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이공계 논란, 본질을 놓치고 있다.

글쓴이
김신일
등록일
2002-08-16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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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딴지 일보에서 퍼 왔는데요.. 원래 딴지 일보에 나온 글들은 반 농담 비슷하게 읽었엇는데..

이 글은 상당히 설득력 있는 글 같아서 퍼 왔습니다.. 아래는 링크구요.. ^^;;

http://www.ddanzi.com/ddanziilbo/79/79sc_3001.asp

========================< 원 문 >=====================================================


[발언] 이공계 논란, 본질을 놓치고 있다

2002.7.26.금요일
딴지 과학부
 

지난호 <이공계여 총파업하자> 기사를 읽고 몇 가지 할 말이 있어 씁니다.

우선 저는 국내에서 물리학 석사 및 박사를 끝내고 포닥(박사 후 연구원)에 재직중인 물리학자(내가 학자라니 웃긴다.. 죄송..)입니다. 박사학위를 작년 2월에 받았으니까 포닥 생활을 한 1년쯤 한 셈입니다.

세간에 이공계 기피 현상이 화제가 되면서 갖가지 분석, 진단, 처방들이 많이 쏟아지고 있어서 한편으로 기쁘기 그지 없습니다. 그만큼 사회가 이런 쪽으로도 신경을 쓸 만큼 여유가 생겼다는 사실의 반증이니까요.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저런 분석과 진단들이 정말 사태의 본질을 제대로 꿰뚫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도 가끔 들었습니다. 이공계 문제는 사실은 순수과학의 문제이지 '공돌이'의 문제가 아닌데도, 논의가 왜곡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독자 여러분들께 몇 자 적습니다.

우선 제 전공을 간략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입자물리학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입자물리학 한다는 건 참 쉽지 않죠. 저는 그 중에서 이론 전공입니다. 입자 이론에도 다양한 분야가 있는데, 저는 그 중 현상론에 속합니다.

현상론이라 함은, 입자 가속기에서 쏟아져 나오는 무수한 데이터들을 '무슨 수를 써서든지' 설명해 내는 것을 주업으로 한다는 뜻입니다. 아시다시피, 우리나라에는 입자 가속기가 없습니다(포항에 있는 방사광 가속기는 고체실험을 위한 것이지 입자물리학을 위한 건 아닙니다). 그래서, 실험하시는 분들은 일본, 미국, 유럽으로 공동연구하러 많이 가십니다.

저희같은 입자이론 전공자들은 인터넷의 도움으로 세계 각처의 실험실에서 행해지는 실험의 결과들을 실시간으로 알 수는 있습니다. 저희들은 주로 컴퓨터 앞에 앉아 논문들 읽고 연구하고 계산하고 쓰고 인터넷에 논문 올리고...등등의 일을 하죠.


생각난 김에 공부나 약간 시켜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세계 양대 입자가속기의 하나인 미국 페르미 연구소의 테바트론에서 입자들이 어떻게 생성되는지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즉, 가속기 주위의 여러 지점에서 서로 반대방향으로 돌던 입자들이 꽝하고
부딪히게 되어 있는데 그곳에 아주 성능이 좋은 입자 검출기를 설치해서
입자들의 충돌과정에서 어떤 일들이 생기는지(즉, 무슨 입자들이 튀어 나오는지) 알아보는 겁니다.... 말하다보니 넘 어렵군요.


암튼, 그 연구소에 있는 대표적인 입자검출기 CDF라 불리는 넘입니다.
이거 보여드릴라구 했던 건데 설명이 길어졌군요.. 쩝.

자 그럼 이제 제 생각을 하나하나 밝혀 보겠습니다.

 학문과 경제는 분리되어야 합니다.

이 말이, 학문과 경제가 아무런 상호작용없이 각자 따로따로 놀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는 건 아마 잘 아실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학문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학문 그 자체 내의 내적 논리, 다른 그 어떤 분야의 논리가 아닌 학문 그 자체의 발전 매커니즘을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경제 발전을 위해서 우리나라 '이공계'가 혁혁한 공을 세운 건 사실이고 또한 내세우고 싶은 치적이긴 하지만, 오히려 이런 주장들이 나중에 우리의 발목을 잡을 수가 있습니다.

