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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이공계기피현상 담론에 대한 몇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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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성원 () 작성일2002-03-05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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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감사합니다. 회원에 가입하셨다니 더더욱 반갑습니다.
저는 대덕의 한 정부출연 연구소에 작년에 입소한 선임연구원입니다. 학위 받고 회사생활-기업체 연구소, 사실은 개발실 -을 좀 하다가 직장을 옮긴 경우입니다.
제가 직장을 옮기면서 가장 크게 고려한 점은 장래의 내가 할 일에 나 자신이 보람을 느끼겠는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기업체에서 근무하면 일이 고되다고 다들 알고 계시죠? 직접 연구원으로 생활해보시면 그 고됨이 어느정도인지 아실겁니다. 아직도 그 고된 일들을 묵묵히 하고 있는 나의 동료와 선 후배들....다 훌륭한 사람들입니다.
그 와중에 이 사회의 특권 부유층 동창생들을 한번 보면 정말 일할 맛 안나더군요. 이 나라를 떠나고 싶고, 회사를 떠나고 싶고 절로 들어가고 싶습니다.
저는 정부출연 연구소로 요행히 옮기게 되면서 나름대로 기대를 했더랬습니다. 보수는 줄더라도 그럼 보람되는 일- 영리 목적이 아닌 미래 지향적인 - 을 해 보자고 마음 먹었습니다. 명예라도 챙기자는 것이었죠. 그러나 여기도 문제는 있더군요. 발길에 채이는 젊은 박사연구원은 연구소의 장래를 가지고 농단치는 일부 행정원과 연로하신 선배 연구원 틈에 끼어 관심조차 끌지 못합니다. 구체적 언급은 회피하겠습니다. 저는 연구소로 옮기면서 회사보다 빨리 이공계에서 퇴출 될거같은 황당함이 들었습니다.
보수도 생각보다는 많이 줄어듭니다. 어차피 돈은 버리기로 했는데도 아이들 교육이 걱정되니까요.
혹 이공계를 옆에서 지나치면서 보시는 분들이나 그동안 티브이 드라마를 통하거나 9시 뉴스등 만을 통해 알고 계신 분들은 굴절되어 제대로 그 모습이 드러나지 않은 이공계를 보고 계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정부에서 내 놓는 대책이 어떤 것입니까? 이공계 연구원들이 그동안 중산층 생활이라도 유지하면서, 혹은 때때로 재테크 잘하거나 결혼을 잘해서 어느정도 윤택하게 살고 있는 중에 덤태기 더 보태서 뺏아가는 형국이라면 할말이 없습니다. 저는 제가 그런 이공계 인간과 같은 도마위에 오른다면 당장 제 학위기를 찢어버릴 겁니다. 몇분이나 이번에 정부가 내 놓은 그 '특혜'를 볼 수 있을까요? 실력이 없으니 그렇다고요?
이공계 연구는 혼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옛날 로보트 태권 V 등등의 만화를 보면 전지전능한 박사 한명이 모조리 다 만들지요? 하하하. 연구 그렇게 못 합니다. 저는 한명씩 꼭 찍어서 그런 혜택을 줄 수 있는지도 의문이고 누가 선별 능력이 있는지도 의문입니다.
이공계도 연령에 따라 큰 차이가 납니다. 소위 3공 시절에는 엄청난 헤택을 누리고 사셨죠. 지금 들어보면 정말 특혜더군요. 청문회 감이지요. 제가 앞으로 25년을 더 연구소 생활을 해도 지금 50후반인 그분들의 현재 연봉수준에는 도달하지 못합니다. 한 60% 정도 돼지요. 쓰다보니 제가 참 무능하고 실력없는 인간이라는 걸 새삼 알게 되는군요. 중요한건 그런 연로하신 분들도 자제분들 이공계 못가게 한다는 겁니다. 자신이 특혜를 받았다고 아들이 반대급부로 쪼달리면 안 돼니까요.
현재가 중요하고 앞으로가 중요하다고 말들을 합니다. 저는 이공계 연구원이 되면 안돼는 사람입니다.
요즘 생각을 많이 합니다. 내가 그렇게 나태하게 인생을 살아왔나? 고교시절 그때 내가 무슨 생각을 멍청하게 했길래 이 지경이 됐을까?
저는 인간이 건전한 사고 방식으로는 크게 잘못된 인생을 살지 않았다고 자부합니다. 단지 이공계, 특히 공학 분야가 모든 사회에 유익하며 꼭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이 멍청하도록 많았죠. 딴데로 눈길을 돌리지 못할 정도로요.
앞으로 30 평생은 그 형벌을 받고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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