살 당할 위기를 맞는다. 물론,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는 수소를 만드는 방법으로 전기분해가 있을 뿐이다. 물에 전해질을 가하고, 그리 높지도 않은 전압을 가하면, 수소와 산소가 쉽게 얻어진다. 단위시간당 분해되는 물의 양을 계산해서 증류수만 보충해준다면, 전해질 보충 없이도 '연속적으로' 수소를 생산할 수 있다. 즉, 간단히 말해 수소는 전기다. 따라서, 화석연료를 태운 전기로 수소를 생산한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 전문가들은, 수소 에너지가 인류 생활에 본격적으로 사용되는 시기는 핵융합 발전이 실용화되는 시기와 같은 것으로 보고 있다. 방사성 폐기물을 내지 않고 태양이 열을 내는 원리라 하여 환경론자나 반과학론자들에게 비교적 반감이 적은 핵융합 발전은, 이제 겨우 1분 내외의 작동 기록을 갖고 있을 뿐이지만, 2200년경엔 실용화될 것이라 믿어지고 있다.(아마 그 전에 현재의 에너지원에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하는 큰 사건이나 징후가 발생한다면 훨씬 앞당겨질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불편을 느껴야 비로소 무언가를 대체하려 하니까.)

전기를 생산해서 수소를 만들고, 그 수소로 다시 전기를 만들어 달린다는 다소 허무한? 시스템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전기분해가 아닌 방법으로 수소를 만들 수 있는지 연구했다. 화학적으로도 수소를 만들 수 있지만, 이동형(portable) 용도가 아닌 이상 경제적이지도 않고 단점이 많다.(반대로, 이동형 수소발생장치로는 쉽게 개발 가능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수소를 만들기 위해 가장 많이 시도된 방법은, 물에 젖은 광촉매에 빛을 쬐어 물이 직접 산소와 수소로 분해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가능하지만, 발생하는 수소의 양이 너무 적다. 엄청난 성능의 신촉매가 개발되고 풍부한 세기의 자외선이 있다면 모를까, 지구상에서는 적절한 방법이 아니다. 결국, 전기분해로 수소를 만들되, 되도록 수력, 태양광, 태양열, 원자력등 화학연료를 사용하지 않는 발전을 통해 만드는 것으로 위안을 삼게 되었다. 그러나 연료전지 자동차는 첫 대중 시판차가 도로를 달리는 날로부터 수십년간은, 어찌되었던 전기분해로 생산한 수소를 사용하거나, 자체 내장된 개질기를 통해 탄화수소류에서 뽑아낸 수소를 사용하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연료전지 자동차를 준비하고 있는가?
답부터 말하자면, 준비하고 있다. 현대자동차에서 연료전지자동차를 꾸준히 개발해오고 있다. 90년대말, 정부주도로, 연료전지자동차를 만들기 위한 국책과제 프로젝트가 수립되었고, 당시 상황이 좋지 않았던 기아자동차를 제외한 현대자동차, 삼성자동차, 대우자동차가 국내 연료전지 연구진을 크게 둘로 가르며 각각 컨소시엄을 구성, 모두 응찰하였다. 자동차회사들로선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연구과제였기 때문에, 경쟁이 너무 치열했고, 정부는 현대자동차 컨소시움과와 삼성자동차 컨소시움을 양대축으로, 병행 수행이라는 보기드문 결정을 내렸다. 그후 삼성차가 부실화되면서 삼성쪽 일은 대우자동차로 넘어갔다. 또 대우 사태가 불거지면서 현대자동차쪽 과제로 모두 통합되었다. 정리해서 말하자면, 우리나라에선 현대-기아차 그룹만이 연료전지 자동차를 준비하고 있다. 대우는 GM, 삼성차는 르노 것이니 이들은 앞으로도 국내에서 연료전지차를 개발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사진은 현대자동차에서 개발중인 연료전지를 탑재한 산타페이다. 연료전지차는 수소탱크가 차바닥이나 트렁크 위치에 들어가야 하므로, RV 차종이 개발하기에 편하다. 많은 부분이 대외비로 취급되고 있어 외부인인 필자가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현대자동차는 연료전지차를 만들기 위해 국책과제를 중심으로한 원천기술 개발과 별도로, 선진국의 연료전지 전문회사와의 제휴를 통해 stack 완제품을 수입하여 현대차에선 탑재와 구동 시스템만을 개발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혼다와 도요타에서 연료전지 양산차를 찍어내는 날이 오면, 1년 이내에 현대도 양산차를 출시하여 초기 시장에 명함이라도 내민다는 전략인 것이다.

그러나 현대차는 실용 전기자동차나 하이브리드카를 설계하고 만들어 팔아본 경험이 전무하다. 따라서 구동시스템이나 전력관리 시스템을 만드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내연기관의 엔진에 해당하는 stack이나, stack을 이루는 MEA(멤브레인-전극 어셈블리), 촉매등에 역량을 집중할 여력이 없는 것이다. 그러한 원천기술, 소재기술등은 국책과제(미래자동차)를 통해 산학연 협력으로 진행하고, 당장 굴려야 하는 자동차는 핵심부품을 외국에서 사온다는 것이다.

현대의 연료전지 산타페는 애초에 캐나다 발라드사의 스택을 탑재했었는데, 얼마전 신문보도에 따르면 미국의 IFC 와 공식 제휴관계에 서명했다고 한다. 선진국의 연료전지 전문회사들은 지금 거대 자동차회사들의 러브콜로 정신이 없다. 능력있는 IFC로부터 stack을 공급받기로 함으로써, 일단 연료전지차 시장에 머리는 디밀어 넣을 수 있게 된 것은 다행이나, 자동차 선진국인 일본, 독일, 미국은 '당연하게도' 자국내에서 연료전지 부분까지 모두 소화해내고 있다. 기술이나 가격면에서 애초부터 경쟁이 안된다는 것은 자명하다.

우리나라가 다음 세대의 자동차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관건은 연료전지차가 언제 내 주머니 속에 그 키를 넣어줄 것인가, 또 그때까지 현대차가 지속적인 발전을 계속 해서 일정한 마켓 셰어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좀 더 체력을 튼튼히 하고 선진 기술을 따라잡을 때까지 실용화가 미루어진다면 우리나라에는 유리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연료전지에 대해 경영진의 확신이 없어 선진국 메이커들의 눈치를 좀 더 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난주 한국을 방문한 혼다 자동차 회장은 기자가 질문하지도 않았는데, 연료전지 자동차 실용화에 사운을 걸고 있다고 말했다. 자동차 산업은 우리나라의 주요 산업중 하나이다. 그런데도 업체나 대중이나 연료전지 자동차에 큰 관심이 없는 것 같다.(이 연재글의 인기가 없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자동차편은 여기서 마치고, 다음은 모바일 편으로 이어집니다. 재미없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99학번 ()

      유익한 글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히카루 ()

      저도 잘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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