왜 학문의 존재 이유를 국가의 경제발전에서만 찾아야 하는 겁니까?

한 나라의 학문의 발전과 융성은 다른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고 다른 그 무엇과도 비교되거나 대체될 수 없는 고귀한 가치입니다. 인류가 지금까지 쌓아왔던 지적 발전의 맥을 도도히 이어가는 것이며 그로 말미암아 전 인류의 보편적 이익을 위해 봉사하게 되는 숭고한 뜻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가치들이 한낱 돈 몇푼의 논리에 빗대어 얘기되어서야 학문이 경제의 노예밖에 더 되겠습니까.

혹자는 학계에도 구조조정, 경쟁력, 연봉제 등을 도입해서 활력을 불어넣고 철밥통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일리있는 주장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정말 학문의 발전 메커니즘에 대해 제대로 고민해 봤는지 되묻고 싶습니다.

그저 기업들이 구조조정하고 다운사이징하고 명퇴바람이 유행이 되다시피하니까 대학이나 연구소에서도 이 '경제살리기' 대열에 동참해야 한다는 안일한 생각의 발로가 아닌가 하고 의심이 많이 듭니다.

단적인 예를 하나 들죠. 유명한 페르마의 정리를 증명한 와일즈는 프린스턴 대학에 말 그대로 '쳐박혀' 있으면서 7년간 변변한 논문 하나 써내지 못했습니다. 일화를 듣자하니 페르마의 정리를 증명하기 위한 사전 작업으로 예전에 써 놓은 몇몇 논문들을 잊을만하면 하나씩 발표했다는 그런 얘기도 있더군요.

그런데도 대학에서는 그렇게 별로 연구성과없는 와일즈에게 아무런 간섭과 방해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효율성, 경쟁력, 구조조정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미국 본토의 명문대에서 이런 비경제적이고 몰지각한 현상이 일어나다니요? 첨언하자면, 교수들이나 학자들 능력을 매길 때 도대체 누가 누구를 평가한다는 겁니까?

 

이 짧은 글에서 많은 것, 학계의 치부를 전부 얘기해 드리지는 못하겠지만, 그게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논문편수나 인용횟수 그런 게 한 학자의 능력을 모두 대변하는 게 결코 아닙니다. 특히나 우리나라 같은 상황에서는 말이죠.

요컨대, 경제논리로 학문의 발전을 논하지 말라는 겁니다.

'이공계'라는 말로 뭉뚱 그려지면서, '과학기술자'들은 대부분 기업이나 국가의 대형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혹은 경제발전의 원천기술을 만들어내고 그와 관련된 연구를 수행하는 사람들쯤으로 인식되는 것 또한 경제논리가 빚어낸 비극입니다.

그런 '이공계' '과학기술자' 속에서 저같은 입자물리학자는 찾아볼 수가 없더군요. 솔직히, 이공계에 관련된 논의를 읽으면서 저는 분명히 그 논의에서 주요하게 다루어지는 분야에 종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딴사람 얘기하는 것 같은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경제논리가 학문발전을 왜곡하는 또하나의 예를 들자면 이른바 '학문에 대한 투자'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투자라니요? 저는 학문에 감히 '투자'한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아드레날린 분비가 급격히 늘어남을 느낍니다. 그 투자라는 명목으로 정부 관리들이 얼마나 학자들을 괴롭히는지 아십니까?

돈이나 좀 많이 주고 그러면 이해해 줄 법도 합니다. 몇 푼 주지도 않으면서 그쪽에서 요구하는 연구 성과물이나 보고서 보면 참으로 가관입니다. 저같은 기초과학 하는 사람이 도대체 경제발전에 무슨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고 보고서에 일일이 그런 항목까지 채워야 합니까.


 
과학이 고스톱이냐?
아인슈타인이 비광이냐?
 
학문에 '투자'하겠다고 생각하는 정책입안자들 머릿속에는 마치 증권시장가서 주식 사는 것과 같은 생각이 맴돌 것입니다. 지금 여기 10억 쏟아부으면 5년쯤 후엔 적어도 15억은 돌아오겠지. 정부 관리들이나 여타의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한 학문의 발전은 요원합니다.

이 분들에게는 학문이란 실패의 연속, 잘못된 모델링의 반복, 끝없는 시행착오, 의미없어 보이는 단순 작업의 반복,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결과에 대한 도전, ... 이라는 말이 전혀 이해되지 않을 겁니다.

제발 학문에 '투자'하지 마십시오. 투자하겠다면, 그 투자받은 학자들은 원금을 불려주기 위해 실패를 무릅쓴 과감한 연구를 못합니다. 그냥 학문에 돈을 '갖다 버리십시오'. 학문에 돈을 쓰는 것은 이를테면 대한민국이 유엔 분담금 지불하는 것이나 군사비 지출하는 것과 같은 필요불급의 '비용'으로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뭘 기대하지 마십시오. 그저 대한민국이 이만큼의 지위에 올랐으니, 인류의 학문 발전에 이정도는 기여해야겠다는 생각만큼만 학문에 돈을 '버리십시오'. 그래야 학자들이 마음놓고 연구할 수 있습니다.

아무 대학 아무 교수나 붙들고 물어보십시오. 우리나라 교육부나 과기부에서 제발 아무 일도 안하면 저절로 우리나라 학문이 발전할 거라고 이구동성으로 얘기할 겁니다.

물론, 학자들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평가는 해야 할 것이고 자금의 차등지원 또한 현실적인 문제일 것입니다. 학계에서도 연구비를 사적으로 빼돌린다든지 하는 일들이 전혀 없지 않을 테니까, 사실 학계 내부에서 개선할 점도 분명히 많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정부나 사회에 요구하는 것은 제발 다른 논리나 메커니즘이 아닌 지극히 학문적인 관점에서 문제를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재가 클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은 가시적인 사회자본을 건설하는 것과 동일한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계에서도 많은 역할을 수행해야 하겠지만, 기본적으로 정부 당국에서 그에 걸맞는 시야와 안목을 가져야 합니다.

서울대에서는 천재들을 데려다가 바보로 만든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우리 사회에 얼마나 인재양성 시스템이 낙후되어 있는지를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시스템은 박사급 인력의 일자리를 대폭 늘리는 것입니다. 지난 기사에서는 경제적 처우가 중요한 것으로 제시되었는데, 물론 그것도 좋은 것이긴 하지만 사실 돈 몇 푼 쥐어주는 것보다는 안정적이고 풍부한 일자리만큼 우리들이 바라는 건 없습니다.

일자리가 많다는 것은 단지 돈 벌 곳이 많다는 것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연구를 할 여건이 되어 있다는 점에서 학자들에겐 돈 몇 푼 더 받는 것보다 훨씬 큰 힘이 됩니다.

지금 이공계 대학원생들에게 연구활동의 가장 큰 장애요소가 뭐냐고 물으면 아마 불확실한 미래가 으뜸으로 꼽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대학원 중심 대학으로 간다고 해 놓고선 그 많은 석박사들을 사회가 감당할 기제를 하나도 갖춰 놓지 않으면 도대체 어쩌란 말입니까. 학위만 남발하고 고학력 실업자 양산하겠다는 거 아닙니까.

우리나라에는 정말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는 연구소가 별로 없습니다. 저 같은 입자물리학 하는 사람이 갈 수 있는 연구소 거의 없습니다. 그나마 고등과학원 정도일까요.

이왕 말이 나온 김에 고등과학원(KIAS)에 대해 잠시 말해보죠.

제가 아는 한, 고등과학원은 우리 나라에서 가장 성공적인, 거의 유일무이한 기초과학 이론 (물리, 화학, 수학) 연구소입니다. 이곳의 1년 예산이 채 100억원도 안 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고등과학원은 개원한지 10년도 채 안 되어 세계적인 수준의 논문들을 말 그대로 '쏟아내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나라에서 도입하려는 차세대 전투기 한대 가격도 고등과학원 1년 예산보다 훨씬 비싸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기초학문에 '투자'하는 것이 얼마나 '경제적인'지 짐작하실 겁니다.

그런 연구소 많이 지어야 합니다.

무슨 기업체 부설 연구소나, 정부 산하 기관 연구소 이런 것들은 간판만 연구소이지 결국은 기업들 돈벌이나 정부 사업을 위한 프로젝트만 수행할 뿐 학문발전과는 애초에 관련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말 학문만을 제대로 연구할 수 있는 그런 연구소가 많이 필요합니다. 거기서 오갈 데 없는 우수 인력을 적극적으로 끌어 안아야 합니다.

또한, 대학에서도 교수 인력을 대폭 늘려야 합니다. 우리나라 최고라는 서울대의 경우, 서울대 물리학과의 교수진이 채 40명이 안 됩니다. 물론 다른 대학들은 더 열악합니다. 물리학 제대로 해 볼려면 적어도 100여 명의 교수진을 갖춘 대학이 국내에 하나쯤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비슷한 분야의 공동연구도 활발히 수행되고 그 밑에서 수많은 인재들이 길러질 수 있고 교수들의 학과행정 부담도 줄어들게 됩니다. 규모가 받쳐줘야 뭔가 해 볼 수 있다는 얘기죠.

사실, 시스템을 제대로 만드는 것은 연구소 몇개 짓는 것이나 대학 교수 정원을 늘리는 것 이상을 의미합니다만, 우선은 이런 기본적인 모양새가 갖춰져야 미래를 얘기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공계의 문제가 아니라 기초학문의 문제이다.

이공계 기피 현상을 막기 위해서 다른 여러 방책들도 많겠지만, 제 생각엔 가장 기본적으로 위의 두 가지가 가장 우선적으로 가장 비중있게 해결돼야 한다고 봅니다.

한가지 덧붙이자면, 저는 이공계 기피 현상이 가리고 있는 또다른 현실, 인문학을 포함한 우리 나라 기초학문의 붕괴를 훨씬 더 심각한 문제로 여기고 있습니다.

사실, 이공계 기피 현상이 문제가 되었던 것도 응용분야로 분류될 수 있는, 그래서 '경제활동'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공대에 촛점이 맞춰졌기 때문이죠. 여전히 경제논리로 학문을 보는 관점을 극복하지 못한 셈인데, 공대의 위기보다 훨씬 더 심각한 것이 예전부터 지적되어 온 인문학의 위기이고 기초과학의 위기 입니다.

지금 우리사회의 이공계 논의가 핵심을 놓치고 있다는 것은, 누군가 이공계 문제를 주장하면 항상 '인문계는 더한데 무슨 소리냐'면서 싸움이 이공계와 이문계의 싸움으로 변질된다는 점을 보면 단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문과와 이과의 싸움, 누가 더 대우받고 있냐 누가 더 푸대접받냐 하는 걸로 싸우는 건 본질과는 전혀 무관한 것입니다.

이 문제의 본질은 우리나라에서 기초학문이 얼마나 대우받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공대'의 문제가 아니라 순수학문 - 인문과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 의 문제입니다.

솔직히, 그나마 이공계는 상황이 좀 나은 편입니다.

서울대에 가면 규장각이라고 있습니다. 거기 가면 우리나라 고문서들 엄청나게 쌓여있죠. 그런데, 예산이 부족해서 그 귀한 자료들이 지하에서 그냥 방치되어 썩어가고 있습니다. 훼손이 심각해진다고 들었습니다. 자료 보존에 관한 예산이 1년에 몇 억만 되어도 자료 부식을 막을 수 있다는데, 그것조차 못하고 있는 실정이죠.


 
이 곳에 책은 많은데 말야... 돈이 없어서 관리가 안돼...
 

그런 상황이다보니 프랑스에서 외규장각 돌려줘봤자 제대로 보존이나 하겠냐고 비아냥거리는 겁니다.

더더욱 가관인 것은, 규장각에 도대체 어떤 고문서들이 있는지 제대로 파악조차 안되고 있다는 겁니다. 박사급 인력을 풀어서 연구시키면 황금같은 논문들이 쏟아질 판이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인문학 하는 사람들한테는 고가의 최첨단 장비도 필요없습니다. 그저 월급이나 제때 주고 괜찮은 컴퓨터 갖다 주면 그걸로 기초학문 지원은 끝입니다. 그게 몇 푼이나 들겠습니까...

인문계 박사 아무도 안 하려고 합니다.

그래도 자연계는 병역특례라도 있지요, 그나마 BK21(나같은 경우 의료보험도 안 되긴 하지만 월급 꼬박꼬박 주는게 어딥니까...)이라는 거창한(?) 프로젝트도 있는데, 인문계는 그런 거 하나도 없습니다.

학문의 기초인 인문학이 이지경이니 국가의 장래가 암담할 수밖에요.

저는 기초 과학이 잘되기 위해서조차 인문학이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문학이 잘 되야 사람들이 '상식적인 생각'을 하는 풍토가 만들어지고 '다양성'이 인정됩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자유로운 생각들이 만개하게 되고 정말 학문할만한 사회적 풍토가 조성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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맺기 전에 미국에서 있었던 한 일화를 소개합니다.

미국 시카고 근교에는 테바트론이라는 세계 최대의 입자 가속기가 있습니다. 그 기계를 처음 만들 때, 의회 국방위원회에서(그때나 지금이나 펜타곤이 여전히 돈줄을 쥐고 있나 봅니다) 청문회를 했습니다.


 
현존하는 입자 가속기 중 가장 높은 에너지로까지 가속가능한 페르미 국립연구소의 강입자 가속기 "테바트론"..

맨 위에서 그림으로 보여드렸죠? 바깥에서 보면 이렇게 큽니다....
 

그 청문회에 나온 물리학자가 윌슨이라는 사람인데, 입자 물리학에서 아주 큰 업적을 남긴 매우 유명한 과학자입니다.

국방위원들이 물었습니다.

"그 가속기가 국토 방위와 무슨 상관이 있지요?"

그러자, 윌슨이 대답했습니다.

"이 가속기가 조국을 지키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 미군이 이 가속기를 목숨걸고 지키게 될 것입니다."

윌슨은 테바트론으로 말미암아 미국이 목숨걸고 지킬만한 가치가 있는 나라가 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입니다.

초대형 가속기를 운영하는 데에는 최첨단의 과학기술이 모조리 동원됩니다. 그런 것들을 굳이 경제적으로 얼마나 이득을 가져다 주는지 계산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유럽 입자 가속기의 과학자들이 인터넷을 처음 고안해 낸 것 또한 경제적으로 얼마만한 가치가 있는지 계산할 수도 있겠죠.

그러나, 그런 거대 가속기의 존재, 그리고 거기서 이루어 낸 과학적 발견들은 도저히 돈으로 환산될 수 없습니다.

학문의 존재 의의는 따로 있습니다. 돈 몇푼 더 벌어주는 가속기 때문에 미군이 목숨을 걸지는 않을 테니까요.

글이 좀 길어진 감이 있는데, 정리하자면 '이공계문제'라는 용어 자체가 잘못되었고 사실은 기초학문의 문제라는 것, 기초학문은 자연과학 인문과학을 막론하고 국가의 근본이기 때문에 살아나야 한다는 것, 따라서 경제발전이라는 논리로 정당성을 주장하지 말 것, 가장 시급한 것은 안정적인 연구활동을 제공하는 시스템의 구축이라는 것, 이 정도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돈 안되는 학문이라고 기초학문을 무시하면 우리의 미래는 없습니다.

  • 소요유 ()

      한번 이야기된 적이 있는 기삽니다. 이 게시판인가 아니면 회원게시판인가에서 이 논점의 문제에 대하여 이야기 한적이 있습니다.

  • 인과응보 ()

      돈 안되는 학문이라고 기초학문을 무시하면 안된다라는 말엔 공감합니다. 그러나 돈 안되는 학문에 돈을 계속 쓰라는 주장은 이해할수 없읍니다. 투자는 회수를 위해 하는것이지, 회수를 하지못할 투자는 기부입니다. 기초학문이 정말로  경제논리를 적용할수 없다라면, 기초학문은 투자 대상이 될수 없읍니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기초학문도 '구슬'이 서말이라고 주장만 하지말고, 만들어진 '보배'를 보여주어야 할것입니다. 이것이 이공계문제의 본질입니다.

  • 인과응보 ()

      거듭 이야기하지만 누군가를 무시하려는 마음은 없읍니다. 돈이 되건 않되건, 이세상에 가치없는 연구는 없읍니다. 기초학문은 그자체로서도 존중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만약 기초학문을 비롯한 이공계가 계속적인 지원을 받고 싶다면,  왜 '남이 아닌 내가 돈을 받아야하는가?' 를 국민에게 설득시킬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박상욱 ()

      저도 자연과학 전공이지만 이런 논지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계 단일 국가'일때나 통하는 글입니다. 아마 이 글 쓴 분은 우리나라가 망하면 어떠냐. 과학은 그래도 살아있다. 나는 나를 필요로하는 과학이 있는 곳으로 이주하면 그만이다 라고 말할겁니다. 과학이 '목적'이 되어버리는 것이죠.

  • 박상욱 ()

      전혀 돈안되는 학문을 하는 분들도 '나의 연구가 인류를 위해 어떤 공헌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무형의 공헌이라도 좋습니다) 반드시 고민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돈도 안되는 연구를 하게 해 준' 사회에 고마와할줄도 알아야합니다. 고고한 척 세속을 초탈한 척, 속세인들보다 잘난 척 해선 안됩니다.

  • 소요유 ()

      박상욱님과 인과응보님에게 각각 한표.  그렇습니다. 그게 가치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적의미로 설득이 필요합니다. 즉 옆에서 굶어 죽는데에도 불구하고 기초학문에 왜 투자해야 하는 지를 이해시켜야 합니다.  세상에 모든일은 나름대로 자기 당위성을 갖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자기 당위성으로부터  남을 설득하여 정당성을 확보하느냐의 문제입니다. 

  • csman ()

      글쎄요..제가 보기엔 기업 경영인들이 공학인을 보는 시각도 역시 마찬가지라고 봅니다..그들 역시 공학에 대한 투자에 회의적이기 때문에 이렇게 대우가 안 좋은 것 아닙니까..

  • csman ()

      물론, 공학이 실제적으로 산업에 기여하는 게 더 많다는 것이 다르지만...그렇다고 기초 학문을 하는 사람들에게 윗 분들과 같은 소리를 하는 건 맞지 않습니다..경영인들에게 물어보면 역시 공학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똑같은 소리가 나올 법하기 때문이죠..

  • csman ()

      그런 경제적인 논리를 들이대면 우리나라는 영원히 기초학문 발전은 없을 겁니다..원래부터 비생산적(?)인 학문에 경제적인 논리로  요구하는 건 말도 안 되죠..

  • 소요유 ()

      경제논리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기초학문이 왜필요한지를 이해시켜야 한다는 말입니다. 기업이 공학에 돈을 투자하지 않는 것도 역시 왜곡된 경제논리임에 틀림없습니다. 왜 투자해야하는 지를 이해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현실논리이긴 하지만 정부나 기업이 기초과학이나 기초기술에 투자하지 않는다면 왜 투자해야하는 지를 과학자의 용어가 아닌 그들의 용어로 이해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고고하다고 해서 돈을 갖은 그들이 돈을 줄리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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